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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님을 따라 계룡산과 마곡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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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4-11-13 20:55 조회1,602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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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계룡산 산행과 마곡사 답사(예정)

 

4df6348093b145bc7dd1135e317a419e.jpg<계룡산과 계룡산 저수지>

마곡사 [麻谷寺]

  충청남도 공주시(公州市) 사곡면(寺谷面) 운암리(雲巖里) 태화산(泰華山) 동쪽 산허리에 위치하는 신라시대의 절. 25교구본사(敎區本寺)의 하나이다. 마곡사의 사적입안(事蹟立案) 기록에 의하면 640년(선덕여왕 9)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였고 범일선사(梵日禪師)·각순대사(覺淳大師) 등이 중건하였다. 원(元)나라의 영향을 받은 라마형식의 오층석탑(보물 제799호)과 영산전(靈山殿;보물 제800호)·대웅보전(大雄寶殿;보물 제801호)·대광보전(大光寶殿;보물 제802호) 등이 있으며, 《감지은니묘법연화경(紺紙銀泥妙法蓮華經)》 권1(보물 제269호)·권6(보물 제270호) 및 고려시대의 향로가 소장되어 있다.

  이 절은 대한민국 건국에 큰 공을 세운 백범 김구(金九)와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한말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인 김구는 인천형무소에서 옥살이를 하다가 탈옥하여 이 절에 숨어서 승려를 가장하며 살았다.

  지금도 대광보전 앞에는 김구가 심은 향나무가 있는데, 그 옆에 "김구는 위명(僞名)이요, 법명(法名)은 원종(圓宗)이다."라고 쓴 푯말이 꽂혀 있다. 김구가 방랑했던 시절 3년 동안을 이 절에서 사미(沙彌)로 일했고 그 때의 상황이 백범일지(白凡逸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 . . 어디로 가는 길이냐를 묻기로 나는 개성에서 생장하여 장사를 업으로 삼다가 실패하여 홧김에 강산 구경을 떠나서 삼남(三南)으로 돌아다닌지가 1년이 장근하노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마곡사가 사십리 밖에 아니되니 같이 가서 구경하자고 하였다. 마곡사라면 내가 어려서 동국명현록(東國明賢錄)을  읽을 때에 서화담 경덕(徐化潭 敬德)이 마곡사 팥죽가마에 중이 빠져 죽는 것을 대궐안에 동지하례를 하면서 보았다는 말에서 들은 일이 있었다. 나는 이서방과 같이 마곡사를 향하여 계룡산을 떠났다. . .'

  마곡사 앞 고개에 올라선 때는 벌써 황혼이었다. 산에 가득 단풍이 누릇 불긋하게. . .감회를 깊게 하였다. 마곡사는 저녁 안개에 잠겨 있어서 풍진에 더럽힌 우리의 눈을 피하는 듯하였다. "뎅, 뎅" 인경이 울려온다. 저녁 예불을 알리는 소리다. 일체 번뇌를 버리라 하는 것 같이 들렸다. 이서방이 다시 다진다. "김형 어찌하시려오? 중이 되려는 자와 중을 만드는 자와 마주 대한 자리에서 작정합시다." 이렇게 대답하였다.

  김구는 이곳에서 하은(荷隱) 스님의 상좌가 되어 입산했고 그 다음날 득도식(得度式)을 마치고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을 받고 머리를 깎았다. 그 뒤 부목(負木)을 맡은 그는 나무도 하고 종노릇까지 하였으며 그 뒤 수도승이 되고 그 뒤로 운수승(雲水僧)으로 떠돌았던 것이다. 김구가 입산했던 가을 마곡사 해탈문에 우리들은 답사라는 이름으로 지금 들어가고 있다. 다리 아래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떼지어 노닐고 있고, 다리를 건너면 김구 선생이 그 뒤에 들러 심었다는 향나무가 한 그루 서있으며 오층석탑 너머로 대돵보전과 대웅보전이 한 눈에 들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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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선생님이 식수하신 향나무>

댓글목록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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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꼭 가보고 싶은 곳  입니다 감사합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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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다음 산행지 구상에 바쁘십니다. 또 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