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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 이야기 (2004.10.15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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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0-15 13:26 조회2,33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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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경교장 이야기

경교장(京橋莊)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며 오늘에 이른 건물도 흔치 않은 것같다. 경교장은 광복후 중국에서 환국한 백범(白凡) 김구(金九)선생의 사저(私邸)로 사용돼 유명해졌다. 경교장이라는 명칭도 김구선생이 당시 근처에 있던 다리 경구교(京口橋)의 줄임말인 ‘경교’에서 따 붙인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건물의 이름은 일본식 이름인 죽첨장(竹添莊)이었고 금광을 하던 최창학(崔昌學)의 저택으로 1939년 착공, 3년만에 완공된 것으로 전해진다이었다. 건축 당시에는 약1600평 대지에 지하 1층, 지상 2층 260여평 규모의 단아한 일본식 양옥이었으며 최창학이 김구선생의 거처로 제공했다. 김구선생은 1945년 11월 돌아와 1949년 6월 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될 때까지 3년 7개월간 이곳을 집무실과 숙소로 사용했다.

그런만큼 경교장은 김구선생의 행적이 남아있는 국내 유일의 장소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이곳에서 임시정부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남북협상을 구상하는가 하면 신탁통치 반대를 이끌었다. 경교장은 사실상 임시정부 청사 역할을 한 셈이다. 그런 장소가 미군 주둔지와 외국의 대사관저 등으로 이용되다 1967년 삼성재단에 매입돼 강북삼성병원 부속건물로 쓰이고 있다.

이 건물을 국가 문화재로 지정, 복원해야 한다는 운동이 벌어졌으나 정부와 서울시는 그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다. 이들은 경교장이 사유재산이라는 이유로 간섭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결국 서울시는 이 건물을 2001년 4월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했을 뿐 별다른 보호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이승만 전 대통령이 약 2년동안 머물렀던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의 이화장 보존과는 대조적이다. 이화장은 1982년 서울시 기념물 제6호로 지정돼 많은 예산이 투입돼 관리되고 있다.

강북삼성병원 측은 며칠전 경교장 2층 김구선생의 집무실에 기념실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김구선생이 흉탄에 서거했던 곳이다. 경교장은 내부가 개조돼 원무과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념실로 만들겠다는 2층의 집무실은 약 24평으로 그동안 의사 휴게실로 쓰이다 지금은 공사를 위해 비워둔 채다.

휑한 방안에 들어서자 ‘독립정신’이라고 한자로 쓴 김구선생의 휘호 복사본이 눈길을 끌고 거주당시 찍은 사진들이 몇장 걸려있다. 병원측은 올해 안에 기념관을 복원, 일반에게 공개키로 했으나 아직 설계단계라고 한다. 내년이 돼야 완공되리라는 얘기다. 김구선생 서거 56년이 지나도 이 모양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머문다.

김광원 / 논설위원  
문화일보 (기사 게재 일자 2004/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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