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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연재 휘 희수(諱 希壽) 필적(이 인 신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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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4-10-17 19:48 조회3,21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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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함께 하는 가을 산행은 정말 좋다.
김밥과 과일 몇 개. 그리고 탁주 한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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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구나 하산 길에 선조님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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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신도비(유연재 김희수 서. 남곤 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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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인 신도비 이수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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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비 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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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도비 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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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도비 부분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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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묘소, 묘표, 동자석, 망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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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해군(寧海君) 이당 묘역

 

 

이인 신도비

  - 지    정 :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06호
  - 소 재 지 : 도봉구 도봉동 산81-1번지
  
 세종대왕의 9남인 영해군(寧海君) 당의 장자(長子)로, 세종의 손자이자 문종과 세조의 조카였던 영춘군(永春君) 이인(李仁, 1465~1507년)의 신도비로써 1509년(중종4)에 건립되었다. 1474년(성종 5) 영춘군(永春君)에 봉해졌으며, 사옹원제조(司饔院提調)를 지냈다. 연산군 때에 아들 기(琪)의 사건의 남해로 유배되었었으나, 중종반정 후 복직되어 정국원종공신이 되었으며 시호는 목성(木城)이다. 여기에는 조선초기의 무신이며 부마인 이등(李登, 1379~1457년) 및 그의 부인인 의령공주(태조의 4녀) 묘소와, 그의 부(父)인 영해군(寧海君)의 묘와 그의 동생인 길안군(吉安君) 및 아들인 완천군(完川君)과 강녕군(江寧君)의 묘가 같이 모여 있으며, 현재 이 마을에는 영해군의 후손들이 이 고장을 지키고 있다. 높이가 162㎝, 넓이 74㎝, 두께 25㎝이고 이수는 높이가 54㎝이며 받침대 높이는 58㎝, 길이 108㎝ 폭 65㎝이다.

   비문에는 부모를 잃고 연산군의 핍박을 받아 아들과 함께 귀양살이를 한 왕족의 인생역정이 기록되어 있다. 신도비는 귀부, 비신, 이수 등으로 구분 조형되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비문에 나타난 도봉, 노원 등의 지명은 영조물로는 최초로 추정된다.

   비문은 당시 영의정 남곤(南袞)이 글을 짓고, 해서체의 당대 최고 명필 김희수(金希壽)가 썼다.

   492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건만 기후조건과 위치가 좋은 지리적 여건 때문에 탈자나 마모가 없는 명필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묘역 부근에 많은 왕족묘와 왕족과 함께 묻혔다는 노비 금동의 사연이 숨어있는 이곳 무수골은 아름다운자연과 푸짐한 먹거리가 어우러진 시민들의 휴식처로도 유명하다.

 

영해군(寧海君) [1436(세종 18)∼1478(성종 9)]

 휘는 당, 자는 옹지, 시호는 안도(安悼). 세종대왕의 9남이며 어머니는 신빈
김씨이다. 1442년(세종 24) 7세 때 영해군에 봉해지고 소덕대부(昭德大夫)의 품계
를 받았다. 진기한 놀이와 춤 · 여색 등은 삼가했다. 평소에 중풍기가 있었는데
1478년(성종 9) 4월에 더욱 심해져서 그 해 5월 5일에 향년 43세에 별세했다.
성종대왕은 부음을 듣고 매우 슬퍼하며 3일간 조정일을 거두고 안도(安悼)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1872년(고종 9)에는 영종정경(領宗正卿)에 추증되었다.

 배위는 임천군부인 평산신씨이고 2남 1녀를 두었다.

 묘소는 서울 도봉구 도봉동 도봉산 남쪽 무수동 기슭에 양위 각폄으로 따로 있고
묘비와 석물이 갖춰져 있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대신리에 소재한 소덕사에 위패를
모시고 매년 5월 5일 기신제를 봉행하며 음력 10월 12일 전국 각지 후손들이 산소에
모여 시절향사(時節享祀)를 올리고 있다.

 

신도비의 상태가 너무 좋다.  마모 된 글자도 보이지 않는다.
일전에 양주에서 본 성희안 신도비의 보존 상태가 좋았는데 그에 버금간다.
신도비 부근은 전주이씨의 집성촌으로 영해군 후손들이 세거 하고 있다.
신도비 및 묘역은 묘하의 느티나무가든에서 관리하고 있는데 그 또한 영해군의
후손이다.
어느 날 산행 후, 느티나무가든 정원에 자리를 잡고 탁주 한 잔으로 목을 축이며
신도비의 탁본을 하는 나를 그리며 귀가를 서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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