김극녕(金克寧, 문)의 장인 백호 임제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4-09-09 11:59 조회1,541회 댓글0건본문
■ -한국의 한시 28- 백호 임제 시선 (2002. 허경진, 평민사)
백호 임제(1549-1587, 문온공파 김극녕의 장인)가 월남사 절터를 지날 당시에, 옛탑은 촌 담장에 기대어 섰고 낡은 빗돌(=월남사지 진각국사비)은 들판에 다리로 놓여 있었다는 사실을 ‘월남사 옛 터를 지나며’ 라는 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前面은 왕명에 의하여 1234년 이규보 찬, 김효인 서로 세운 것이고, 後面 陰記는 역시 왕명에 의하여 1250년 최자 찬, 석 탁연 서로 세운 것입니다. 상서공(휘 효인)께서 서하신 전면은 현재는 완전히 깨져 없어지고 비편 하나가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고, 후면은 현재 월남사지에 상당부분 남아 있어 보물 제 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임제의 큰 딸이 15세에 김극녕(金克寧, 문온공파)에게 출가했다가 6년 지나 일찍 죽어 ‘죽은 딸을 제사하면서’ 라는 시, 죽은 딸의 만사‘를 남기고 있습니다.
●過月南寺遺址 /과월남사유지
此*昔月南寺 /차석월남사 *예 석
煙霞今寂? /연하금적?
山曾暎金碧 /산증영금벽
水自送*昏朝 /수자송혼조 *어두울 혼
古塔依村*塢 /고탑의촌오 *둑 오
殘碑作野橋 /잔비작야교
一無元寶訣 /일무원보결
興廢問何勞 /흥폐문하노
월남사 옛터를 지나며
이곳이 옛날 월남사1) 였건만
이제는 연기와 노을만 적막해라
산은 벌써 노을에 물드는데
물은 저절로 아침 저녁을 보내네
옛탑은 촌 담장에 기대어 섰고
낡은 빗돌은 들판에 다리로 놓였네
없을 무(無) 자가 본시 보결2)이니
흥망을 애써 물어야 무엇하랴
1) 월남사는 월출산 남쪽에 있다. 고려시대 스님 진각(眞覺)이 처음 세웠으며, 이규보가 지은 비문이 있다. <신증 동국여지승람> 권37 <강진현>
현재 절터에 마을이 들어서서 월남리라고 하는데, 그 마을에 탑과 비신(碑身) 일부가 유물로 남아 있다.
2)훌륭한 비결이다.
●죽은 딸을 제사하면서
네 용모가 남보다 빼어나고
네 덕성이 하늘에서 타고 났지
부모 슬하에서 열다섯살
시집 가서 이제 육 년 되었지
어버이 섬긴 일이야 내 아는 바고
시부모도 잘 모셔 칭찬들었지
하늘이여, 귀신이여
내 딸이 무슨 허물 있던가
한번 병들어 옥이 깨졌으니
이런 일이 또 어디 있으랴
아비도 병들어 가보지 못하고
울부짖고 통곡하니 기가 막히네
너는 이제 저승으로 가버렸으니
너를 만날 인연이 없어졌구나
네 어미는 지금 서울에 가서
너희 외할머니 앞에 있단다
네 죽음을 알게 한다면
약한 몸을 보전하기 어려우리라
부음을 듣고 나흘 지나서
금수1) 가에다 망전望奠 2)을 차린다
술과 과일을 조촐하게 차려 놓고
샘물을 떠다가 사발에 부었다
어미는 멀리 있어도 아비가 여기 있으니
혼이여, 이리로 오거라
샘물로 네 신열을 씻어내고
술과 과일로 네 목을 축이거라
울음을 그쳤다가 또 통곡하니
네 죽음이 너무나 가엾구나
가을 하늘이 구만 리 아득해
이 한이 끝까지 이어지누나
*임제의 큰 딸이 김극녕(金克寧)에게 출가했다가 일찍 죽었다.
1) 영산강의 다른 이름이다.
2) 전(奠)은 술과 과일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신위 앞에 갈 수 없을 때에 멀리서 제를 드리는 것이 망전(望奠)이다.
●죽은 딸의 만사
네 아비가 지난해 흥양으로 부임하느라1)
서울 가을바람에 오마2)가 바삐 떠났지
슬하의 목소리와 모습이 늘 아리따웠건만
인간 세상에서 이별하고 보니 이제는 망망해라
달 밝은 빈 산에는 잔나비 울음 애달프고
골짜기에 찬서리 내려 난초 잎이 시들었구나
시집가던 날 돌아보며 못내 그리더니
저승에 가면 그 어디서 어미를 불러 보랴
1) 임제가 1584년 즈음에 흥양현감으로 부임하였다.
2) 네 마리 말이 수레를 끄는 것이 관례인데, 오직 태수로 나가는 경우에는 말 한 마리를 덧붙였다. 그래서 오마(五馬)라고 한다. <漢官儀>
이 뒤부터 오마는 지방 수령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