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군의 편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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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1-25 09:53 조회1,591회 댓글3건본문
큰사위 윤사숙 엄1)에게 준 서신(與女?尹思叔儼)
자네(윤엄 尹儼, 1536∼1581, 1564진사, 1572문과) 가 허겁지겁 벼슬을 버리고 돌아간 지 이미 한 달이 지났거늘, 아직도 대면하지를 못하였으니, 아주 보고 싶구나. 최근 몹시 무더운 날씨에 부모님(윤지함 尹之 ) 을 모시고 어떻게 지내고 있느냐.
관찰사 직을 받고 보니2) (1561년 7월 황해도관찰사) 나 또한 어떻게 감당하여 지낼지 모르겠구나. 참담한 마음이 오래될수록 더욱 심하여, 무어라 위문할 말이 없기에 여태껏 편지를 써서 위로하지 못하였단다.
무더위가 비록 두렵기는 하지만, 새벽이면 좋을 것이요, 한낮이 가까우면 안 될 것이다. 말[馬]을 보낼 터이니, 꼭 와서 만나보기 바라는데, 어떻겠느냐. 나머니는 잠시 다 적지 못하고 생략한다.
유월(流月 : 6월)3) 념팔(念八 : 28일)에 유양(維楊)4) 우옹(寓翁).
▶간찰 설명
화산군(휘 澍, 1512~1563)께서는 3남 4녀를 두셨는데, 맏사위 윤엄(尹儼, 1536~1581)에게 보낸 간찰이다. 큰 딸(尹氏婦 : 훗날 尹儼의 아내)은 1537년생.
시기는 50세 1561년 7월 황해도관찰사로 제수되어 부임하기 바로 전달 6월 28일 몹시 무더위 날씨에 유양(維楊)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주내면(州內面) 유양리(維楊里)> 에 우거하면서 쓴 간찰이다. 이때 호를 우암(寓庵)이라 쓰지 않고 우옹(寓翁)이라 쓰고 있음이 특이하다.
사위 윤엄이 작은 벼슬을 (1564년 진사, 1572년 문과급제) 하다가 1561년 5월경 어떠한 참담한 일로 인하여 허겁지겁 벼슬을 버리고 ( )로 돌아가 부모를 모시고 지내는데, 위로하면서 말 한 필을 보내어 와서 만나기를 청하고 있다.
또한 새로 부임하는 황해도관찰사 직을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걱정하고 있다. 6년전인 44세 1555년 전라도 관찰사 시절 영암에 침입한 왜적으로 인해 큰 곤란을 당한 적도 있는데,
벌써 몇 년째 황해도 일원에는 큰 도적(임꺽정)이 횡행하고 있었는데, 이곳의 관찰사로 임명되어 횡행하고 있는 도적을 붙잡아 들일 것을 왕이 명을 내리고 있다. 그래서 어떻게 감당해 나갈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반대파(윤원형 일당)에 의해 의도적으로 외직으로 나가게 된 듯하다.
2) 수백(受伯) : 도백(道伯), 즉 관찰사 직을 받음. 4) 유양(維楊) : 현재의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주내면(州內面) 유양리(維楊里).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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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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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 감사함니다.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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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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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위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극하십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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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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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천면 귀백리(상백), 율극리 앞 강가 마을이 능서면 내양(내楊)리이다. 1구는 楊花동(버드나무), 2구는 냇들(강가), 3구는 장수동(아홉장수)이다.
내양1리 이장 황종식 (031-882-4692, 011-899-4692)
능서면 사무소 031)887-3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