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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락촌 회곡동 이야기 06---冷平國大夫人 죽주박씨 壇所 및 재실 上洛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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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1-08 14:41 조회1,60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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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최초의 족보인 안동김씨성보(1580년 경진보) 천(天)편을 살펴보면 충렬공(방경) 배위(配位)이신 냉평국대부인(冷平國大夫人) 죽주박씨 할머니 묘소(墓所)는 안동 예안현 지례촌 속칭 능동(安東 禮安縣 知禮村 俗稱 陵洞)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실전되어 안동시 풍산읍 회곡리에 설단하여 모시고 있으며, 마을에 재실 상락재가 있습니다.

1800년대 중반 후손 통정대부 부호군 英洛(영락)이 지은 냉평국대부인 죽주박씨 설단 고유문(冷平國大夫人竹州朴氏設壇告由文)을 보면, 풍산읍 회곡리에 설단하게 되는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삼소재 김영락 (초명 종락, 1796-1875, 80세) 사후 수직 통정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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幽宅(유택)은 詳考(상고)할 길 없어 花林(화림)모두 변했는데
累百年(누백년)간 恨歎(한탄)하여
★謙(겸), ★梅(매) 두어른과 ★荷潭(하담), ★訥菴(눌암)할아버님은
혹은 封標(봉표)修築(수축)하고 혹은 祭享(제향)드렸으나
어떤사람 作亂(작란)으로 바로 碑石(비석) 잃게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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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檜谷(회곡) 돌아보니 우리 先祖(선조) 胎址(태지)일세.
착하신 夫人(부인)께서 이에서 늙으시니
京鄕人事(경향인사)計劃(계획)으로 兩湖(양호)에다 通文(통문)해서
그의 터에 設壇(설단)해서 追慕(추모)하게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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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공 선대의 고향과 선영은 <안동府西 일식 화림촌> <안동 예안현 지례촌 속칭 능동(安東 禮安縣 知禮村 俗稱 陵洞)>에 있었는데,

충렬공 할아버지께서 어떠한 연유로 이곳 회곡동에 정착하셨는가? 하는 것이 항상 의문거리였습니다.

 

또 하나, 상락군개국공 식읍지가 이곳 회곡리 일대라면 이 또한 어떠한 연유가 있었으리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800년대 중반 후손 영락 (초명 종락, 1796-1875, 80세)이 지은 <죽주박씨 설단 고유문>에 보면

檜谷(회곡)이 우리 先祖(선조) 충렬공의 胎址(태지)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회곡이 충렬공의 출생지라는 의미가 됩니다.

 

충렬공의 어머니 금관국대부인 금녕송씨(송기의 따님)의 친정과 관련이 있어 이곳 회곡리에서 자녀를 출산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충렬공께서 오랫동안 관직생활을 하시다가 72세, 1283년 벼슬에서 물러나시고 한가할때 가끔 들리시다가, 84세, 1295년 충렬공개국공 식듭지로 1천호에 식실봉 3백호를 이곳 회곡리 일대로 받으시고, 내려오셔서 저택(마을 입구 남쪽으로 향한 큰 밭, ?草堂)을 짓고, 정자(마을 앞 上孤山 위)을 짓고, 상락대(金谷村, 檜谷村 앞 강가)를 유상하시면서 만년을 주로 이곳에서 보내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식읍을 이어받은 문영공(김순)과 손자 김좌랑 승고 등이 거주하여 내렸고, 문영공의 외손자 정오 정포 형제가 외가의 인연으로 이곳에 입향하여 세거해 내려왔다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인 추측이었습니다. 가볍게 보아 주시기를.....

 

사촌 문중에 회곡리와 관련된 기록이 있을 수 있는데, 정중 종친님 살펴보아 주세요.

 

 

댓글목록

김재익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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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동김씨 최초의 족보인 안동김씨성보(1580년 경진보) 천(天)편을 살펴보면 충렬공(방경) 배위(配位)이신 냉평국대부인(冷平國大夫人) 죽주박씨 할머니 묘소(墓所)는 안동 예안현 지례촌 속칭 능동(安東 禮安縣 知禮村 俗稱 陵洞)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위 예안현 지례촌은 현 충렬공 묘소가 있는 안동시 녹전면 죽송동 능동  주변 일대며 현재도 "지례"라는
지명을 쓰는곳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