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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우리 선조님 03---김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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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11 15:15 조회1,473회 댓글3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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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지털한국학

김승용(金承用)

?∼1329(충숙왕 16). 고려의 문신.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방경(方慶)이며, 아버지는 부지밀직사사를 지낸 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충숙왕 때 내부령(內府令)이 되었다.

1323년 정안군 종(定安君琮)과 함께 원나라 진종(晉宗)의 등극을 축하하기 위해 원나라에 다녀왔으며, 1328년 밀직사로서 성절사가 되어 원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오는 길에 죽었다. 청렴하기로 유명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孫弘烈〉



■ 김승용묘지명(金承用墓誌銘)

(--- 마 멸 ---) 천력<天曆, 원나라 문종(文宗)의 연호> 二 년 기사(一三二九)년 三월 갑술(甲戌)에 선수선무장군(宣授宣武將軍) 관고려국만호(管高麗國萬戶) 광정대부(匡靖大夫) 밀직사(密直使) 보문각대제학(寶文閣大提學) 상호군(上護軍) 김공이 표(表)를 받들고 원나라에 하례(賀禮)하고 돌아오다가 압록강을 건너면서 병에 걸려 신안(新安)의 여관에서 죽었다.

이달 경진(庚辰)일에 영구(靈柩)가 역마(驛馬)로 운송되어 서울에 들어와서 고류동(孤柳洞)에 있는 사저(私邸)에 빈청(殯廳)이 마련되었다. 다음 달인 四월 병신(丙申)일에 묵동(墨洞)의 북쪽 산 기슭에 장사 지냈다. 아아! 공의 휘(諱)는 승용(承用)으로 영가<永嘉, 안동(安東)의 고호>가 본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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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은 문음(門蔭)으로서 나이14세가 되자 곧 천화사진전(天和寺眞殿)에 조용(調用)되었으며 23세에는 진사시(進士試)에 합격 하였다. 27세에는 무사로서 왕을 호종(扈從)하여 원(元)에 갔었다.

-----공은 처음에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 원관일(元瓘一)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1녀를 낳았다. -----첫부인은 공보다 먼저 죽었다. 나중에 대호군(大護軍) 이자(李資)의 딸및 감찰시사(監察侍史) 박영견(朴永堅)의 딸에게 장가 들었으나 모두 후손을 두지 못하였다. 아아! 향년(享年)이 예순둘이니 일찍 돌아가신 것이 아니며 -----

두 아들(=구, 후)이 내(=이숙기)가 선군(先君=김승용)의 오랜 친구라는 것을 알고 울면서 지문(誌文)을 청하니 눈물을 붓끝에 적시어 명(銘)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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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정대부 밀직사좌부대언 삼사우윤 보문각제학 지제교 이숙기(中正大夫 密直司左副大言 三司右尹 寶文閣提學 知製敎 李叔琪)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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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김승용 묘지명에 의하면 1329년 돌아가셨을때 ---향년(享年)이 예순둘이니 ---
역산하면 1268년생이 됩니다.
따라서 김승용(?∼1329) 생몰년 기록을 (1268∼1329)로 정정 요청해야 할 듯.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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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홈의 몰년을 수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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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원관일(元瓘一)의 딸에게 장가들어 2남1녀를 낳았다"를
"원관(元瓘)의 첫째딸에게 장가들어 2남1녀를 낳았다"로 수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