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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金方慶 138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01 (간행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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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14 10:11 조회1,75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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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거사 이규보(1168-1241)는 최충헌-최이 집권시에 주로 활동한 사람이다. 충렬공의 백부 김창(?-1256)과 절친하였고, 충렬공 부 김효인(?-1253)과 함께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충렬공의 초기관직시 후원자였던 최종준(   -    ) 등 최씨 일가 들과 밀접한 교유가 있었다. 따라서 충렬공(1212-1300)께서는 1241년 간행된 이규보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을 많이 읽어 보았을 것이다.

《동국이상국집》 제 3 권에 동명왕편 (東明王篇) 이 수록되어 있는데, 당시 중화중심(中華中心)의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구삼국사(舊三國史)》에서 소재를 취하여 민족적 우월성과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인의 자부심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으로, 작가의 국가관과 외적에 대한 항거정신이 잘 승화되어 있다.

이러한 역사인식은 1283년 일연의 <삼국유사>, 1286년 이승휴의 <제왕운기>에 이어지고 있다.


<동국이상국집> 내용 중 충렬공 先系와 관련된 내용을 발췌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동국이상국집 (東國李相國集)

벼슬에서 물러난 지 4년 뒤인 신축년(1241) 그의 나이 74세 되던 7월, 병을 얻으니 ★진양공(晉陽公 =최이)이 이 사실을 듣고 명의(名醫)를 보내는 한편 이규보가 평생에 지은 글들을 모아 공인(工人)에게 명하여 판각하게 하였으나 그는 자기 문집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일이 워낙 방대하여 그의 생전에 이룩하려고 했던 것은 연보(年譜)의 기록과 ---41권만이 편성(編成)되었음을 알 수 있다.
《동국이상국집》전집 41권 후집 12권 총 53권은 아들 ★함(涵)에 의해서 고종 28년(1241) 12월을 중심으로 편간(編刊)되었음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 초간본(初刊本)이 ‘欲及公之眼見 以慰其情也’ 하려는 의도에서 급하게 간행되었기 때문에 탈루(脫漏)함이 매우 심해, 신해년(1251)에 분사도감(分司都監)에서 대장경(大藏經) 판각을 마쳤을 때 고종의 칙명을 받들어 사손(嗣孫) ★익배(益培)가 개간(改刊)하니 ---

동명왕편 (東明王篇)
고려의 문인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인물서사시. 오언 장편 282구. 운문체의 한시로 약 4000자에 이른다. 작가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 제 3 권에 수록되어 있다. 동명왕 탄생 이전의 계보를 밝힌 서장(序章)과, 출생에서 건국에 이르는 본장(本章), 그리고 후계자 유리왕의 경력과 작가의 느낌을 붙인 종장(終章)으로 구성되었다.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解慕漱)와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 사이에서 태어난 주몽(朱蒙)이 뒷날 고향 부여를 떠나 남으로 가서 비류국(沸流國)을 정복하고 나라를 세우니 고구려의 시조인 동명성왕인데, 후에 아들 유리(類利)가 찾아와 왕위를 계승한다는 이야기가 전개된다. <동명왕편>은 당시 중화중심(中華中心)의 역사의식에서 벗어나 《구삼국사(舊三國史)》에서 소재를 취하여 민족적 우월성과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인의 자부심을 널리 알리려는 의도에서 쓰여진 것으로, 작가의 국가관과 외적에 대한 항거정신이 잘 승화되어 있다.

