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의 뿌리 이설(이규태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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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09-28 18:46 조회1,658회 댓글0건본문
발행일 : 1992-09-10 / 게재면 : 5
기고자 : 이규태
추석의 뿌리 이설(이규태코너)
통일신라시대인 흥덕왕(835년)때 일이다. 일본 유학승 원인은 당나라 산동지방의 연안에서 난파를 당했다가 당시 이 지방의 실력자인 신라의 장보고의 도움으로 적산원이라는 신라절에 들어가 머물고 있다. 이 원인스님이 신라절간에서 지나던 8월15일 추석날짜에 쓴 일기를 옮겨보면 이렇다.
"절에서는 만두와 떡을 빚어 팔월 대보름의 명절을 융숭하게 차렸다. 이 추석명절은 다른 나라들에서는 쇠지 않는데 오로지 신라만이 성대히 치른다.
노승들이 말한 바에 의하면 신라와 발해가 싸웠을때 이 팔월 보름날에 크게 이겼기로 이 전승을 기념하고자 명절로 삼고 노래를 읊고 춤을 추며 즐기기를 대대로 이어온다 했다.
이렇게 즐기길 사흘 만에야 끝나는 것이었다. 패배한 발해국은 신라에 쫓기어 겨우 천여명이 북쪽으로 도망쳤는데 그후 다시 실지를 회복하여 나라를 만든 것이 지금의 발해국이라 했다. "
삼국사기 성덕왕 32년 기록과 신당서 신라전을 취합해보면 서기 732년에 발해와 말갈이 바다를 건너 당나라 등주에 침입해온지라 현종은 신라로 하여금 이를 격퇴하도록 의뢰를 했다.
신라에서는 왕족인 김사란으로 하여금 이 침략자를 뒤쫓게 했는데 초전에는 대설로 대패를 했고 다시 병력을 가다듬어 발해군을 멀리 북쪽 말갈 땅으로 쫓아버렸다 한다.
이것이 발해와 싸운 유일한 기록인데 이만한 전승으로 그토록 성대한 세시축전이 형성될리는 만무하다. 혹시 당나라를 업고 고구려를 망가뜨린 날을 팔월 대보름의 가위(가배)날에 복합시켜 경축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또다른 추석기원의 이설이 조선시대 후기의 실학자 이규경이 제기해 놓고 있다. 그에 의하면 신라가 가락국을 합병하자 가락국의 유민들이 망국의 설움을 달래고자 시조제를 지내고 여흥으로 풍악과 가무를 즐겼는데 그 날이 바로 팔월 대보름날이요,그것이 추석명절의 기원이 됐다고 변증하고 있다.
신라 초기에 풍성한 추수를 감사하고 부녀자들의 길쌈 장려책으로 그 실적을 겨루며 사나이들의 무예 장려책으로 활쏘는 솜씨를 겨루고 그 여흥으로 가무를 즐겼다던 한가위에 뿌리를 수정할 만한 기원설은 못된다. 하지만 역사가 흐르는 동안 숱하게 많았을 온백성이 기뻐할 일과 원통해야 할 일들이 이 명절과 복합되었을 가능성은 부정할 수 없다. 오곡백과의 결실을 감사하는 것 만으로 그치는 추석이 아니라 고구려 망국이나 가락국 망국의 역사적 교훈도 되새기는 명절이기도 했으면 하는 추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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