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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촌의 문과급제자(3) <김복인 (金復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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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작성일04-11-19 15:43 조회1,631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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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인(金腹仁)】


  자(字)는 덕승(德承), 호(號)는 양산재(兩山齋) 안동인이다. 문온공(文溫公) 척약재(?若齋) 구용(九容)의 15세손으로 1737년(영조 13) 정사(丁巳) 윤9월19일 생, 1793년(정조 17) 계축(癸丑) 9월20일 57세에 졸(卒)하시다.

  1771년(영조 37) 신묘(辛卯)에 진사(進士), 1785년(정조 9) 을사(乙巳)에 정시(庭試) 병과3(丙科3)에 장원급제, 관직은 주서(注書)·전적(典籍)·병조좌랑(兵曹佐郞)·이조정랑(吏曹正郞)·사헌부(司憲府) 지평(持平) 등을 역임하였다.

  증조부(曾祖父)는 승지공(承旨公) 시경(始慶)·조부(祖父)는 통덕랑(通德郞) 남일(南一)·부(父)는 통덕랑(通德郞) 희원(喜遠)·외조부(外祖父) 최경기(崔慶基)이다

  배(配)는 진사(進士) 무경(懋敬)의 따님이신 숙인(淑人) 사천목씨(泗川睦氏)로 1733년(영조 9) 계축(癸丑)에 나시어 1757년(영조 33) 정축(丁丑) 7월10일 향년 25세에 돌아가시다.

  계배(繼配)는 용(鏞)의 따님이신 숙인(淑人) 경주이씨(慶州李氏)로 1738년(영조 14) 무오(戊午) 6월 9일에 나시어 1771년(영조 47 ☞임신보의 42년은 오기이다) 신묘(辛卯) 5월12일 향년 34세에 돌아가시다.

  공(公)은 정조 9년에 문과에 장원급제하니 그 문장의 훌륭함에 왕이 감탄하여 대학(大學)등 사서(四書)와 은배(銀杯)등을 하사(下賜)하여 치하하고 벼슬을 내리니 주서(注書)에서 하루 동안에 전적(典籍)·병조정랑(兵曹正郞)·이조정랑(吏曹正郞)으로 세 번 승진하여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벼슬이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 이르렀을 때 영의정(領議政) 채제공(蔡濟恭)이 지성껏 왕을 보필하여 많은 업적을 이루어 왕의 신임이 두터운 것을 시기한 서인(西人)들이 모함하니 그 기세가 두려워서 채영상(蔡領相)을 변호하는 사람이 없으므로 공이 개탄(慨歎)하여 홀로 세 번이나 상소(上疏)하니 영남(嶺南) 유생(儒生)들이 이에 용기를 얻어 만인소(萬人疏)를 올리니 정조께서는 매우 기뻐하시어 채영상(蔡領相)을 더욱 신임하게 되어 세상 사람들이 경탄해 마지않았다. 공(公)은 또 학식이 높아 당시의 석학(碩學) 정다산(丁茶山)도 사십인(四十人) 거유(巨儒) 중에 으뜸이라고 극찬하였다.

  묘(墓)는 골안 산록(山麓) 선영(先塋) 묘역 하의 간좌(艮坐)이며 합분(合墳)이다. 1990년대 사초를 하면서 모든 석물을 새롭게 단장하였는데 봉분은 호석을 둘렀고 혼유석 상석 향로석이 있다. 상석은 걸방석과 2개의 고석으로 받쳐져 있다. 배계절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한 쌍씩 있다.

《參考文獻 : ·壬申譜/1992·家譜·朝鮮朝放牧》

(묘)지평공(복인).jpg

(상석)지평공(복인).jpg

[송동(宋洞)에서 꽃구경하며 지은 시의 서]

- 갑진년(1784) 봄에 지음 -

  갑진년(정조 8, 1784) 봄에 내가(☞주 : 다산 정약용)태학(太學)에서 유학(遊學)하였는데, 그때 주상이 모든 유생(儒生)들을 권장하여 유생들의 사조(詞藻 시문을 짓는 재능)가 날로 진취하고 상사(賞賜)가 풍성하였으니, 김복인(金復仁)ㆍ홍의호(洪義浩) 같은 이가 특히 크게 이름을 떨쳤다. 때로 반궁(泮宮 성균관의 별칭)의 숲 속에서 함께 모여 놀았는데, 한 글자의 포상(褒賞)이라도 입은 사람은 모두 다 와서 서로 추종하니, 모두 30여 인이다. 그 중에 한석민(韓錫敏)ㆍ한석륜(韓錫倫)ㆍ김수신(金秀臣)ㆍ강현영(姜顯永)ㆍ이기경(李基慶)ㆍ홍낙흠(洪樂欽)ㆍ한치응(韓致應) 등이 특히 드러난 사람이고, 나는 나이 가장 적은 자로서 늘 과분하게 제공(諸公)의 추허(推許)를 받았다.

