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158 ---필사본 <諸經撮要> 내 <法門景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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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20 11:27 조회1,498회 댓글0건본문
■ 도서관학논집 제21집 (1994.12, 한국도서관 정보학회)
●몽산 덕이와 고려 인물들과의 교류 -필사본 <諸經撮要>의 수록내용을 중심으로- (남권희/ 경북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조교수)
필자가 이 자료를 구하게 된 것은 1994년 봄 시중의 서점에서 일단의 불교자료를 살피던 중에 일부가 낱장으로 체계가 없이 흩어져 있는 필사본 하나를 보게 되어 구입하게 되었다. 그후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 정도의 연결과 복원이 가능하여 정리를 마쳤으며 표지의 서명은 <諸經撮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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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중에서 몽산과 관련된 것은 약 40개항에 이르고 대체로 이전의 다른 자료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내용이 대부분이다. 그중 休休庵銘은 몽산의 주 활동장소로서 또 휴휴암 좌선문과 관련이 되어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자료는 연대기적인 기록으로 <法門景致>가 원정 정유 중춘(사실은 대덕 원년, 1297.2)에 이루어지고 그 後序는 원정 3년(사실은 대덕 원년, 1297.2.2)에 몽산에 의하여 쓰여져 고려의 공주를 비롯한 大臣, 名士들이 그를 찾은 기록이라고 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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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산 덕이의 저술 내지는 관련된 것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사실은 그의 46세가 되던 1278년에 道德經을 直註하였으며 지원 24년(1287)에 <직주도덕경>이 상주로 무석현 梅王居士 坦(탄)의 도움으로 吳中 휴휴암에서 간행되었으며 지원 27년)1290)에는 <六祖壇徑>을 재편하고 유통에 노력하여 일반적으로 德異本 이라 불리는 것이 되었다. ---또 <동안거사집>에도 <上몽산화상사사법어> <화상소기법어> 등에서도 三轉語와 法語를 이승휴에게 준 기록이 전하고 있다.
法門景致에 대한 분석
이 부분은 전체의 필사본 중에서는 일부에 해당하지만 체제로 보아 먼저 몽산의 序가 있고 이어 十松에 관한 내용을 入門에 비교하고 이어 頌을 첨부시켰다. 본문의 뒤에는 역시 몽산의 後序가 있고 跋에 해당하는 伏(木빼고楮見)<공경하여 우러러 봄)에 ‘門人 高麗國長老 了庵元明 題’가 있어서 완전한 한권의 단행본 체제를 갖추고 있다. 더구나 이 내용이 入道의 龜鑑이 되므로 판에 새겨서 널리 전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완전한 단행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蒙山은 丁丑(1277)년 여름부터 澱山의 일을 마치고 中吳의 休休庵이라는 작은 庵子에 머물러 쉬고 있었다. 그가 63세 되던 고려 충렬왕21년(1295) 겨울에 고려에서 了庵元明 長老와 覺圓上人, 覺性上人, 妙孚上人 등 8사람이 찾아가 같이 지내다가 충렬왕22년(1296) 여름에 仲孚上人 등 4사람은 돌아 갔다.
그해 겨울 萬壽上人이 몽산에게 가서 전하기를 고려국 내원당대선사 混丘, 정녕원공주왕씨 妙智, 명순원공주왕씨 妙惠, 전 도원수 상락공 金方慶, 시중 韓공康, 재상 廉공承益, 재상 金공昕, 재상 李공混, 상무 朴공卿, 상무 柳공(옷의변居) 등 여러 사람이 재삼 만나고자 하는 뜻을 전하여 오므로 休休長老가 멀리 上庵에서 安居하고 있을 때라 나누어 施를 베풀었다. 몽산은 답을 하지 않고 만수상인을 청하여 요암장로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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