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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수와 하담 김시양선조님 영해 유배지 탐방>(5)-관어대에 우리 선조님의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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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5-02-03 00:45 조회1,704회 댓글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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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연수와 하담 김시양선조님 영해 유배지 탐방>(끝)-관어대와 선조님들의 역사 자취

 

 하담공의 제자였다는 권경(權璟)종택을 찾아 가기 위해 괴시1리의 도로 옆에서 길을 물으니 “아하  관어대요” 하면서 친절히 길을 안내한다. 이 <관어대>는 <하담문집> 속에 여러 수의 시 제목으로 등장했던 지명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유배지인 원구리의 서재골에서 불과 2-30리밖에 되지 않는 이곳으로 하담공께서 자주 왔단 말인가! 그리고 제자인 권경이 있는 이곳 괴시2리에 왔다가 관어대(觀漁臺)에서 자주 시를 지으신 것일까? 관어대란 아마도 높고 바다가 보이는 경치 좋은 곳인 것 같은데 길 안내자는 동네 이름으로 말하지 않았는가? 의문과 호기심을 가득 안고 괴시2리로 들어가 동네 어른에게 권경(대은공) 종택과 권박씨의 집을 물었다. 어른은 산 아래 대나무숲이 있는 곳을 가리키며,

  “저기인데 쥔은 포항에 갔는데---, 대신 저기 저 집에 가서 물어보소”한다. 동네 사람들의 움직임을 서로가 다 알고 있다.

가리키는 곳을 찾으니 權壽雲이란 문패가 걸려 있는 현대식 단층기와로 잘 지어진 집이다. 마당엔 잔디가 깔리고 한쪽 담을 연하여 현대식 정자가 지어져 있고 그 옆엔 온실을 붙여 만들어 몇몇 꽃나무들이 겨울을 나고 있었고, 그 아래에는 5평 넓이의 아담하고 예쁜 연못이 있다. 연못 속엔 잉어 10여 마리가 유유히 유영하고 있다. 부러움을 뒤로 하고 안채 문을 두드리니 70여 세의 사모님이 나오신다. 권선생님은 강구에 나가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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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수운님 댁 내의 아름다운 모습>

 

   찾은 목적을 간단히 말하니 태도가 바뀌며 예를 다하신다. 권경 종택을 물으니 금새 밖으로 나와 안내해 주신다. 종택에는 나이 80도 넘은 듯한 여인들만 계신다. 그런데 방문 목적을 대충 설명하자 예사로운 사람이 아니라며 예를 차리시느라 어쩔 줄을 모른다. 당호는 현판에 <醉翁世廬>(취옹세려-술취한 늙은이가 사는 초가집)라고 적혀있다. 몇 장의 사진만을 찍고 나오며 종택 앞의 별당으로 가니 현판에는 <晩松堂>이라 적혀 있다. 사모님께 관어대를 물으니 이 만송당을 가리킨다. 아무래도 이곳은 아닌 듯싶다. 종택 뒤의 산(상대산0183.3m) 위에 무언가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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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택 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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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택 해설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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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경 종택과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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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경 종택 앞의 만송당. 정자처럼 지어졌다>

 

  다시 권수운선생님 댁으로 돌아와 이 정도에서 포기하고 돌아갈 양으로 인사하고 떠나려하니 권선생님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 준다. 몇 가지만 여쭤볼 생각으로 전화를 거니 반갑게 맞으며 집에 다 왔다고 잠깐만 기다리란다. 좀 있으려니 좋은 승용차 한 대가 마을로 들어온다. 선생님을 따라 다시 집안으로 들어가 공손히 절하며 통성명한다. 그리고 이곳에 온 목적을 말하니 그렇게 반가워하실 수가 없다. 먼저 자신을 소개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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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수운 선생님> (77세)

 

  권선생은 안동권씨 이곳 영덕종친회장이시며 울산에서 상선회사를 운영하시고 계셨는데 이곳은 고향이며 이 집은 별장처럼 쓰고 있단다. 그리고는 나에게 몇 권의 유인물을 주신다. 1995년 이곳 안동권씨 문중회(상대회)에서 주관한 <청소년 수련회 자료>였다. 문중회에서 청소년들을 위한 문중역사 교육활동을 전개해 왔던 것이다.

