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方慶 열전 09 (원종복위와 반역 저지① : 58-5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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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1-12 15:54 조회1,843회 댓글0건본문
2002년 1월 27일 모임을 대비해서 충렬공 휘방경 할아버지의 행적을 고려사열전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근거자료는
1300년 이진 찬 [김방경 묘지명]
1350년 안진 발 [김방경 행장]
1392-1454년 김종서, 정인지 등 편수 [고려사 김방경열전]
안동김씨 대동보 (초보 : 1580 경진보)
김방경 연구 석사학위논문 3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 기타 자료를 참고로 하고 있습니다.
金方慶 열전 09 (원종복위와 반역 저지① : 58-59세)
1269년 (원종10, 58세) 入元하여 원종폐위 표문 바침 (★2차 入元). 동지樞密院사, 御史臺부
▣ 김방경묘지명 (1300, 이진 찬)
----- 관련내용 없음
▣ 김방경행장 (1350, 안진 발)
기사년 (1269)년 여름에 권신 임연이 제 마음대로 왕(원종)을 폐하였다. 이때 왕세자 (뒤의 충렬왕)가 원나라에서 마침 돌아오다가 의주에 이르러서 국난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원나라로 들어가서 본국(고려)에 사신을 파견하여 부왕의 안부를 물어줄 것을 청하였던 바, 그 사신이 일을 마치고 환조할 때에 公이 그 사신과 같이 원나라에 입조하니
중서성에서 세자가 고려에 파병해 줄 것을 주청한 일로 세자와 의논하였는데 公이 말하기를 "몽가독 장군이 출발해서 만약에 서경(평양)에 오래도록 머물면서 대군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면 임연은 이미 배병한지라 반드시 모든 물자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니 그 일을 장차 어찌 하겠습니까? 세자는 마땅히 임연과 더불어 같지 않고 일을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을 선택하여 몽가독 장군과 동반하여 먼저 돌아가게 하소서" 하였다.
세자가 그런 사람 선택하기를 어렵게 여기니 이때 시중 이장용 등 여러 사람이 말하기를 "方慶은 두 번이나 北界를 진무하여 백성들에게 많은 사랑을 끼친 바 있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안 됩니다" 고 하니
세자가 말하기를 "꼭 나의 뜻과 같도다" 고 하였다.
이에 公으로서 몽가독과 함께 행군케 하여 장차 출발함에 앞서 公이 계략하여 말하기를 "관군이 서경에 도착하여 만일 대동강을 건너게 되면 왕경(개성)이 스스로 혼란을 일으켜 장차 큰 변이 있을까 두려우니 황제의 영지를 받아서 대동강을 건너지 못하게 함만 같지 못할 것이오" 하니
모두가 "그 말이 옳다" 하고 이를 아뢰니 황제가 윤허하였다.
동경(요동)에 돌아와서 왕이 다시 복위하였다는 소문을 듣고 다시 원나라에 입조하여 머물면서 본국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북계에 있는 반역민 최탄과 한신 등의 무리들이 여러 성의 수령들을 죽였는데 오직 박주수령인 강분과 연주수령인 권천은 다 公의 妹夫인고로 죽이지 아니하고 오히려 예로써 대우하면서 "아모공(충렬공을 말함)의 은덕을 어찌 감히 잊으리오"라고 말하였으니 公께서 그 인심을 얻음이 이와 같았다.
이해 12월에 왕이 행궁에 있을 때 동지樞密院사 御史臺부를 배명하고
경오년(1270) 정월에 서경에 이르르니 父老(그 고을에 연세 많으신 분들)들이 와서 울면서 말하기를 "公께서 만약에 이곳에 계셨던들 어찌 최탄, 한신 등의 반역사건이 있었으리오" 하고 매일과 같이 서로 앞을 다투어 진수성찬을 드리니
최탄도 또한 조석으로 와서 배알하나 그 역민들은 천병(몽고병) 들을 의지해서 그 허점을 타고 몰래 나라를 삼키려는 음흉한 뜻이 있어 몽가독을 후히 대접하면서 매일 거짓 계략으로 유혹하나 公은 매양 좋은 계책으로써 가만히 이를 저지하였다.
