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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군지 제출자료 01---김환 (1442년 문과급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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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0-25 16:54 조회1,617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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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金丸, 1442년 문과급제)

   고려 말의 충신으로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김사렴(金士廉, 1335∼1405)의 증손자이다. <우암집>의 저자 화산군 김주(金澍, 1512∼1563)는 김환의 현손이다.

   김환은 증조부 김사렴의 "내가 죽거든 깊은 산중에 파묻고 봉분도 하지 말고 표석도 세우지 말라. 그리고 자손 중에서 고려조에 이미 벼슬하였던 사람은 다시는 조선조에서 벼슬하지 말라."는 선대의 충절의 유훈이 이어져 오는 상대(上代)의 고향인 오근(현 충북 청원군 오창면)에서 출사하기가 미안하여 여주 땅으로 이거하였다.

   사정(司正)을 지냈으며,  세종(世宗)24년 (1442년), 친시(親試) 병과1(丙科1)로 급제하여 한림 주서를 거쳐 승문원 판교에 이르렀다. 묘는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다.

[참고문헌] <조선조방목>, <호음집>(정사룡), <이암집>(송인), <우암집>(김주), <국조인물고>



-------참고자료-------


<호음집>(정사룡)

김공량 묘갈명(墓碣銘)

---본조(本朝)에 들어와서 문과(文科)에 급제(及第)하여 한림주서를 거쳐 승문원판교(承文院判校)를 지내신 諱환(丸)은 군의 증조부이시며 ---


<이암집>(송인), <국고인물고>

김공망 묘갈명(墓碣銘) 

---증조(曾祖) 증조(曾祖) 환(丸)은 승문원판교(承文院判敎)이고, ---


<우암집>(김주)

김공석 신도비명(神道碑銘)

---휘 환(丸)은 본조(즉 조선)에 벼슬살아 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를 하였다. ---


김주 묘표음기(墓表陰記)

---고조는 승문원 판교(丞文院判校) 휘 환(丸)이고, ---


김주 시장(諡狀)

---고조 휘 환(丸)은 문과에 급제하고 승문원 판교(承文院判校)를 하였다. ---


김주 신도비명(神道碑銘)

---고조(高祖) 휘 환(丸)은 문과에 급제하여 판교(判校)를 지냈다. ---



<조선조방목>

김환(金丸)  

       세종(世宗)24년(1442년), 친시(親試) 병과1(丙科1) 

>>> 인적사항

  생년(生年)  

  자(字)   

  호(號)   

  본관(本貫)   안동(安東)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諡號, 封號   

>>> 가족사항

  부(父)   김우주(金遇周)

  생부(生父)   

  조부(祖父)   김약(金?)

  증조부(曾祖父)   김사렴(金士廉)

  외조부(外祖父)   유위(柳衛)

  처부(妻父)   이백연(李伯衍)

>>> 이력 및 기타 

  소과(小科)   

  특별시(特別試)   

  전력(前歷)   사정(司正)

  품계(品階)   

  관직(官職)   판교&(判校&)



<조선왕조실록>

1450년 (문종 즉위년) 5월 17일(경신)

사은사(謝恩使)로 갔던 병조 참판(兵曹參判) 조서안(趙瑞安)과 형조 참판(刑曹參判) 안완경(安完慶) 등이 중국 황제가 준[欽賜] 세자(世子)의 면복(冕服)과 칙서(勅書)를 가지고 북경(北京)에서 돌아왔다.

---조서안(趙瑞安)과 안완경(安完慶)에게 각기 안마(鞍馬)와 노비(奴婢) 3명, 전지(田地) 30결(結)을 하사(下賜)하고, 서장관(書狀官) ★김환(金丸)과 통사(通事) 최윤(崔倫)·김유례(金有禮)에게는 각기 전지(田地) 10결(結)을 하사(下賜)하였다.


1451년 (문종1) 8월 3일(무진)

보령 현감(保寧縣監) ★김환(金丸)이 하직하니, 임금이 인견(引見)하고 말하기를, “수령의 임무란 농사에 힘쓰게 하고 병졸을 훈련시키는 데 불과할 따름이니, 네가 가서 공경히 행하라.” 하였다.


1469년(예종1) 2월 23일(무인)

임금이 선정전(宣政殿)에 나아가서 비로소 의식과 같이 정사를 보았다.

---구치관이 아뢰기를, “이문과 한어를 밝게 아는 자는 지금 단지 ★김환(金丸) 등 몇 사람뿐입니다. 만일 이들이 없으면 사대 문서(事大文書)를 아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1510년(중종5) 1월 12일(기사)

왕이 명하여 중외의 신민[臣庶] 중에서 폐주의 단상법(短喪法)이 엄할 때에 당시의 제도에도 불구하고 3년을 복상(服喪)한 자를 찾아보게 하였다. 전라도 관찰사 임유겸(任由謙)이, 전 주부(主簿) 이장손(李長孫)·습독(習讀) 임홍(任洪)·전 훈도(訓導) 임심(任深), 유학(幼學) 임혼(任混)·★김환(金丸)·김문조(金文祖), 전 참봉(參奉) 윤종손(尹宗孫)을 보고하니, 다 함께 자급(資級)을 올려 표창하게 하였다.



▶여주군지 편집위원회에 제출할 여주지역의 우리 문중 기록을 모으고 있습니다.

한 분씩 연재하면서 소개하겠습니다.

잘못된 내용은 지적하여 주시고, 추가하실 자료 있으신 분은 꼭 연락 바랍니다.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주
작성일

  대부. 고맙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대부님의 노고로 여주군지에 우리문중 이야기가 이제 정상적으로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