 나는 갑자기 부러웠고 동시에 부끄러운 우리 자신을 생각했다. 그나마 우리 안사연의 여름캠프를 생각하고 다소 위안을 했다. 이 소책자에는 이곳 역사가 잘 설명돼 있었다. 이곳은 조선 초 1460년 이후 안동권씨가 대대로 살아온 곳으로 안동권씨 副正公 權通義의 8세손인 五峯 權策이 처음 입향했다고 한다. 공은 단종복위에 참여했던 從父 金自愼 등으로 인해 온 종족이 극형을 당할 때 단종의 외족 근친으로서는 유일하게 생존한 자로서 13세의 나이에 이곳 영해로 유배왔다가 단양신씨의 보호로 살아남아 신씨의 사위가 된 이후 대대로 그 후손이 살아오며 번성하여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중 臺隱 權璟(1604-1666)은 이 지역 성리학을 일으킨 대표자로 고장의 명성과 후학 양성에 평생을 바친 은둔처사형의 유학자라 한다. 그의 행장을 보면, 유년시절 재주와 성품이 뛰어나 하담 김시양이 제자를 삼았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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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중회에서 실시한 청소년 교육자료와 하담선조 관련내용 >

 

그런데 나는 다음 내용에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공(권경)의 학문과 덕행이 나날이 발전하자 스승 하담이 극찬하며 『이 사람은 재상의 재목이라 사위를 삼을 만하다』며 그의 질녀와 혼인을 시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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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담선조의 질녀라면 나의 13대조이신 감사공(휘 素)의 누이가 아니신가!

 아니! 바로 이곳에 나의 선조님이 계셨단 말인가? 그럼 아까 보았던 그 권경의 집이 나의 13대조 왕고모님께서 멀리 충청도 괴산에서 이곳으로 시집와서 사셨던 곳이란 말인가! 놀랍고 또 놀라웠으며 큰 충격이었다.

  권선생님은 또 한 권의 책을 내놓는다. 권경의 문집인 <臺隱先祖文集> 복사본이다. 얼른 공의 행장을 폈다.

 거기엔 이렇게 또렷이 적혀 있었다. <妻以 贈兵曹參判 行陽德縣監時說之女 卽荷潭公之兄子也>(처는 증 병조참판이며 행 양덕현감인 시열의 따님이신데 즉 하담공 형의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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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은문집>(복사본)

 

  陽德公(휘 時說)은 나의 14대조가 아니시던가. 보고 또 보았다. 이곳에 온 것은 나의 자력으로 왔다기 보다는 아마도 누군가가 나를 이곳으로 끌어온 것 같았다. 갑자기 무서워지기조차 하다. 원구리에서부터 아무런 소득 없이 허탕 칠 것만 같던 일들이 곧 순순히 풀어지며 나에게 더 큰 감동을 주게 한다. 나에게 벌어진 오늘의 이 일들은 과연 누구의 命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신화 같은 우연의 연속이요 괴이한 현실의 사건이란 말인가. 소름이 끼쳤다.

문집을 좀 더 살피니 8수의 시와 2개의 書가 발견된다.

1. <金方伯臺下設宴韻. --方伯名徽 荷潭先生子 時按本道> : 김방백과 대(관어대) 아래에서 잔치를 벌이고 쓴 시운--방백의 이름은 휘(호 사휴제, 하담공의 차자. 1665년(현종6)에 경상도 관찰사 역임. 이조판서역임)요 하담 선생의 자이다. 이 때(1665년) 본도(경상도) 관찰사이다.
2. <送方伯向內延> : 방백은 사휴제공 휘로 추정

3. <臨瀛館贈知府金知白素> : 임영관에서 부사 김지백 소(감사공 휘 素. 자는 知白)에게 주는 시. 감사공은 권경의 처남이 된다. 감사공은 강릉, 영흥, 종성, 장단부사를 지낸 바 있음

4. <次知白韻> : 지백의 시를 차운하여. 지백은 감사공 素

5. <贈知白> : 지백(휘 素)에게 주는 시

6. <醉贈知白> : 취한 지백(휘 素)에게 주는 시

7. <別知白> : 지백(휘 素)을 송별하며

8. <謝知白中路送酒> : 지백에게 사례하여 도로에서 술을 보내며

9. 書 <上荷潭金先生--時讓> : 하담김선생에게 올리는 글

10. 書 <答荷潭先生> : 하담선생의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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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은문집 내부 목차-선조님관련 자료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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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학공파보. 시열-소-구만 의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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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학공파보. 시열의 3자 영 다음에 첫사위로 권경이 나온다>

 

여기서 잠시 하담공께서 이곳에서 쓰신 <관어대>관련 시를 생각해 본다.


