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의 우리 선조님 04---김승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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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11 15:19 조회1,584회 댓글1건본문
■ 디지털한국학
김승택(金承澤)
?∼1358(공민왕 7). 고려말의 문신. 본관은 안동. 할아버지는 상락후(上洛侯) 방경(方慶)이며, 아버지는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 훤(?)이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6월 조적(曺?)의 난 때 왕을 호종한 공로로 이등공신에 봉해져 전(田)70결과 노비 5구를 받았다.
1352년(공민왕 1) 8월 이제현(李齊賢)·한종유(韓宗愈) 등과 함께 서연관(書筵官)이 되었으며, 입시해서 시독(侍讀)할 때마다 칭찬을 받았다. 10월에는 찬성사(贊成事)가 되었으며, 중서평장사(中書平章事)로 치사하였다. 시호는 양간(良簡)이다.
참고문헌 高麗史. 〈朴天植〉
■ 고려사
1341년(충혜왕복위2) 6월 조적의 난으로 왕이 원도(元都)에 갔을 때 간신들이 변란을 꾸몄으나, 삼사우사로서 왕을 시종한 공으로 정승 채하중, 상락(上洛)부원군 김영돈(金永旽), 김영후(金永煦), 언양군 김륜(金倫), 김해군 이제현, 성산군 이조년, 첨의평리 한종유 등은 1등 공신으로 봉해져 벽상에 그들의 화상을 그리게 하고 그 부모와 처는 세 등급을 올려 작위를 주고 아들 한 명에게 7품직을 제수받고, 아들이 없으면 조카나 생질에게 대신 줄 것이며 사위는 8품 직을 주고 토지 1백 결(結)과 노비 10명을 받았다.
또한 영창군(永昌君) 김승택(金承澤) 등은 2등 공신으로 정하며 부모와 처는 세 등급을 올려 작위를 주고 아들 한 명에게 8품 직을 제수받고, 아들이 없으면 그 대신 사위에게 9품 직을 제수하고 토지 70결과 노비 5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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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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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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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의 내용은 홈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