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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집어의촬요방 (新集御醫撮要方)---1226, 최종준(崔宗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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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4-12-31 03:13 조회2,004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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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준 검색>

1 고전국역총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신유 4년(1201),   김종서 등 1968 -  -  
 
2 고전국역총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정축 4년(1217),   김종서 등 1968 -  -  
 
3 고전국역총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무자 15년(1228),   김종서 등 1968 -  -  
 
4 고전국역총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병오 33년(1246),   김종서 등 1960 -  -  
 
5 고전국역총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임인 29년(1242),   김종서 등 1960 -  -  
 
6 고전국역총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임오 9년(1222),   김종서 등 1968 -  -  
 
7 고전국역총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병자 3년(1216),   김종서 등 1968 -  -  
 
8 고전국역총서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정해 14년(1227),   김종서 등 1968 -  -  
 
9 고전국역총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진양후 봉책(晉陽侯封冊)의 교서  이규보 1978 -  -  
 
10 고전국역총서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새로 엮은 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에 대한 서  이규보 1978 -  -  

 

11 고전국역총서 동문선(東文選) 마제(麻制)  서거정 등 1968 -  -  
 
12 고전국역총서 동문선(東文選) 봉 진양후 교서(封晋陽侯敎書)  서거정 등 1968 -  -  
 
13 고전국역총서 동문선(東文選) 제 재신 최종준 김중귀 김양경 마제(除宰臣崔宗峻金仲龜金良鏡麻制)  서거정 등 1968 -  -  
 
14 고전국역총서 동문선(東文選) 신집어의촬요방 서(新集御醫撮要方序)  서거정 등 1968 -  -  
 
15 고전국역총서 동문선(東文選) 사재경 최종준 좌사랑중 최종재 계양도호 부사 최종번 등 양 기복 불윤 비답(司宰卿崔宗峻左司郞中崔宗梓桂陽都護副使崔宗藩等讓起復不允批答)  서거정 등 1968 -  -  
 
16 고전국역총서 동문선(東文選) 제 재신 김취려 최정분 최종준 김중구 교서(除宰臣金就礪崔正?崔宗峻金仲龜敎書)  서거정 등 1968 -  -  
 
17 고전국역총서 동사강목(東史綱目) 병오년 고종 33년(송 이종 순우 6, 몽고 정종(定宗) 원년, 1246)  안정복 1977 -  -  
 
18 고전국역총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철원도호부 (鐵原都護府)  이행 등 1969 -  -  
 
19 고전국역총서 양촌집(陽村集) 중찬 김방경(金方慶)  권근 1979 -  -  
 
 

 

동국이상국전집 제2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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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01.gif 서 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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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n09.gif 새로 엮은 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에 대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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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 인생이 중히 여기는 것은 몸과 목숨일 뿐이다. 비록 사생(死生)ㆍ수요(壽夭)가 다 하늘에 매인 것이라 하나, 만일 몸을 조섭함이 적절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질병이 침범하게 되어 좋은 방문(方文)과 묘한 약으로써 이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그 사이에 어찌 목숨을 횡실(橫失)하는 자가 없겠는가?
이러므로 옛 성현이 《본초(本草)》ㆍ《천금(千金)》ㆍ《두문(斗門)》ㆍ《성혜(星惠)》 등 모든 방문을 저술하여서 만백성의 생명을 구제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권질이 너무 호번하여 열람하기에 곤란하다. 만일 시일이 오래 갈 병이면 의원을 찾는 것이 가하고, 모든 서적을 뒤져서 그 방문을 찾는 것도 가하다. 그러나 만약 갑자기 위급한 중병을 얻었다면 어느 겨를에 의원을 찾고 서적을 뒤질 수 있겠는가? 아예 정밀하고 요긴한 것만을 채집하여 위급을 대비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국조(國朝)에 다방(茶房)에서 수집한 약방문 한 질이 있는데, 수집한 지 오래라, 탈루되어 거의 유실될 지경에 이르렀었다.
지금 추밀상공(樞密相公) 최종준(崔宗峻)이 이것을 보고 애석히 여긴 끝에 그것을 인쇄하여 널리 보급할 것을 생각하고 이를 상께 아뢰니 상께서 흔연히 허락하였다.
공은 이에 2권으로 나누고 또 모든 방문 중에서 가장 긴요한 것만을 첨부하여 사람을 시켜 선사(繕寫)하게 한 다음 이름을 《어의촬요(御醫撮要)》라 하고, 어명으로 서경유수관(西京留守官)에 보내어 인쇄하여 세상에 유포하게 하였으니, 이 또한 성조(聖朝)에서 백성 보기를 적자(赤子) 보듯하는 어진 정책이며, 또 사군자(士君子)가 중생을 널리 구제하는 뜻이기도 하다.
아, 좋은 점이 있으면 덮어두지 못하는 것은 나의 고집한 바인데, 공이 또 명하여 서를 쓰게 하니, 어찌 피할 수 있겠는가? 삼가 두 번 절하고 그 대략을 쓴다.
병술년(고종 13, 1226) 4월 일에 서한다.
   

 

 

 

양촌선생문집 제3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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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01.gif 동현사략 東賢事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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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con09.gif 중찬 김방경(金方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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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자(字)는 본연(本然)이요,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할아버지 민성(敏成)은 직사관(直史館)을 지냈고, 아버지 효인(孝印)은 병부 상서와 한림학사를 지내고 중서령(中書令)에 추증(追贈)되었는데 신라왕(新羅王) 김부(金傅)의 15대 손이다. 처음 벼슬은 식목 녹사(式目錄事)였는데 시중(侍中) 최종준(崔宗峻)이 그의 충직함을 아껴서 요직을 맡겼다. 그 뒤로 내직(內職)ㆍ외직(外職)을 역임하면서 훌륭한 치적(治績)을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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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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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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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