어대(觀魚臺)를 찾았다가 겸하여 권사현(權士賢)을 방문한 운에 따라 (訪觀魚臺兼訪權士賢次韻)


경치를 보았더니 땅이라고는 없어                       勝境臨無地

높은 대(臺)는 모두 태고적 공허                         高臺切太虛

내 몸은 마치 그물 안에 있는 듯                          此身猶在網

물가에 가니 헤엄치는 물고기가 부러워…             臨水愧游魚

  주: 관어대(觀魚臺)…경북 영덕에 있던 누각(?)

       권사현(權士賢)...권경의 부친인 醉翁 권의협(權宜협)을 말하는 듯(?) 


관어대(觀魚臺)


일본의 서쪽 자해(紫海) 동쪽                                日本之西紫海東

높은 다락 아득한 허공에 기대어                          高臺??倚虛空

인어가 사는 신기루 삼천계(三千界)를 널리 삼키고  平呑鮫蜃三千界

멀리 큰 새가 구만리를 날아가는 바람을 받네         遙納鯤鵬九萬風

무성한 풀은 푸르게 이어져 넓은 들판에 잠기고      芳草綠連平野沒

석양의 붉은 빛 드리운 안개와 이어져                   夕陽紅接落霞通

뱃머리에서 교룡(蛟龍)의 피리소리 어떻게 들을 수 있다면 船頭那得蛟龍笛

부는 소리 풍이(馮夷)가 있는 땅 밑의 궁전과 통하련만. 吹徹馮夷地底宮

  ?주 : 자해(紫海)…경상북도 영해의 옛 이름.

        풍이(馮夷)…물의 신(神) 음양을 관장하는 신


  권선생님은 이 <대은문집>은 현재 국사편찬위원을 지낸 영해에 사는 문중인인 권호기란 분이 국역 발간 준비중이라고 말씀하신다. 나에게 <하담문집> 송부를 부탁한다. 곧 우송하겠음을 약속드렸다. 갑자기 아주 가까운 지친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관어대에 대해 물으니 이곳의 관어대는 어떤 누각 이름이 아니고 마을 지명이라는 설명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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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선생님 댁 입구, 멀리 권경종택, 뒷산이 상대산. 이 산 뒤가 바로 대진 해수욕장. 이 산 때문에 이곳을 관어대라 부르게 되었다 함>

 

 권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집을 나와 다시 해변을 따라 북으로 가다가 대진 해수욕장에서 잠시 멈춰 서서 멀리 관어대 뒷산인 상대산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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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진해수욕장에서 관광지도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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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진해수욕장에서 바라 본 관어대 뒤의 상대산>

 잠시 깊은 생각에 잠겨본다.  저곳을 오고 갔던 400년 전의 선조님들과 오늘의 나를 교차시켜 생각해본다. 그리고 우리 인간 삶에서 역사란 무슨 의미를 지니며, 또 과거와 현재는 무엇이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그리고 오늘날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도 ----  (끝)










댓글목록

김주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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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타임머신을 타고 400년을 거슬러 올라가 선조님 여러분과의 만남!!!
축하드립니다. 올 설날 연휴는 떡국 안 먹어도 든든하시겠습니다.

김태도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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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축하드립니다.정말 꿈속같은 답사기 입니다. 님의말씀대로 신화같은 우연의 연속속에 400년전의 선조님들의 고귀하고도 아름다운 산역사를 찾아내셨군요.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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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참으로 경이로운 일입니다.  그리고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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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알렉스 헤일리 소설 `뿌리`를 읽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 
너무나도 찡한 감동이 밀려옵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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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축하드립니다. 오랫동안 소망하시던 일을 정성으로 이루어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