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렬공 金方慶 172 ---1478 동문선 1518 속동문선 02 --- 김창, 김효인, 김유선(金惟銑)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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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0-04 08:20 조회1,499회 댓글0건본문
동문선 제26권
제고(制誥)
●제 재신 임경숙 채송년 김창 조돈 추밀원사 최인 마제(除宰臣任景肅蔡松年金敞趙敦樞密院使崔璘麻制)
하천단(河千旦)
재상은 하늘을 대신하여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므로 공으로만 하여 사를 잊는 것이요, 임금은 덕을 높이고 공을 갚아야 하므로 예로써 신하를 대우하는 것이다. 짐은 스스로 못난 줄을 아는데, 어진 이가 아니면 누구와 더불어 나라를 지키겠는가. 마땅히 그 오래 벼슬한 사람을 임용하여, 새 도읍주D-001에서 천명을 길게 하려 한다. 이에 감히 위대한 인재를 추천하여 밝은 조정에 고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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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관(具官) 김창(金敞)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시(詩)ㆍ서(書)ㆍ예(禮)의 아언(雅言)을 들었으며, 머리털을 맺은 뒤로부터 기국과 학식과 덕행의 대체(大體)를 가졌다. 높은 이름을 일찍이 앵방(鶯榜)에서 드날렸고, 두터운 덕망은 우리 나라에 높았다. 그러므로 원로대신이 추천하니 큰 소임을 맡게 함이 가하다. 긴 날개를 밀어 올려서 활짝 트인 큰 길에 날게 한다. 학(鶴)을 타고 양주(楊州)로 올라가서는 만전(萬錢)을 허리에 차지 않고 왔고,주D-009총마(驄馬)를 타고 백서(柏署)에 들어가니 여러 벼슬아치들이 눈을 바로보지 못하고 두려워했다. 홍약(紅藥)의 섬돌에 올라서서는 여러 번 청포(靑蒲)의 자리에 엎드렸다.주D-010 윤음을 초할 즈음에는 다 입으로 봉황을 토한 것이었고,주D-011 인물을 감식할 즈음에는 눈에 온전한 소가 없었다.주D-012 도가니와 망치를 손에 맡겨 도균(陶鈞)의 솜씨를 시험했더니,주D-013 마음이 저울같이 공평하여 털끝만한 사심(私心)도 용납되지 않았다. 경이 천(天)ㆍ지(地)ㆍ인(人)의 이치를 통한 참다운 선비임을 알았으므로, 경으로 하여금 문(文)ㆍ무(武)ㆍ가(吏)의 선임을 맡아보게 하였다. 삼전(三銓)을 장악하여 사과예(四科藝)를 고사하는데, 밝은 거울로 만물의 형체를 비치는 것 같았다. 과거 시험장에서 선비를 뽑아낸 것이 비록 두 번이나, 훌륭한 인재를 뽑은 것은 만 명을 헤아리겠다. 네가 네 공을 자랑하지 아니하나 천하 사람이 너와 다툴 이 없으며, 짐이 이미 아는 바로 인간 세상에서는 견줄 사람이 드물다. 부지런한 공이 이미 천고에 짝이 없으니, 포상을 어찌 보통 예로써 논할 수 있겠는가. 태학사(大學士)로 관직과 자급을 높여 주고, 상서(尙書)로서의 칼과 신을 은총으로 준다.주D-014 그러나 민심은 아직도 부족하게 여기고 있고, 짐의 마음에도 만족하지 아니하다. 그래서 전의 은청(銀靑)을 새로이 금자(金紫)로 바꾸어 준다.주D-015 중추부에 앉았던 자리가 따뜻하기도 전에 중서성으로 제수하는 교서를 내렸다. 정당(政堂)에서 집현전(集賢殿) 직책을 겸하게 한 것은 중서성의 큰 정무를 처결하라는 것이요, 사공(司空)에서 복야(僕射)의 벼슬을 띠게 하는 것은 외성(外省)의 풍기를 맑게 하려는 것이다. 삼선(三善)을 지도하여 더욱 빛나게 하고, 구공(九工)을 주관하여 수리하는 일을 맡게 한다. 짐이 너에게 고하는 것을 듣고 끝까지 삼가하여 처음같이 하라. 이에 특별히 금자광록대부 수사공 정당문학 상서좌복야 집현전태학사 판공부사 태자소보(金紫光祿大夫守司空政堂文學尙書左僕射集賢殿大學士判工部事太子少保)로 제수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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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D-009] 학(鶴)을 타고 양주(楊州)로 올라가서는 만전(萬錢)을 허리에 차지 않고 왔고, : 고을 수령으로 나가서 청렴한 정사를 폈다는 말이다. 옛날에 네 사람이 각각 소원을 말하는데, “한 사람은 학을 타고 신선되기를 원하고, 한 사람은 십 만관을 원하며, 한 사람은 양주 자사를 원하고, 한 사람은 허리에 십만 관의 돈을 차고 학을 타고서 양주로 올라가겠다.” 하였다.