백운소설 (白雲小說)
고려 고종 때 문신 이규보(李奎報)가 지은 시화집(詩話集). 을지문덕(乙支文德)·최치원(崔致遠) 등 삼국시대 사람들의 시에 대한 시평을 비롯하여, 저자가 활동하던 시기의 사람들의 시에 대한 시평, 백거이(白居易)·구양수(歐陽修) 등 중국 시인에 관한 시평과 시작(詩作)에 관한 내용이 들어 있다. 저자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있는 것을 전재(轉載)한 것이 대부분이며, 홍만종(洪萬宗)의 《시화총림(詩話叢林)》에 수편(首篇)으로 실려 있을 뿐 달리 전하는 것은 없다. 홍만종의 《시화총림》에 이규보 찬이라고 되어 있어 이규보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후대 사람이 《동국이상국집》에서 발췌한 것이라는 설과 이규보의 평소의 잡기류(雜記類)를 《시학총림》에 실어놓은 것이라는 설이 있다. 줄[行]을 바꾼 것을 한 편으로 본다면 모두 3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이규보의 시론(詩論)을 중심으로 엮은 시화집으로서 귀중한 자료가 된다.



●동국이상국문집 서 東國李相國文集序

공의 성은 이씨, 이름은 규보(奎報), 자는 춘경(春卿)이다. 처음에는 이름을 인저(仁?)라고 했다가 꿈에 규성(奎星 28수(宿)의 열다섯 번째 별)이 이상한 상서를 보여 주는 것을 보고 규보로 고쳤다. 아홉 살 때 능히 글을 짓자, 세상에서 기동(奇童)이라고 일컬었고 조금 커서는 경사(經史)ㆍ백가(百家)ㆍ불서(佛書)ㆍ도질(道秩 도가서(道家書)) 등을 두루 읽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무엇이든지 한 번만 보면 다 기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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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평생에 저술한 글을 쌓아 두지 않았기에 아들인 감찰어사(監察御史) ★함(涵)이 만분의 일쯤 주워 모았었다. 고부(古賦)ㆍ고율시(古律詩)ㆍ전표(箋表)ㆍ비명(碑銘)ㆍ잡문(雜文) 따위 몇 편을 한데 합쳐서 문집을 만들도록 간청한 결과, 공이 그 간청을 옳게 여기고 이리저리 갈라 41권으로 만들어 이름을 동국이상국문집(東國李相國文集)이라 하였다. ★함(涵)은 또 공에게 간청하기를,
“문집이 이미 이루어졌으니 서문이 없을 수 없습니다.”
하므로 공은 나에게 서문을 쓰라고 명하였다. 그러나 나는 본래 재주가 모자라고 또 공의 아들과 같은 또래로서 첫머리에 쓰는 서문을 감히 지을 수 없다고 사양했지만 공의 명이 더욱 신근하기에 이 몇 마디의 말로 서문을 적는다.

신축년(1241) 8월 일에 입내시 조산대부(入內侍朝散大夫) 상서 예부시랑 직보문각 태자문학(尙書禮部侍郞直寶文閣太子文學) ★이수(李需)는 서한다.



●이상국집 발미 李相國集跋尾

발미(跋尾)

사손(嗣孫) ★익배(益培)는 말한다.
할아버지 문순공(文順公)의 전집(全集) 41권, 후집(後集) 12권, 연보(年譜) 1축(軸)이 세상에 행해진 지 이미 오랜데, 오착되고 탈루된 곳이 많이 있다. 이제 분사도감(分司都監)이 해인사(海印寺)의《대장경(大藏經)》판각을 마치고 나서, 칙명(勅命)을 받들어 이 문집을 판각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 다행히 그 이웃 고을에서 벼슬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가장본(家藏本) 한 질로 그를 교수(校讐)하였다.
신해년에 고려국 분사대장도감(高麗國分司大藏都監)은 칙명을 받들어 판각하였다.

교감(校勘) : 하동군감무관구학사 장사랑 양온령(河東郡監務管句學事將仕郞良?令) ★이익배(李益培)
녹사(錄事) : 장사랑 군기주부 동정(將仕郞軍器注簿同正) 장세후(張世候)
녹사(錄事) : 장사랑 군기주부 동정 홍식(洪湜)
부사(副使) : 진주목부사 병마금할시 상서공부시랑(晉州牧副使兵馬?轄試尙書工部侍郞) 전광재(全光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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