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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의 우리 선조님 07---김순 막내사위 별리가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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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1-12 10:11 조회1,696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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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순 묘지명 (1321, 민지 撰)

----- 장남 永暾(영돈)은 현재도관직랑 지합주사로 있고

2남 永暉(영휘)는 현재 흥위위 보승별장으로 있고

3남 斯順(사순)은 삭발하고 중이 되어 慈惠宗 大德이 되었고

(=1321년, 영후 30세) 4남 永煦(영후)는 사헌부 지평으로 있었다.

장녀는 입내시 중정대부 친어군대호군 鄭 (정책)에게로 출가하고

2녀는 대광 상당군 白 正(백이정)에게로 출가하고

3녀는 원나라 좌승상 아홀반의 아들인 사인 별리가불화에게로 출가하였다.


■ 김순처 허씨 묘지명 (1332, 이제현 撰)

----- 장자는 永暾(영돈)인데 봉상대부 전법총랑이요

차자는 永暉(영휘)인데 흥위위 낭장이요

다음은 출가 (속세를 버리고 불승이 됨)하니 이름이 思順이며 慈恩宗 大德이고

(=1332년, 영후 41세) 다음은 永煦(영후)니 봉선대부 자섬사사이다.

장녀는 대광 청하군 정책에게 시집갔는데 먼저 죽었고

다음은 대광 상당군 백이정에게 시집갔고,

막내 딸은 王人 별리가불화에게 출가하였으니 절강성 참지정사



■《고려사》 제35권 - 세가 제35 > 충숙왕 2 >

충숙왕 경신 7년(1320)

가을 7월에 계사일에 원나라에서 황태후를 “태황태후(太皇太后)로 존칭하기로 결정하고 이것을 천하에 포고하고 별리가불화(別里哥不花)를 보내 조서를 반포하였다.


■《고려사》 제124권 - 열전 제37 > 폐행 2 >

신청 〔박청(朴靑)의 기사 첨부〕

신청(申靑)은 일명 신송(申松)인데 다인(多人) 현 벌리(伐里) 역의 역리(驛吏)였다. 일찍이 원나라로 가서 심왕(瀋王) 고(暠)의 시종이 되어 총애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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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성이 이 글을 베껴 김영후(金永煦)에게 주어서 중서성에 제출하게 하였다. 김영후는 그 매부 별가불화(別哥不花)가 당시 원나라 평장사(平章事)였으며 왕에게는 양이형제(兩姨兄第)의 관계가 있는 까닭에 왕이 김영후에게 초 1백 정(錠)과 능직 비단 15필, 모시 30필을 주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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