이때 왕은 황제를 뵈옵고 청병을 하고 다시 돌아오니
그때에 임연이 거명의 뜻을 품고 지보대란 사람을 시켜서 밤에 가만히 군졸을 이끌어 황주에 주둔시키고 또 한편으로는 신의군에 명령하여 초도에 나가게 하니
최탄과 한신 등의 무리들이 그 사실을 알고 비밀리에 배를 준비하고 또 병사를 매복시켜 놓고 몽가독과 더불어 밀약하기를 "왕경(개성)에서 장차 관인(몽가독을 말함)과 대군을 죽이고 황주로 들어가려 하니
청컨대 관인은 말로만 사냥간다고 핑계하고 경군의 움직이는 동태를 살피면서 목표물을 취해서 서로 맞닿게 하면, 우리들은 병선을 이끌고 보음도와 말도 방면으로 진공할 것이고, 관인은 군사를 이끌고 좁을 다리에 이르르면 저 놈들은 오도가도 못할 것이니, 이미 그 실정을 포착해서 모두 황제께서 들으시게 한다면 왕경을 능히 멸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왕경을 점거하면 아름다운 여자와 보물과 비단 등이 모두 남의 소유가 되겠습니까? 다 그대의 물건이 될 것입니다." 하니 몽가독이 기꺼히 허락하였다.
그때 영원별장 오계부의 아들 득공은 최탄의 집 안채 행랑에서 주야로 서로 지킨 연고로 그 음모를 다 알고 밤중에 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서 公에게 이 사실을 고하였다.
그때 公이 말하기를 "어찌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는가?" 하니
득공이 말하기를 "나의 말을 만일 믿지 못하시거든 딴 사람으로 하여금 비밀히 살펴보게 하시면 가히 알 것입니다." 고 말하니
公이 말하기를 "내 어찌 믿지 않겠는가? 고 하고
그 이튿날 아침 일찍이 몽가독의 관문에 나가니 모든 군사들이 벌써 나와 있고 최탄과 한신도 기쁜 빛이 있는 것 같았다.
公이 들어가서 몽가독을 만나니 몽가독이 말하기를 "객지에 나와서 오래되어 심심하기 짝이 없어 사냥을 나가 즐겨 볼 까 하는데 公도 나와 같이 가지 않겠소?" 하니
公이 "어느 방면으로 사냥을 가겠소?"한즉,
몽가독이 말하기를 "대동강을 건너서 황주와 봉주를 거쳐 초도까지 들어갈까 하오" 라고 하였다.
公은 말하기를 "성지에 이르시되, [만약에 대동강을 건너가면 법에 위반된다] 는 것은 관인도 또한 들었을 것인데 어째서 강을 거느려 하오" 하니
몽가독이 말하기를 "몽고 사람이 사냥하는 것을 일로 삼는다는 것은 황제께서도 또한 알고 계시는데 그대가 어찌 막으려는가"고 하자
公은 "내가 그대의 사냥하는 것을 금하는 것이 아니라 강을 건너가는 것을 금할 따름이오. 만약에 사냥을 나가고저 한다면 하필 그곳으로 가야만 즐길수 있는가?" 고 하니
몽다독이 "만일에 강을 건넘이 죄가 된다면 내가 혼자 당할 일이지 그대에게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고 하였다.
公은 다시 "내가 이미 여기에 와 있는한 강을 건너지 못할 것이요. 기어코 강을 건너겠다면 모름지기 사자를 보내서 황제의 칙명을 받아 오시오" 하고 公은 지보대에게 밀유하여 그의 병졸들을 물러가게 하니
몽가독도 公의 충직함이 천성에 뛰어남을 알고 더욱 크게 경중히 하여 사실대로 말하되 "왕경을 멸망시키려는 자는 다만 최탄의 무리들 뿐만이 아니라 또 다른 사람들도 있다" 고 하자
公이 "그는 누구냐?" 고 물으니
몽가독은 "모모의 사람들이다" 고 하고, 사실은 비밀로 해서 말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참소하는 말들이 社稷에 들러가지 못하고 최탄의 무리에게 농락도 되지 않았음은 다만 公의 힘이었다.
