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록지>(大麓地) 속의 김득신(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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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4-12-07 16:07 조회1,581회 댓글0건본문
<대록지>(大麓地) 속의 김득신(3)
출전 : <대록지> (전게서. 171p)
김득신의 字는 자공(子公)이고 호는 백곡이며 또는 구석산인(龜石山人)이고 치(緻)의 아들이다. 어릴 적에는 심히 노둔(魯鈍)하여 증선지(曾先之)의 사략(史略)을 아버지에게서 수업을 할 적에 삼일을 가르쳐도 구독(口讀)을 이루지 못하니 외숙 목장흠(睦長欽)이 치(緻)에게 이르기를 명(命)이 곧 文에 명요(明曜:밝게 빛남)함이니 반드시 문장으로써 이 세상에 이름이 날 것이라 하고 회유(懷柔)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득신이 독서를 아주 부지런히 하여 밤과 낮으로 계속하였다. 무릇 고문을 읽음에 만 번에 이르지 아니한 즉, 그치지 아니 하였다. 伯夷傳을 더욱 좋아하여 읽은 바 1억 1만 8천번이기 때문에 그의 작은 서재의 이름을 억만재라 하였다.
先祖 甲辰生으로 仁祖 壬午年에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며 현종 임인년에 증광시에서 석갈(釋褐:문과에 급제하여 처음으로 벼슬함)이 되었다. 대성(臺省:臺諫) 外任을 왕이 직접 제수하였으나 하나도 취임하지 아니하였다. 항상 산수사이에서 소요(逍遙)하면서 시와 술로 스스로 즐거워 하였다. 공명(功名)에는 염퇴(염退:벼슬을 물러남)하여서 더럽히는 것 같이 하더니 벼슬이 중추부 同知事에 이르고 安豊君에 襲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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