하루는 제공이 서로 이끌고 송동(宋洞 주1)에 갔는데, 그때 살구꽃이 활짝 피고, 시냇가에는 버들 빛이 짙푸르렀다. 소나무 그늘 밑에 벌여 앉아 담소하며 즐기는데, 그 중에 어떤 사람이 일어나서 말하기를,

"선비의 놀이가 사치스러운 것은 마땅치 않으나, 술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들이 나라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상으로 받은 종이와 붓이 많을 것이니, 각기 종이 약간씩을 가져다가 추렴하여 한 차례 마시는 것이 또한 좋지 않겠소."하니,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였다.

술이 이르자 드디어 나이 차례로 마시는데, 내가 술잔을 잡고 꿇어앉아 말하기를,

“오늘 이 술은 임금께서 주신 것이니, 각기 시 한 수씩을 지어서 우리 성상께서 우리를 도야(陶冶)하고 성취시켜 주신 은혜를 칭송하지 아니하겠습니까?"하였더니, 모든 사람이 좋다고 하였다. 시가 이루어지자, 제공이 나에게 서문 짓기를 부탁하였다.

《출전 : 다산시문집 제13권 서 序》                              

☞주1 : 송동(宋洞)은 명륜동1·2가와 혜화동에 걸쳐 있는 마을로 우암 송시열이 살았던 집 부근의 마을이라 해서 붙여졌다.


[태학에서 시 십운을 지으신 김복인 (金復仁)ㆍ김수신(金秀臣)]

  여름날 태학에서 임금의 명에 따라 전을 올리고 종이와 먹을 하사받았다. 제생은 함께 술과 음식을 장만하여 성은을 기리고 아울러 시 십운을 지었다[夏日太學 應敎進箋 蒙賜紙墨 諸生共辦酒饌以昭聖惠 仍述十韻] 이때 김복인(金復仁)ㆍ심봉석(沈鳳錫)ㆍ한석민(韓錫敏)ㆍ한석륜(韓錫倫)ㆍ김수신(金秀臣)ㆍ이기경(李基慶)ㆍ홍의호(洪義浩)ㆍ한치응(韓致應)ㆍ홍낙흠(洪樂欽) 등 제공이 함께 참여하였다.


태학의 선비 배출 성황 이루고 / ?舍賓興盛

우리 임금 은사품 새로웁다네 / ??寵賚新

품평한 글월 모두 어필이라면 / 品題皆御筆

장려하는 유시는 한림의 솜씨 / ?諭必詞臣

찬란한 주사 친필 높이 받들고 / ?璨擎?批

분주하게 유생들 모이었는데 / ??聚?巾

순화 때의 깨끗한 종이 쌓였고 / 紙堆淳化潔

수양매월 검은 먹 포개어 있네 / 煤疊首陽陳

하찮은 문장 기예 부끄러운데 / 薄技羞雕篆

은혜 말씀 선비들 감동시켰네 / 恩言聳搢紳

넓은 은택 골고루 끼치셨기에 / 均沾由澤普

환호 칭송 진심에 우러나오지 / 歡頌出情眞

유학한 자 준수한 선비 많은데 / 游學多?士

게다가 한 재실에 벗들도 있어 / 同齋況故人

술 사오니 홍로주 향그롭고요 / 酒?紅露馥

외 가르니 수정이 진기하여라 / 瓜劈水精珍

해학 속에 무더운 여름을 잊고 / 談謔凌朱夏

우러르는 마음은 대궐 향하네 / 瞻依近紫宸

보살피심 미천한 몸에 미치니 / 生成逮菲質

무얼로 임의 사랑 보답할 건고 / 何以答君仁

《출전 : 다산시문집 제1권, 시 詩》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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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홈에 올리겠습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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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우와! 윤만 형님 멋집니다.
오늘 따라 더 존경스러워.....
---김수신(金秀臣)--- 은 서운관정공파 선조님이신 듯 하네요. 굵게 처리해 주시면 더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