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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세덕사에서의 귀중한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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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奎成 작성일04-10-21 09:43 조회1,638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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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안공문중회 향사를 다녀와서....
지난해에는 참석을 못하였었는데 이번에는 꼭참석을 하기로 하고 미리 일요일 괴산군에서 주최하는 쌍곡 칠보산 등산대회도 참여할겸 괴산 쌍곡에서 가족들과 일박을 하였습니다.

물론 당일 세덕사에 9시50분에 도착하였습니다.

가까운곳에 있다보니 멀리서 오신 분들보다 더 늦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대문을 들어서면서  먼저오신  낯익은 여러 종친분들과 간단한 인사와 악수로 친근감을 더하게 해 주셨습니다. 

두응회장님을 비롯한 태섭전임회장님과 항용총무님, 상천대부님등등 서로 인사를 나누었고, 명찰을 찾아 달고 항용님께서 준비한 옛선조님들의 귀중한 사료와 자료들을 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더욱 조상님의 숭고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정말 휼륭한 분들의 얼 즉, 지금의 우리들은 더욱 조상의 빛난얼을 오늘에 되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해 줍니다.
 홈페이를 살펴보면서 그래도 천만 다행으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안동김씨문중에서 항용님같은 훌륭한분이 계셔서 계속하여 묻혀져 있는 귀중한 사료들을 하나하나 세상의 햇볕을 보게 되는 것이 얼마나 다행스런 일이 아닌지 모르며 그 어려움을 묵묵히 실천하고 계시는 님에게 고마움을 무엇으로 다표현해야 할지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다시금 느끼는 일이지만 문중일은 자기희생과 사명감, 자긍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일것입니다. 다시한번 고개숙여 항용님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 드립니다.
그리고 시제 순서등등 어색하고 생소한 부분에 대하여도 상세한 해설을 곁드려 알려주심은 처음오는 분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었으며 앞으로도 일년에 한번 이루어 지는 비안공문중 향사가 더욱 발전되고 조상의 은덕을 기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앞으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해야할 일은 각기 지역 부회장단에서 적극적인 참여유도와 관심제고를 위하여 서로 릴레이식 참여 전달 방식도 활용한다면 기대이상의 참여도를 향상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보았으며,  십시일반으로 한글판 하담문집의 판매 활성화를 위하여 문중 각파별 가정별 1권씩 비치하기 운동을 벌리고  소중한 사료들이 벽장속에서 묵혀지지 않도록 수시로 읽혀질수 있는 계기를 우리들이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참석하는 우리자신이 먼저 내용의 깊은 뜻을 알아야 하겠기에 다음 향사시에는 글내용에 대한 설명을 들을수 있는기회도 주어진다면 더없는 귀중한 시간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
앞으로 더욱더 비안공문중회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면서 활성화를 위한 제일 급선무는 관심이 아닐까 생각해 보며, 무엇보다도 조그만 관심이 모여 모여 큰 관심사가 될 수 있도록 가족도 함께 참여하는 방안이 좋을 듯 한데 제 생각입니다.

가족모두 함께 참관하며 소중한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상님들의 훌륭한 업적과 역사에 대한 공부시간의 제공도 고려함이 어떨까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아직도 어설프게 홈피관리가 되지 않는 문중이 많은데 그래도 우리안동김문의 홈피는 활력이 넘침을 느끼고 보면서 더없이 큰일을 하고계시다는 것을 알게되며 명문가의 자부심도 가지게 해 줍니다.

아마 본 홈피를 방문하는 안동김문의 모든이들이 그렇게 느끼실 것으로 사료됩니다.

오늘날의 역사는 사료빈곤의 역사라고도 합니다.

일제 36년간 우리역사의 소중한 사료들이 대부분 소실된 가운데에서도 가정 가정에서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던 보물들이 본 홈피를 통해 알려지는 모습을 보며 다시한번더 그 부분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해줍니다.
앞으로는 종종 방문도 하고 참여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에 대한 간단한 이력을 말씀드리면
충북 제천 두학 막골에서 생하여 지금은 청주에 거주하고 있으며 청주로 온지는 대략 30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저의 부친께서는 達자會자 시며, 7남매(5남2녀)를 두셨고 본인(奎成)이 맏이 입니다. 그리고 육이오(6.25)전쟁시 군에 입대(수도사단 공병대)하셔서 전쟁을 치르셨으며 당시 강원도 고성군앞 돌산전투중 적의 박격포탄 공격에 몸을 많이 다치셔서 강릉에 있는 수도사단 의무중대에서 치료받고 다시 경주에 있는 18육군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중 1954년 5월 본대(1105야공단)로 귀대하여 제대하셨습니다.. 국가 보훈처에서는 부친의 당시 국가를 위한 헌신과 2급 공상을 인정하셔서 국가유공자로 추서 되셨으며 2000년 7월 세상을 하직하시기 전까지 좌우청각장애와 심폐기능 이상으로 말년에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현재는 대전국립묘지인 국립현충원에 고이 잠드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奎자항렬인 저는 김叔承시조 => 32세 ,方慶(충렬공)중시조: 26세,
益達(제학공): 22세입니다.
종친분들의 앞으로 많은 것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청주에서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규성 종친님 안녕하셨습니까. 향사일에 만나게 되어 참으로 기뻤습니다. 더욱이 젊은이가 없어 애태우고 있었는데 님께서 참예하시니 무척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저에 대한 과찬의 말씀은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일들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문중회 발전에 관한 좋은 의견에 감사합니다. 회장단에게 건의 드려 보겠습니다.
또 당일 전시되었던 것들에 대한 해설은 대부분 본 홈(제학공파 내의 비안공 문중회)에 거의 해설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정기총회 때 발표한  <세덕사>(가명) 책자 속에 모두 수록할 예정으로 편집하고 있습니다. 
본 홈에 자주 오셔셔 좋은 의견과 정담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정중
작성일

  그렇습니다. 이 홈은 행복의 공간이지요
반갑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날의 세덕사 광경이 상상되게 하시는 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