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人으로 살다 간 작고 평범한 사나이, 덩샤오핑 - 출처: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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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작성일05-01-31 09:12 조회1,430회 댓글4건본문
150cm 작은 키로 넓은 중국 대륙을 개혁 개방의 길로 이끈 덩샤오핑의 생애는 ‘부도옹(不倒翁 : 오뚝이)’이라는 별명처럼 좌절과 재기가 반복된 파란만장한 드라마였다.
사천성 시골 마을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파리 유학을 통해 인생의 전환기를 맞았다. 낮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밤에 공부했는데 이때 겪은 중노동과 착취, 서양인 감독으로부터 받은 굴욕감은 청년 덩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프랑스로 전해진 러시아 10월 혁명의 열기에 사로잡힌 그는 공산주의자로 변모하여 중국 혁명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때부터 본명 ‘부센’을 버리고 ‘작고 평범한’이라는 뜻으로 ‘샤오핑’이란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덩은 마오쩌둥의 신임을 받는 참모였으나 ‘문화대혁명’, ‘대약진운동’ 등 무모한 정책에 대해서는 거침없이 비판했다. 한 주요회의에서 “반대하는 자는 일어나라”고 하여 덩이 일어서자 마오쩌둥이 “덩 동지는 키가 작아 앉은키와 다름없으므로 안건을 만장일치 통과시키겠다”고 했을 때 책상을 딛고 올라섰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저 작은 동지를 과소평가하지 마시오. 그 앞에 위대한 미래가 있소.” 마오쩌둥이 흐루시초프에게 경고한 지 21년이 지난 1978년, 덩은 중국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올랐다.
유학을 통해 일찍이 근대화의 필요성을 깨달은 그는 대담하게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했다. 농민들이 생산물과 이윤을 스스로 관리하도록 해 의욕을 북돋았고, 외국의 투자를 유치했으며, 소외층이던 지식인을 등용했다.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를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라는 흑묘백묘론은 그의 실용주의 사상을 잘 나타낸다. 그는 이론이나 타인의 의견에 얽매이지 않았고 권위주의를 싫어한 서민적인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의 정치개혁이 경제개혁에 보조를 맞추지 못해 많은 부작용을 낳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민중의 불만을 샀고, 결국 1986년 민주화 요구 시위와 1989년 천안문사태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세차례 실각에서 번번이 재기했고 그때마다 보여 준 낙천적인 성격과 성실성으로 정치생명은 연장되었다. 청이 몰락한 뒤 혼란에 빠졌던 중국이 잠재력이 큰 나라로 거듭난 중심에는 바로 작은 거인, 덩샤오핑이 있었다.
▲ 출처 : 좋은 생각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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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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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중국의 거인! 덩샤오핑!!!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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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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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등소평...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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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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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등소평과 중국--, 잘 읽었습니다
김태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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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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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거대한땅 중국을 빈곤에서 경제부흥으로 이끌어낸 작은거인 ㅡ등소평.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