▣ 《고려사》 제104권 - 열전 제17 >
10년(원종)에 임연(林衍)이 왕을 폐립하였는데 이때 마침 세자(世子)는 원나라로부터 돌아오던 길에 의주(義州)에 이르렀다가 국가에 정변이 생긴 것을 듣고 다시 원나라로 들어가 황제에게 이 사연을 보고하였더니 세조(世祖)는 알탈아불화(斡脫兒不花) 등을 파견하여 국내에 있던 여러 신하들을 훈유하게 하였다.
알탈아불화가 귀국하게 될 때 김방경은 황제께 올리는 글(표문-表文)을 가지고 그와 함께 원나라로 갔다.
세자가 황제에게 군대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므로 몽가독(蒙哥篤)이 군사들을 인솔하여 장차 떠나려고 하였는데
중서성에서 세자에게 이르기를 “지금 몽가독이 만약 서경에 오래 주둔해 있으면서 대군(大軍)이 오는 것을 기다리게 된다면 임연은 이미 황제의 명령을 거역한 자라 필연코 주둔 군대의 양식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니 어쩌면 좋겠는가? 그러니 세자는 응당 임연과 한 당여(黨與)가 아닌 자로 하여금 함께 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세자가 그러한 인물을 선택하기가 곤란하게 되었다. 시중 이장용(李藏用) 등이 말하기를 “김방경은 두 번이나 북계(北界-즉 서북면)를 다스려서 그 지방 민심을 얻었으니 이 사람이 아니면 불가합니다”라고 하니 세자도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마음에도 맞는다”고 하였다.
곧 김방경에게 명령하니 김방경이 말하기를 “원군(원나라 군대)이 서경에 도착하여 만일 대동강을 넘는다면 왕정(개성)에서는 스스로 소란해져서 장차 무슨 변란이 일어날 우려가 있으니 대동강을 넘어 서지 않도록 지시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모두들 “그것이 좋다”고 하여 드디어 황제에게 이 뜻을 아뢰었더니 황제가 허락하고 조서를 내리어 원군으로서 대동강을 건너는 자가 있으면 죄를 줄 것이라고 명령하였다.
김방경 일행이 동경(東京)에 이르러 왕(원종)이 이미 왕위에 다시 오르게 되었고 또 원나라에 입조(入朝-예방)하게 된다는 말을 듣고 그냥 머물러 있으면서 왕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당시에 최탄(崔坦), 한신(韓愼)이 반란을 일으켜 여러 고을의 수령들을 죽였으나 오직 박주(博州)의 장관인 강분과 연주(延州)의 장관인 권천(權闡) 두 사람만은 예의에 맞게 대우하면서 “김공(김방경)의 덕을 우리가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강분, 권천 두 사람이 김방경의 매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듬해에 김방경이 몽가독과 함께 서경으로 오니 서경 지방의 부로(父老)들이 서로 앞을 다투어 와서 김방경을 대접하고 울면서 말하기를“공(방경)이 여기에 있었더라면 어찌 최탄, 한신과 같은 자의 반란 사건이 일어났겠습니까?”고 하였다. 최탄 등도 역시 조석으로 와서 김방경을 만나 뵈곤 하였다.
최탄 등이 몽고 군대를 이용하여 고려의 허한 틈을 타서 변란을 일으키려고 은밀히 꾀하면서 몽가독에게 뇌물을 후하게 주어 그를 꾀이었다. 그러나 김방경은 그때마다 계책을 써서 그 음모를 저지시키었다.
