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소개-- 정락재 김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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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4-12-05 18:37 조회1,608회 댓글0건본문
김이구(金履矩)
1662(현종 3)∼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자방(子方), 호는 정락재(靜樂齋). 세거지는 의성. 아버지는 양좌(良佐)이며, 어머니는 금성정씨(錦城丁氏)로 시열(時說)의 딸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귀먹은 아버지를 섬기는데 늘 곁에서 필담(筆談)으로써 세상소식 및 사소한 마을일들을 상세히 알려주었고,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성묘 외에는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또, 과거를 보기 위하여 서울에 들를 때는 궁궐을 등지고 앉지 않고, 궁궐 앞을 지날 때에도 반드시 숙연히 국궁(鞠躬)을 하였으며, 숙종이 죽은 뒤에는 다섯달 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평생에 한번도 성낸 적이 없었다 한다. 학문은 유가전래의 경학과 예학에 주력하였는데, 특히 예학은 괄목할만하여 당대 거유(巨儒)인 이재(李栽)도 그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1662(현종 3)∼1722(경종 2).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안동. 자는 자방(子方), 호는 정락재(靜樂齋). 세거지는 의성. 아버지는 양좌(良佐)이며, 어머니는 금성정씨(錦城丁氏)로 시열(時說)의 딸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귀먹은 아버지를 섬기는데 늘 곁에서 필담(筆談)으로써 세상소식 및 사소한 마을일들을 상세히 알려주었고,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서는 3년 동안 성묘 외에는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또, 과거를 보기 위하여 서울에 들를 때는 궁궐을 등지고 앉지 않고, 궁궐 앞을 지날 때에도 반드시 숙연히 국궁(鞠躬)을 하였으며, 숙종이 죽은 뒤에는 다섯달 동안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다. 평생에 한번도 성낸 적이 없었다 한다. 학문은 유가전래의 경학과 예학에 주력하였는데, 특히 예학은 괄목할만하여 당대 거유(巨儒)인 이재(李栽)도 그에게 물어볼 정도였다. 호조참판에 추증되었다.
- 김 태도 종친의 선조 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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