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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명빈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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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4-12-06 21:16 조회1,800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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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산 [峨嵯山]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산.
위치  서울 광진, 경기 구리
높이  287m
문화재  아차산성(사적 234), 아차산 봉수대지(서울기념물 15), 영화사

높이는 287m이다. 예전에는 남쪽을 향해 불뚝 솟아오른 산이라 하여 남행산이라고도 하였고, 마을사람들은 아끼산·아키산·에께산·엑끼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경기지(京畿誌)》 '양주조'에 보면 화양사(지금의 영화사)가 악계산(嶽溪山)에 있다고 되어 있다.

현재 아차산의 한자 표기는 '阿嵯山', '峨嵯山', '阿且山' 등으로 혼용되는데, 옛 기록을 보면 《삼국사기》에는 '아차(阿且)'와 '아단(阿旦)' 2가지가 나타나며, 조선시대에 쓰여진 고려역사책인 《고려사》에는 '아차(峨嵯)'가 처음으로 나타난다. 조선시대에는 봉화산을 포함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지역과 용마봉 등 광범위한 지역을 모두 아차산으로 불렀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성계의 휘(諱)가 '단(旦)'이기 때문에 이 글자를 신성하게 여겨서 '旦'이 들어간 이름은 다른 글자로 고치면서 단(旦) 대신 이와 모양이 비슷한 '차(且)’자로 고쳤는데, 이때 아차산도 음은 그대로 두고 글씨를 고쳐 썼다고 한다

그밖에 산이름과 관련하여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는데, 조선 명종 때 점을 잘 치는 것으로 유명한 홍계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명종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쥐가 들어 있는 궤짝으로 능력을 시험하였는데, 그가 숫자를 맞히지 못하자 사형을 명하였다. 그런데 조금 후에 암쥐의 배를 갈라보니 새끼가 들어 있어서 '아차'하고 사형 중지를 명하였으나 이미 때가 늦어 홍계관이 죽어버렸고, 이후 사형집행 장소의 위쪽 산을 아차산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나온 광주산맥의 끝을 이룬다. 온달에 대한 전설이 많이 전해져오는데, 온달이 가지고 놀았다는 지름 3m짜리 공기돌바위와 온달샘 등이 있고 아차산성(사적 234)에서 온달이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예로부터 삼국시대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고려 때는 광나루와 함께 많은 시인·묵객들이 찾았으며, 은석사(銀石寺)·범굴사(梵窟寺)·영화사(永華寺) 등 여러 사찰이 있었다. 조선 중기까지 일대가 목장으로만 개발되어 인가가 드물고 수풀이 무성하였으며, 호랑이, 늑대 같은 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어 임금의 사냥터로 이용되었다.

근대 이후 산기슭 중턱까지 주택이 들어서게 되었고, 뛰어난 조망으로 인해 이승만 대통령의 별장이 세워졌다. 1970년대 들어 서울특별시가 일대에 아차산공원·용마공원·용마돌산공원 등 도시자연공원을 조성하였고, 산자락에 주택가와 쉐라톤워커힐호텔이 들어서 있다.  

문화재는 삼국시대에 고구려·백제·신라가 한강유역을 차지하기 위하여 250여 년 동안 각축을 벌였던 아차산성(사적 234), 아차산 봉수대지(서울기념물 15), 신라 문무왕 12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영화사(永華寺) 등이 있다. 그밖에 고구려 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보루 유적이 있고, 대성암 뒤에는 의상대사가 수련을 했던 곳으로 알려진 천연 암굴 외에 석곽분, 다비터, 강신샘 등 유적이 많다. 구리시 아치울에서는 해마다 온달장군 추모제가 열린다.

산행은 용마봉과 연계한 코스가 많은데, 구의동에 있는 영화사를 기점으로 팔각정을 거쳐 아차산 정상에 오른 후 용마봉을 거쳐 대원외국어고등학교로 내려오는 2시간 30분 코스, 광장동 동의초등학교 옆 주차장을 기점으로 능선을 타고 팔각정과 아차산 정상을 거쳐 용마산 긴고랑체육공원으로 내려오는 1시간 50분 코스, 용마산길의 아성빌라·선진연립을 기점으로 하는 코스, 워커힐호텔에서 구리시로 넘어가는 검문소 주변 우미내마을의 무료주차장을 기점으로 하는 2시간 코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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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달장군. 평강공주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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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산 영화사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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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산 입구의 생태 학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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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산성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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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차산에서 바라본 화양동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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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차산에서 바라본 한강, 검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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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차산에서 바라본 용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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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차산은 어디에나 비들기가 참 많다. 정상에도....정상 주변은 온통 고구려 유적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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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도 쪽으로 가면 구리시이다. 바로 명빈묘가 소재한.....

명빈묘

경기도 구리시 아천동(峨川洞)에 있는 조선 태종의 후궁인 명빈 김씨의 묘로, 1991년 10월 25일 사적 제364호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은 8,138㎡이며, 조성 시기는 1479년(성종 10)이다. 명빈 김씨는 한성판윤(漢城判尹)과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를 지낸 안정공(安靖公) 김구덕(金九德)의 딸로,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출생 연도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1411년(태종 11) 11월 명빈으로 책봉된 뒤, 1479년 6월 5일 죽을 때까지 태종~성종 7대에 걸쳐 내명부(內命婦)를 지켰으나, 태종과의 사이에 후사는 없다.

능의 시설은 둘레돌[護石]과 곡장(曲墻:능이나 무덤 등의 뒤에 둘러쌓은 나지막한 담)이 없이 민간인의 묘처럼 나지막하게 봉분이 조성되었고, 설상(設象)은 혼유석(魂遊石:혼이 나와서 노는 돌이라는 뜻)과 문인석(文人石)만 갖추었다. 묘갈(墓碣)에는 앞면에 '明嬪金氏之墓'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楊州ㅇㅇ面成化己亥七月初七日'이라 새겨져 있어 1479년 음력 7월 7일에 세운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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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량 때문에 광나루쪽으로 내려와 차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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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빈묘 오르는 계단(오르는 사람이 거의 없어 낙옆이 수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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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굳게 닫힌 묘소 입구. 명빈묘에 오르기 위해서는 잠시 새가되어야한다.
   도로변의 입간판과 사적364호 라는 비표가 무색하다. 관리 관청의 전화번호 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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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차산록과 한강변의 시리도록 푸른 풍광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한때
그리고 우리의 관심사 명빈묘 스케치!!!

안정공 김구덕의 따님은
1411년(태종 11) 11월 명빈으로 책봉된 뒤,
1479년 6월 5일 죽을 때까지 태종~성종 7대에 걸쳐 내명부(內命婦)를 -----
무려 69년간을 구중궁궐에서..... 후사도 없이..... 숭유억불의 조선초기에 불교에 탐닉, 불경간행 수두룩.....
연기된 12월 산행의 아쉬움이 많이 해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윤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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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차산과 명빈묘 미리보기 잘 봤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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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잘 보았습니다. 언제 다녀오셨는지. 가을같은데, 가면 아담한 묘비를 탁본해야겠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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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김구덕 란에 올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영윤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영윤
작성일

  아차산과 명빈묘 자세한 소개 감사합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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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자세한 소개에 감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