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스톱, 우애 다지는 국민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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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송정 작성일05-02-08 16:04 조회1,474회 댓글1건본문
고스톱, 우애 다지는 국민오락
‘피’도 대접받는 사회를 위해....
최영창기자 ycchoi@munhwa.com
“어머, 어머님 싸셨네요” “아버님 죽으세요! 죽는게 나아요.” “아주버님 똥 잡수세요!”
말만 들으면 도저히 한 가족 간에 나누는 대화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나 온가족이 모이는 명절 때 가족 간에 가장 흔히 오가는 대화 내용 중 하나다. 명절의 가족오락을 평정한 고스톱이 가족의 대화법까지 바꿔놓은 결과다. 올해 설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고스톱 공화국’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1960년대 일본에서 수입된 고스톱은 불과 한 세대만에 서양의 포커나 중국의 마작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게임이 됐다.
명절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사람들이 3명 이상 모이면 가장 쉽게 벌이는 게 바로 고스톱이다. 40~50대보다 20~30대가 더 고스톱을 즐긴다는 조사결과가 있을 정도로 연령대를 초월해 인기를 얻고 있다. 인터넷 강국인 한국에서 네티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온라인 게임도 고스톱이다. 따라서 게임 포털사이트는 물론 대형 포털사이트들도 네티즌의 방문을 유도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고스톱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을 정도다. 한국 놀이문화사에서 고스톱만큼 일상화된 대중성을 확보한 놀이가 없었다는 점에서 최초의 ‘국민오락’이란 평가도 나오고 있다.
19세기말 일본의 쓰시마 상인들이 전파시켰다는 화투는 16세기 포르투갈 상인들이 전한 카드놀이를 변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기원이야 어찌됐든 화투나 고스톱의 종주국이 일본이라는 것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48장의 화투로 치는 고스톱은 1950년대 일본에서 개발됐지만 20세기초 일본에서 민간에 전승된 ‘고이코이(こいこい)’에서 그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의 전통 도박인 투전은 ‘짓고땡’ ‘섰다’ ‘민화투’ 등 다양한 종류의 화투게임에 밀려 자취를 감췄다.
성인의 90% 가까이가 칠 줄 안다는 화투놀이 중 가장 발전된 형태인 고스톱은 1960년대 국내에 수입된 뒤 경제성장으로 여가문화가 성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하면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특히 신문지 한장과 화투 한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으며 빠르게 판이 전개되는 고스톱은 시간에 쫓긴 산업역군들에게 최선의 여가놀이였다. 도박을 좋아하고 내기를 선호한 민족의 성향에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표현에서 나타나듯 화투놀이 중 가장 운의 원리가 크게 작용하는 것도 고스톱을 선호하게 된 사회문화적인 배경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고스톱이 재미가 없었다면 오늘날처럼 ‘놀이의 황제’ 지위를 차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스톱의 기본골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다만 규칙은 정하기 나름이어서 지역마다, 치는 사람에 따라 그때그때 다르게 칠 수 있다. 길어야 4~5분이면 한판이 끝나는 스피디한 전개와 설사·판쓸이·폭탄 등 단순하지 않은 플롯과 드라마틱한 전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는 점수도 고스톱의 재미를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다. 피가 대접받는 고스톱 원리와 ‘전두환 고스톱’ ‘영삼이 고스톱’ ‘DJ 고스톱’ 등 정치인들이나 ‘삼풍 고스톱’ 같이 사건 사고를 빗댄 각종 변형 고스톱이 끊임없이 만들어진 탓에 고스톱이 갖고 있는 민중성과 현실풍자를 주장하는 견해가 대두된 바 있다.
그러나 안동대 국학부의 한양명(민속학)교수는 “고스톱의 조성원리가 우리 사회의 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닌데다 대다수 사람들은 변형 고스톱의 담론만 알 뿐 실제로 기본형의 고스톱을 즐겨 친다”며 지나친 의미부여를 경계했다. 실제 유통되는 것은 변형 고스톱이 아니라 이에 관한 담론들이라는 것이다. 민족의 명절인 설을 맞아 이제 고스톱에 대한 지나친 비판이나 정반대의 지나친 의미부여도 삼가자. 온가족이 모여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란 것만으로도 더이상 바랄 게 없지 않겠는가.
최영창기자ycchoi@munhwa.com 기사 게재 일자 2005/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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