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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과 [도서집성] 1만 권 구입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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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08 23:00 조회1,610회 댓글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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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당평전1 (2002, 유홍준, 학고재)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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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안목과 식견이 뛰어났다. 그는 학문의 연찬과 문화의 진흥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학술의 기본자료를 모아 학자들에게 연구케 하는 일에 무한대로 지원했다. 그 대표적인 예를 [도서집성](圖書集成) 전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다.


1776년 사은부사로 떠나는 서호수(徐浩修 : 1736~1799)에게 정조[흠정고금도서집성](欽定古今圖書集成) 1만권 (5200책)을 구해오게 했다. 이 책은 강희제 때 시작하여 옹정 연간까지 근 50년에 걸쳐 완성된 ‘미증유의 유서(類書, 叢書)’로 대단한 귀중본이었다.

정조의 명을 받은 서호수는 이 귀중본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이 방대한 희귀본은 좀처럼 구할 수 없었다. 서호수는 이 전집물을 정식으로는 절대 구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마침내 사람을 앞세워 한림원(翰林院)에 뇌물을 진탕 주고 기어코 한 질 5200책을, 그것도 동활자 초인본(初印本)을 구해서 몇 수레에 나누어 싣고 한양으로 가져왔다. 요즘에도 볼 수 있는 조선 억척이의 일처리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다.

정조는 너무 기뻐서 책의 장정을 새로 잘 고쳐서 창덕궁 규장각의 개유와(皆有窩)*도42 에 소장케 했다. 본래 규장각의 부설 장서각에서는 조선책은 서고(書庫)에, 중국책은 열고관(閱庫館)에 보관했는데 중국책이 늘어나면서 새로 증축한 서고가 개유와였다. 개유와란 “모든 게 다 있는 집” 이라는 뜻이니 그 기상을 알 만하다. 이 책은 현재까지도 서울대 규장각 도서실에 보존되어 있다.

도42. 창덕궁 주합루(宙合樓). 창덕궁 규장각 건물로 주합루 아래층에는 서고, 위층에는 열람실이 있었다. 규장각의 서고에는 많은 도서들이 수집, 보관되었다. 정조는 [흠정고금도서집성] 5200책도 이곳에 보관하게 했다.


정조는 그 유명한 [사고전서](四庫全書) 3만 6000책 한 질도 구하고 싶어 했다. [사고전서]가 편찬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정조는 중국 가는 사신에게 [사고전서] 한 질을 구해오라고 부탁 아닌 명령을 했단다. 네 곳의 서고에 보관할 목적으로 사고전서라 이름붙인 한정본을, 그것도 다른 나라에서 한 질 구하겠다는 것이니 무모하다면 대단히 무모하고 엉뚱한 발상이었다. 그것은 뇌물 아니라 더한 것을 주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도43. 중국 북경의 문연각(文淵閣). 건륭황제 때 편찬된 [사고전서]는 4곳의 서고에 보관되었는데 그 중 한 질이 이곳 문연각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나 규장각에 [사고전서] 한 질을 갖추려는 정조의 열망을 보면 그의 학예 진흥에 대한 열정이 어떤 것인가를 능히 알 만하지 않은가. 이런 정조의 후원이 조선 후기 문예 부흥을 일으켰다. 물론 [사고전서]는 들여오지 못했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profile_image 솔내
작성일

  사고전서... 그것도 들여오셨다면... 국보감이 되겠네요.  대단한 정조대왕의 열정입니다.  그 부흥이 계속되었어야 했는데....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학문에 대한 정조대왕의 열정,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