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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약재와 총욕약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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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4-12-19 22:34 조회1,597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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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文산책] 척약재와 총욕약경

[부산일보 2004-11-1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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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말기 학자 가운데 김구용(金九容·1338~1384)이란 분이 있다.

이 분의 호가 '척약재(若齋)'다.

'척()'은 젓삽다는 뜻으로서 매 사에 조심스럽고 삼가며 살겠다는 마음을 담고 있다.

그가 척약재 로 자호하자 스승과 벗들이 한마디씩 해주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본다.

'열 눈이 보고 있고 열 손이 가리키네. 전전긍긍 자신을 지탱하며 처음처럼 끝까지 삼가시게'(한복·韓復) '불경하지 말고 자신도 속이지 마오. 썩은 동아줄 잡은 듯 마른 가지를 잡은 듯 하게나'( 이달충·李達衷) '범의 꼬리 밟은 듯 살얼음을 건너는 듯 오직 정 밀하게 살펴라'(이색·李穡) '마음 혹여 놓으면 실타래처럼 엉키 리니 반드시 일삼아서 종일토록 애쓰오'(정도전·鄭道傳) '저 물 도 밤낮을 쉬지 않고 넘실넘실 흐르는데,그대 마음 흔들리면 혈맥 은 막히리'(정몽주·鄭夢周) 한결같이 초심을 끝까지 밀고 나가며 항상 조심하라는 당부다.

뜻 밖에도 여기엔 이색을 비롯하여 정몽주 등 당대 대표적인 지식인 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은 당시 정치적,경제적 개혁에 온몸을 던졌지만 오히려 외세에 붙어 연명하며 변화를 두려워하던 기득권 의 강력한 저항으로 수세로 몰리고 있었다.

말 한마디조차 억압의 빌미가 되었기에 이들은 늘 긴장 속에 살았다.

특히 일상은 더욱 주의해야 했다.

그래서 백문보(白文寶)는 김구용에게 ''척()'자 는 마음 심(心)과 쉬울 이(易)로 되어있다.

마음은 일상적인 데에 서 소홀하기 십상'(척약재설)이라며 일상에서 학업을 닦고 덕성을 수양하라고 충고했다.

일상에 대한 경계다.

나는 '척'자를 볼 때마다 '총욕약경(寵辱若驚)'(노자)이 생각난다 . 이것은 '남에게 총애를 받는 것과 모욕을 당하는 것은 모두 사 람에게 죽음과 같다'는 뜻이다.

'경'은 말이 깜짝 놀라 아주 위태 롭다는 뜻이다.

거의 죽음에 가깝다는 말이다.

모욕은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존엄을 해치며 죽음으로 몰아 가기도 한다지만 총애 는 좋은 것이 아니던가? 뜻밖에도 총애도 모욕처럼 사람의 존엄을 해친다.

이 관계에서 주 인은 총애하는 사람이다.

그 총애를 받는 나는,나의 주인에서 '남 '으로 변한다.

남이 되어버린 나! 여기에 총애의 비극이 있다.

우 리는 총애를 받기 위하여 굽실거린다.

혹시라도 총애를 잃을까 안 절부절 하다 끝내는 자존심도 팽개친 채 총애를 구걸하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 총애를 위해 나이도 잊은 채 무릎꿇고 굽실대는 사 람들이 그 얼마나 많던가? 이처럼 자존(自尊)을 잃고 주인됨을 잃 은 자는 생명력을 소실한 사자(死者)다.

나의 생명이 내 것이 아 니기 때문이다.

통념의 전도(顚倒)다.

척약재에게 당부하던 말들 또한 이런 사태를 우려한 충고는 아니 었을까? 편안한 일상과 의심 없이 수긍하는 통념 속에서 나 자신 은 어느새 남이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젓사올 뿐인져!

댓글목록

김발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발용
작성일

  오늘은 포천의 문온공 선조님 단소를 다녀온 후라 글의 의미가 다르게 전달됩니다.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총애나 모욕이나 모두 좋지 않군요.  총욕약경.... 외워 두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