[주 D-010] 여러 번 청포(靑蒲)의 자리에 엎드렸다. : 푸른 부들[蒲]로 만든 자리는 천자가 깔고 앉는 자리라 한다. 한(漢)나라 사단(史丹)이 청포석 앞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면서 간하는 말을 올렸다 한다. 청포는 천자의 자리로서 황후 이외에는 그 자리에 가지 못하는 것이다.
[주 D-011] 윤음을 초할 즈음에는 다 입으로 봉황을 토한 것이었고, : 양웅(楊雄)이 《태현경(太玄經)》을 지을 때에 꿈에 봉황을 입에서 토하여 날아나오는 것을 보았다 한다. 명문가(名文家)를 뜻한다.
[주 D-012] 인물을 감식할 즈음에는 눈에 온전한 소가 없었다. : 감식안이 아주 뛰어난 것을 말한다 《장자》에 포정(庖丁)이라는 소잡는 사람이 말하기를, “자기가 처음 소를 잡을 때는 보는 것이 모두 소 아닌 것이 없더니, 3년을 지난 뒤에는 아직 완전한 소를 보지 못했다.” 하였다. 그것은 소잡는 기술이 숙달하여 소를 보면 뼈나 힘줄들이 낱낱이 떨어져 보인다는 말이다.
[주 D-013] 도가니와 망치를 손에 맡겨 도균(陶鈞)의 솜씨를 시험했더니, : 도균이란 도기(陶器)를 제조하는 데 쓰는 선반(旋盤) 녹로(鏕鑪)를 말하는 것인데, 이것을 임금이나 정승이 천하를 주물러 만든 것에 비유하였다.
[주 D-014] 상서(尙書)로서의 칼과 신을 은총으로 준다. : 한 고제(漢高帝)가 일등 공신 소하(蕭何)에게, “칼차고 신신은 채로 전(殿)에 오를 수 있는 특전을 허락한다.” 하였다.
[주 D-015] 은청(銀靑)을 새로이 금자(金紫)로 바꾸어 준다. : 고려 시대의 문관 위계(文官位階)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와 금자광록대부가 있는데, 은청과 금자는 의제(衣制)의 차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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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선 제61권
서(書)
●여 중산칭해 양관인 서(與中山稱海兩官人書)
김창(金敞)
초여름 날씨가 점점 더워 오는데 엎드려 생각건대 장생천기력(長生天氣力)의 몽고대조국사해황제(夢古大朝國四海皇帝)의 은혜를 입고 있는 대관인 각하께서는 기체 천복(千福)하십니까.
