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147 ---최자의 보한집 03 <최종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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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16 14:13 조회1,376회 댓글0건본문
■ 보한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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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숙공(譽肅公) 최석(崔奭)의 아버지는 태조를 도와 공을 세웠다. 예숙공은 장원으로 급제하여 평장사가 되었고 그의 아들 문숙공(文肅公) 유청(惟淸)은 유수가 되어 남도(南都)로 부임하려는 날 가마 아래 서 있던 유청의 두 아들에게 이런 시로써 훈계하였다.
'우리 집안은 청렴 결백하여 남겨 줄 물건은 없고 다만 경서(經書) 1만 권을 보존하고 있으니, 너희들은 앞으로 책 읽기에 열심을 다 하고, 입신 출세하여 임금을 도와 존엄하게 하라.'
문숙공은 이 시에 스스로 풀이하되,
'임금이 존엄하면 나라가 옳게 다스려지며, 나라가 바르게 다스려진다면 가정이 편안하게 되며, 몸이 편하고 몸이 편하게 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고 말하였으니 두 아들은 과연 선비로서 재상의 지위에 올랐다.
맏아들은 정안공(鄭安公) 당(言黨)이며, 지금 판추인 인(璘)은 그의 손자이고,
둘째 아들은 문의공(文懿公) 선(銑)이며, 지금의 시중(侍中) ★종준(宗峻), 복야 ★종재(宗梓), 승선 종번(宗蕃)이 전부 그의 아들들이다.
복야가 시중에게 답한 시에,
'3대가 다 평장사를 지내더니, 형은 시중이 되고, 사위 셋은 모두 재상이 되었구나. 한 사람은 용두로 장원 급제를 하였고, 두 사람은 똑같이 도끼를 받아 상부원수가 되었네, 대대로 선(善)을 쌓더니 그 자손들에게 경사가 잇달았구나. 높은 벼슬이 조정에 가득 찼으니 그 자손의 융성함을!'
이라고 하였다.
<문숙공가집(文肅公◀최유청 歌集)>은 항간에 많이 나돌고 있으나 여기에는 아들을 교훈한 글 한 편만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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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숙공(宣肅公) 최종준(崔宗峻)은 타고난 성품이 맑고 절개가 곧다. 20세도 못 되어 벼슬 자리에 올랐으나 한 번도 법에 어긋남이 없었고, 시중(侍中)으로 있다가 총재(塚宰)에 오른 지 15년이나 되었지만 문간과 뜨락이 물처럼 맑았고, 만년에 이르러 퇴직할 것을 청하니 임금은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시어 조회(朝會)에 나오지 말고 그 전과 다름없이 정사를 돕도록 하였다. 상주목사가 하동지장(賀冬至狀)에,
"귀하면서도 소탈하고, 담백하고 강직하며 사리에 밝아서 문간과 뜰에는 티끌이 끼어들지 못하고, 종들도 오히려 얼음 구슬은 두렵게 바라 보았으며, 빛나는 태도는 본받을 점이 많아 자연스러우며, 조금도 꾸밈이 없습니다. 끝까지 절개를 지켜 다섯 임금을 보필하였고, 벼슬길에 오른 이후 유사(有司)에 탄핵당한 때가 한 번도 없엇고, 4대에 걸쳐 평장사를 냈으니, 매미 깃으로 만들었다는 선관(蟬冠)보다 높은 것이 없었습니다. 10년 동안 총재를 맡은 것도 드문 일인데 하물며 평생의 구장(鳩杖)을 하사받았음에랴....."
라고 하였다. 공(公)이 특별히 화답하기를,
"청렴하고 강직하며, 사사로운 마음이 없고 충성과 절개로써 스스로 허락하였습니다. 고을 서기가 입는 남포의 뒤를 수령이 입는 자포로써 뒤를 이었고 자수가 있는 영각으로써 황각(黃閣)4) 의 옛 발자취를 찾았습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정사를 잘 하시며 문장의 값도 귀히 생각하시고 친구에게도 보내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외팔이 안부를 물으시니, ★상락(上洛)에 그윽한 향기의 매화는 목사를 따라 녹야당(綠野堂)1) 노인에게 다다르고, 중서(中書)의 붉게 핀 작약은 주인이 없어 자미사인(紫薇舍人)을 기다리오니, 마땅히 비단같이 아름다운 글을 지으시어 바로 윤음(윤音)2)을 부연하는 지위에 오르십시오."
라고 하였다. 대개 재상이 축하하는 글에 화답할 때에는 한두 줄에 불과한 짧은 편지가 보통인데, 이제 이 답장은 지극히 보통 것과 다른 고을의 목사들도 귀 기울여 듣고 모두 영화롭게 여겼다.
4)황각(黃閣) : 의정부의 별칭
1)녹야당(綠野堂) : 당나라의 배도. 녹야당은 그의 별장임
2)윤음(윤音) : 임긍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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