이보다 앞서 임연은 왕이 황제에게 보고하여 몽고 군대를 청해 올 것을 염려하여 그것을 막으려고 지유(指諭) 지보대(智甫大)로 하여금 야별초를 인솔하여 황주에 주둔시키고 또 신의군(神義軍)은 초도(椒島)에 주둔시켜 방어하게 하였다.
최탄 등이 그 계책을 알고 가만히 배들을 준비하고 정예한 군사들을 모으고 몽가독에게 말하기를 “임연 등이 장차 관인(官人)과 원나라의 군대들을 죽이고 제주도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니 청컨대 관인께서는 사냥하러 간다고 널리 선전하고 경군(임연 지휘하의 군대)의 왕래 정형을 정찰하여 서로 통보하도록 하면 우리들은 군사들을 배에 태워 보음도(甫音島)와 말도(末島)에로 진공해 가겠으니 그때 관인이 착량(窄梁-인천 부근의 좁은 해협지대)으로 군대를 영솔하여 나가 있으면 그들이 진격하지도 퇴각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실정을 잘 알게 된 후에 그것을 황제께 구체적으로 아뢰게 된다면 왕경(개경)을 탈취할 수 있을 것이니 그렇게 되면 그곳의 젊은 남녀들과 재물들은 다 당신의 것으로 될 것입니다”라고 하니 몽가독이 좋아하면서 그렇게 할 것을 승낙하였다.
이때 영원(寧遠) 별장(別將) 오계부(吳繼夫)의 아들 오득공(吳得公)이 최탄의 내상(內廂)으로 있었는데 이 일을 알고 가만히 김방경에게 일러 주었다. 김방경이 말하기를 “어찌 이러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하니 오득공이 “만약 나의 말을 믿지 않는다면 은밀히 정탐해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튿날 아침에 김방경이 몽가독의 숙소인 객관의 문 앞에 가니 여러 군사들이 모두 와 있었고 최탄과 한신 등은 좋은 기분을 띠고 있었다.
몽가독이 김방경더러 이르기를 “오랫동안 손님 노릇을 하고 있노라니 대단히 심심하다. 생선잡이라도 해서 즐겨 볼까 한즉 공(김방경)은 나를 따로 오시겠소?”라고 하였다.
김방경이 “사냥은 어디서 하시려오?”하니 “대동강을 건너서 황주, 봉주(鳳州)에 가서 초도로 들어갈까 하오”라고 대답하였다.
김방경이 말하기를 “관인도 역시 황제의 명령을 들었는데 어찌 하여 강을 건너가려 하오?”하니 몽가독이 말하기를 “몽고 사람들은 활쏘기, 사냥질을 일상적인 일로 삼는데 이것은 황제께서도 아는 바라 공이 왜 이것을 막으려고 하오?”라고 하였다.
김방경이 대답하기를 “나는 사냥하는 것을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강을 건너가는 것을 막으려고 할 뿐이오. 만일 사냥하고자 한다면 하필 그쪽으로 건너 가서야만 즐길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몽가독은 “만약 대동강을 건너가는 것이 죄가 된다면 내 혼자서 당하리다”라고 하니 김방경이 “내가 여기 있는 한, 관인이 어떻게 강을 건너갈 수 있겠소! 만약 기어이 그렇게 하고자 한다면 황제께 말하여 승낙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김방경이 가만히 지보대 등에게 명령하여 군사들을 데리고 물러가라고 하였더니 몽가독이 김방경의 충직성은 하늘에서 받은 성품이라는 것을 알고 김방경을 크게 존경하고 존중히 여겼으며 사실대로 일러 주면서 말하기를 “왕경(고려를 의미함)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자가 어찌 다만 최탄 등 뿐이겠소. 또 다른 사람도 있답니다”라고 하기에 그것이 누구인가고 물었더니 아무개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 일은 비밀에 붙였으므로 전하지 않는다.
이로부터 참소하는 말들이 원나라에 들어가지 않았고 나라는 그 때문에 평안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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