우리나라는 오로지 수부(帥府)에서 어루만져 보존해 주시는 은혜를 입어 다만 여러 신하들이 모두 즐거워할 뿐만 아니라 일반 서민들에 이르러서도 면식(眠食)할 수 있으니, 성한 덕망의 지극함을 어찌 말로 다 펼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우리나라의 원수(元帥)가 상국의 원수 하칭찰라(何稱扎剌)와 더불어 강화(講和)하여 투항해 절하였고, 그 공부(貢賦)의 제도는 성길사(成吉思) 황제의 칙령이 있어서 한 해에 열 사람을 보내어 싸서 오게 함을 일정한 법식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므로 사신 착고여(着古與)가 전해 오는 예에 의해서 공부를 가지고 떠나갔는데 중도에서 파속인(波速人)에게 해를 입어 이때부터 길이 막혀 다시는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신묘년에 이르러 상국의 관인이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묻기에 친형 회안공(淮安公)을 보내어 그 까닭을 갖추어 말함으로써 얼음 녹듯이 의심이 풀렸습니다.
무술(戊戌)년 12월이 지나서 김보정(金寶鼎)ㆍ송언기(宋彦琦)를 보내고 기해년 6월에는 김겸(金謙)ㆍ노연(盧演) 등을 보내어 모두 재물을 받들어 배알(拜謁)하고 계속해서 직분을 다하는 마음을 폈더니, 김보정 등이 성지(聖旨)를 받들어 전함에 정성스럽고 곡진하게 답해 주신 은혜를 입어 경사스럽고 기쁜 마음을 이겨내지 못하였습니다.
기해년 12월에는 친제(親弟) 신안공(新安公)을 보내어서 나를 대신하여 몸소 토산물을 가지고 사신으로 궐하(闕下)에 이르게 했었으며, 금년 3월에는 그 전의 사신으로 갔던 노연(盧演)ㆍ김겸(金謙) 등이 돌아와서 성지를 전하여 보이고 또한 각하께서 우리나라를 힘써 보호하여 주심이 심히 절실했었다는 말에 한없이 감동되어 울었습니다.
또 우리나라는 멀리 해돋는 바다 모퉁이에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바람과 말과 소가 서로 미치지 못하는 곳인데, 대관인(大官人) 각하께서 곡진히 보우(保佑)하심을 이처럼 지극히 하시니, 오랜 세월을 지나오는 동안 맺어진 두터운 인연이 있지 아니하면 그 누가 이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 또 사신을 보내어 황제 궐하께 나아가게 하였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더욱더 가엾게 여기셔서 저를 위하여 잘 말씀드려 주소서.
각하께서는 이미 우리 작은 나라를 염려해 주시니 제가 힘을 내어 직임(職任)을 다하여 다른 뜻이 없다는 것을 헤아려 주시고, 매번 보내는 사신의 말을 취하시어 황제의 귀에 들어가게 하시고 황제의 은혜를 인도하여 내리게 하여 우리나라를 길게 보호해 주신다면 제가 비록 민첩하지 못하오나 어찌 감히 은혜를 저버리겠습니까.
변변치 못한 토산물이지만 멀리 정성과 공경을 표시하는 바이오니 받아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나이다.
동문선 제20권
칠언절구(七言絶句)
●삼일포 단서석(三日浦丹書石)
김효인(金孝印)
비와 갈을 새기는 일은 옛날에도 많았지만 / 刻碑鐫碣古猶多
이끼가 먹고 티끌이 침노해 글자는 갈수록 알아볼 수 없나니 / 蘚食塵侵字轉訛
어찌 손가락 끝의 천재의 피로 / 爭似指頭千載血
한 번 산돌들 적셔 없어지지 않음 만하랴 / 一淪山石不銷磨
동문선 제123권
묘지(墓誌)
고 정당문학 이공 묘지(故政堂文學李公墓誌)
최해(崔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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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의 휘는 언충(彥沖)이요, 자는 입지(立之)이며, 선대는 청주(淸州)전의현(全義縣)이 본향이다. 국가 근세의 명재상인 휘 혼(混), 시호 문장공(文莊公)의 조카이며, 고 응양군 대장군(鷹敭軍大將軍) 휘 천(仟)과, 고 직문한서(直文翰署) 증대사성(贈大司成) 휘 자원(子蒝)은 공의 조부와 부친이 되며, 고 검교군기감(檢校軍器監) 김유선(金惟銑)의 딸 봉작 영가군부인(永嘉郡夫人)은 공의 모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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