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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군지 제출자료 10---김전(金塡) 1382 ~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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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1-18 09:05 조회1,525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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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전(金塡) 1382 ~ 1447(우왕8 ~세종29)


     군사공 김칠양(郡事公 金七陽)의 두 아들(김전, 김돈)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외조부(外祖父)는 김용진(金用珍)이다.

     아버지 김칠양은 가정 이곡(稼亭 李穀)의 문인으로, 목은 이색(牧隱 李穡),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 재종인 척약재 김구용(척若齋 金九容) 을 종유(從遊)하여 그 의리와 명분을 같이 하였다. 여말(麗末)에 늦게나마 수안군사(遂安郡事)를 지냈으나 고려가 망하고 이성계가 등극하자 충신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굳은 절개를 지키고 강진(康津) 금릉산(金陵山)에 은거(隱居)하여 학문을 벗삼아 세월을 보냈다.

     김전은 1414년(태종14) 진사시를 거쳐 식년시(式年試) 을과(乙科) 3등으로 급제하여 예조 좌랑(禮曹佐郞), 예조 정랑(禮曹正郞), 영암 부사(靈岩府使), 사재감 정(司宰監正), 사헌 집의(司憲執義), 예문관직 제학(藝文館直提學)을 거쳐 내자 판사(內資判事), 보문각 직제학(寶文閣直提學)을 역임하였다. 墓는 여주 흥천면 귀백리 백양동에 있었으나 실전하였다. 자손들이 경기 파주읍 연풍리로 이거하였다.

     동생 김돈(金墩)은 과학자, 천문학자로 앙부일귀, 갑인자 제작 등 조선초기 세종조의 과학기술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

     배위 정부인 광주노씨(      의 딸) 와의 사이에 一男을 두었는데, 토산현감(兎山縣監)을 지낸 김삼노(金三老)이다.

[참고문헌] <조선왕조실록> <여말충의열전>(고려숭의회)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용주
작성일

  실묘된 .전. 자 할아버님 의 묘자리가 한군데 집피는곳이 있는데
살펴 보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