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145 ---최자의 보한집 01 <간행경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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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16 14:06 조회1,681회 댓글0건본문
최자(1188-1260)는 영열공 금의 문하생으로 집권자 최이의 명으로 이인로의 파한집을 보완하여 1254년경 보한집을 간행하였다. 보한집에는 금의의 문하생 황보관, 최자 등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문숙공 최유청 손자들인 최종준, 최종재, 최종번 이야기, 그리고 충렬공 백부 김창, 부 김효인 기록도 약간 나오고 있습니다.
최자는 충렬공 백부 김창(?-1256), 부 김효인 (?1290경-1253)과 거의 동년배로서 김효인과는 영열공 금의의 문하생으로 교류가 있었을 것이고, 월남사지 진각국사비 前面은 1234년 이규보 찬, 김효인 서로 세운 것이고, 후면 음기는 1250년 최자 찬, 탁연 서로 세운 것이다.
보한집 또한 1254년경 간행되었으므로 충렬공께서 많이 보았을 것이다.
보한집에 나오는 충렬공 先系 관련 기록을 발췌해 보고자 합니다.
■ 보한집 (補閑集)
고려 고종 때에 ★최자(崔滋)가 엮은 시화집(詩話集). 초간본은 최자가 서문을 쓴 1254년(고종 41) 무렵에 간행된 것으로 여겨지나 전해지는 것이 없다. 효종 때의 각본(刻本)이 있고, 활판본으로는 1911년 조선고서간행회에서 《파한집(破閑集)》 등과 합철하여 낸 것이 있다.
최자는 자서(自序)에서 이인로(李仁老)가 고금의 여러 명현의 좋은 문장을 모아서 책으로 엮어 《파한집》이라 하였으나, 그 책이 너무 간략하여 산일된 나머지를 모아 이 책을 만들었다고 편집경위를 밝히고 있다. 《보한집》은 문학론이 풍부하므로 고전시학사를 이해하기 위해 철저한 고찰이 요구되며, 이규보(李奎報)의 작품을 가장 높이 평가하고 있다. 3권 1책. 목판본.
■ 보한집 (2003.9, 구인환 엮음. 신원문화사)
서(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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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고금의 명현(名賢)으로서 문집을 엮어 놓은 사람은 다만 수십 명밖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그 밖에 좋은 문장이나 뛰어난 시는 모두 없어져 버려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학사 이인로가 그러한 시문을 대강 수집하여 책을 엮어 내니 그 이름을 <파한집(破閑集)> 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진양공(晋陽公 ◀최이)은 그 책이 수록된 범위가 너무 간략하다고 하여 나(◀최자)에게 그 책을 속작(續作) 보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나는 없어져 버리거나, 잊혀진 나머지를 가까스로 찾아서 신체시(新體詩)1)로 약간의 연(聯)을 얻었다. 혹 부도(浮屠)2)나 아녀자들의 작품에 있어서는 한두 가지 담소의 자료가 될 만한 것은 그 시가 비록 훌륭하지 않아도 실었다.
그리하여 모두 1부 3권을 만들었는데 미처 출판할 기회를 찾지 못하였다가 이제 시중 상주국(侍中 上柱國) 최공(崔公 ◀?최항)이 선친(◀최이)의 뜻을 추모하여 그 책을 찾으므로 삼가 써서 드렸다.
갑인년(1254) 4월 수태위(守太尉) 최자(崔滋)3)가 서문을 썼다.
1) 중국의 수 당나라 이후에 확립된 5언 7언의 율시 배율 절구의 총칭
2) 이름난 중이 죽은 뒤에 그 유골을 안치해서 세운 둥근 돌탑
3) 고려 강종 고종 때의 학자. 고종 때 중서문하 평장사 등을 지냈는데, 학식과 행정이 겸비해서 치적이 많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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