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군의 편지 4 --- 1544년 4월 17일
페이지 정보
김주회 작성일04-12-16 18:30 조회1,465회 댓글1건본문
* 출전 : <槿墨 仁편>(성균관대 간. 1995. 87P, 성균관대 박물관 소장)
<해독 원문>
專 以存 副以節 深感厚意 無以爲喩 審 台候萬重 慰豁十分 皆以不輕 論罪爲啓 卽時 未聞結末 如似判金吾上知之遲卽然也 等待亦可苦 奈何奈何 餘萬 非遠書可免不宣 伏惟 台下照 謹拜 上謝狀 甲辰 四月 十七日 弟澍頓
<번역문> (金益洙)
오로지 살아남게 하랴, 절삽(節 )에 따르랴 하시는 두터운 뜻을 깊이 느끼며, 깨우쳐 주신 것으로 여깁니다. 하물며 대감님의 건강을 살펴야 함에야. 십분 명심하라고 위로하신 것, 모두 가벼이 하지 않겠나이다.
죄를 논하여 계(啓)를 하였다 하나 즉시 그 결말을 미처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판의금부<判金吾>가 상감께 늦게 알려서 곧 그랬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기가 또한 괴로우니 정말 어찌하오리까. 나머지 모든 것이 멀리서 보내는 편지인지라 갖추지 못했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삼가 대감님께서 살펴보소서. 근배. 감사의 글월 올립니다.
갑진(1544) 4월 17일 제 주(澍) 올림.
* 내용 : 화산군 김주 33세 甲辰(1544년, 중종39년, 인종즉위년) 4월 17일에 쓴 간찰이다. 그 해에 화산군은 2월 29일 세자시강원 문학(世子侍講院文學)에, 4월 3일 세자시강원 좌문학(世子侍講院左文學)에 배수되어 조강과 석강에 입시하여 세자(인종)에게 서전(書傳), 강목(綱目)을 강하던 시기이다. 이어서 5월 27일에 부친상(김공량)을, 9월 17일에 모친상(정부인 이씨)을 당하였다
* 수신인 미상. 간찰 말미의 “弟 澍 頓” 로 보아 연상으로 절친하게 교유하던 당시 대감( 품 이상)으로 불리던 사람으로 보인다.
댓글목록
김용주님의 댓글
![]() |
김용주 |
---|---|
작성일 |
감사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