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143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06 (정각국사,진각국사,원진국사)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4-09-15 14:42 조회1,494회 댓글0건본문
●동국이상국문집 연보
연보 年譜
---
임진년(고종 19년, 1232) 공의 나이 65세.
지난 기축년(고종 16년, 1229)에 왕사(王師)가 죽었는데 이해에 문인들이 임금께 아뢰자 공에게 비명(碑銘)을 지으라고 명하였다. ◀?김효인 書
---
갑오년(고종 21년, 1234) 공의 나이 67세.
12월에 정당문학 감수국사(政堂文學監修國史)에 제수되어 칙명(勅命)을 받고 송광사주(松廣社主) 법진각국사(法眞覺國師)의 비명(碑銘)을 지었다. ◀김효인 書
●동국이상국전집 제35권
비명ㆍ묘지 碑銘 墓誌
고(故) 화장사 주지 왕사 정인대선사 추봉 정각국사(華藏寺住持王師定印大禪師追封靜覺國師)의 비명(碑銘) 봉선술(奉宣述)
---
국사는 성이 전씨(田氏), 휘(諱)가 지겸(志謙), 자가 양지(讓之)인데, 세계(世系)는 영광군(靈光郡)의 태조 공신(太祖功臣)인 운기장군(雲騎將軍) 종회(宗會)에서 나왔고, 광묘조(光廟朝)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추밀원사(樞密院使)에 이른 휘 공지(拱之)의 6대손이다. 증조부 휘 개(漑)는 검교 태자첨사(檢校太子詹事)요, 조부 덕보(德普)는 대창서 령(大倉署令)이요, 부친 의(毅)는 검교 태자첨사요, 모친은 남궁씨(南宮氏)인데 양온령(良?令) 영(榮)의 딸이다.
모친의 꿈에 중이 집에 와서 유숙하기를 청하였다. 그길로 임신하여 낳으니 골상(骨相)이 준상(峻爽)하고 기신(機神)이 영매(英邁)하여 어릴 때에도 희롱을 좋아하지 않고 항상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처럼 하였다. 홀연히 비범한 중을 만났는데, 그 중이 말하기를,
---
문인 대선사(大禪師) 확운(廓雲)등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국사가 작고한 지 오랜데, 비석이 아직 서지 않았으므로 신등은 깊이 한스럽게 여깁니다. 글을 지어 돌에 새겨서 영구히 전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소신에게 명하여 글을 짓게 하고, 이어 모비(某碑)라고 액(額)을 하사하였다. 신은 감히 피하지 못하여 삼가 재배하고 다음과 같이 명(銘)을 짓는다.
●동국이상국전집 제35권
비명ㆍ묘지 碑銘 墓誌
조계산 제2세 고 단속사주지 수선사주 증시 진각국사(曹溪山第二世故斷俗寺住持修禪社主贈諡眞覺國師)의 비명 병서(幷序) 봉선술(奉宣述)
---
갑오년 6월 26일에 문인들을 불러서 뒷일을 부탁하고, 마곡에게 말하기를,
"늙은 내가 오늘 몹시 바쁘다."
하자, 마곡이 대답하기를,
"무엇을 가리키시는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국사는 말하기를,
"늙은 내가 몹시 바쁘다."
하였다. 마곡이 멍하니 있으니, 국사는 미소를 지으면서 가부좌(跏趺坐)하고 죽었다. 이튿날 월등사의 북쪽 산봉우리에서 화장하고 그 유골을 주워서 본산(本山)으로 돌아왔다. 임금이 이 소식을 듣고 매우 슬퍼하였으며 진각국사(眞覺國師)하는 시호를 내렸다.
을미년 여름에 광원사(廣原寺)의 북쪽에 장사를 지내고 드디어 부도(浮圖)를 세우니, 임금이 원소지탑(圓炤之塔)이라고 사액(賜額)하였다. 향년은 57세이고, 승랍(僧臘)은 32년이었다.
---
국사의 법통을 계승한 선로(禪老) 몽여(夢如)도 법왕(法王)이다. 그가 일암거사(逸庵居士) 정분(鄭奮)을 청하여서 국사의 행록(行錄)을 초해 갖추어서, 비석 세울 일을 진양공에게 청하였다. 진양공은 말하기를,
"화상(和尙)이 세상에 생존할 때 사람들을 이롭게 함이 많았으니, 비석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하고, 드디어 임금에게 알리자, 임금이 소신에게 명하여 명(銘)을 짓게 하므로 다음과 같이 명을 짓는다.
●동국이상국전집 제34권
교서ㆍ마제ㆍ관고 敎書 麻制 官誥
고 보경사 주시 대선사(寶鏡寺住持大禪師)를 원진국사(圓眞國師)로 증시(贈諡)하는 교서(敎書)와 관고(官誥)
관고
……대개 지인(至人)의 경지는 사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지 않고, 죽는 것을 슬픔으로 삼지 않으매, 추어 올린다 해도 영광으로 여기지 않고, 깎아 내린다 해도 욕되게 여기지 아니하는 것이니, 심오한 진리에 억지로 어떤 이름이 붙여질 수 없다. 그러나 옛날에 불씨(佛氏)가 나와 세상에 존중을 받았기 때문에 세존(世尊)이라 하였고, 천인(天人)의 스승이 되었기 때문에 천인사(天人師)라 하였다. 또 부처의 덕이 이것으로 많아지거나 줄어지는 것은 아닌데, 그 칭호를 이와 같이 한 것은, 대개 이름이 실상을 따라 나타나 자연적으로 나오게 되기 때문이다.
선사(禪師)는 도가 온전하고 덕이 갖추어져 당세의 사표가 되므로, 국사의 이름으로 높이는 것이다. 대개 왕사(王師)란 것은 한 임금이 본받는 것이요 국사(國師)란 것은 한 나라가 의지하는 것이다. 실상이 이미 내면에 찼으니 바깥 이름을 도피할 수 있겠는가. 마땅히 그 이름을 선양하여 길이 장래를 빛나게 하겠노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