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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e:익원공 신도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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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2-02-16 00:30 조회1,51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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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님 항시 건강하시고 소원하시는 모든일이 이루시길 기원합니다



옛날에 훌륭한 비(碑)가 있었는데 세월(歲月)이 오래됨에 결(缺)하여 사손(嗣孫) 참봉 영필(參奉 榮珌)이



비를 세우고져하여 그 족인(族人) 주사 재순(主事 在純)이 나에게 글을 청(請)하니 노병(老病)에 어찌



붓을 잡으리요 만은 공(公)은 당시(當時)팔준중(八俊中)의 일인(一人)이요 태조(太祖) 잠저시(潛邸時)의



고교(故交)이라 태조(太祖)가 일찍이 평주(平州)에 거동중 들에서 머물르시고 공(公)을 불러 소시(少時)



의 정(情)과 개국훈로(開國勳勞)의 일을 논(論)하시며 술을 서로 권하시기를 옛날과 같이 하시니 풍운이



때를 만나 왕성함은 진실로 경앙(景仰)하는 바이요 또한 재순(在純)이 조상(祖上)을 추모하는 정성을



가상(嘉尙)히 여겨 드디어 두서없는 말로써 명(銘)하여 가로대







아 ! 충렬공(忠烈公)이시여 뛰어난 영웅(英雄)이로다



문영공(文英公)과 정간공(貞簡公)이 대(代)를 이어 공경(公卿)이 되시다



공(公)은 다시 때에 응(應)하여 빛을 남기고 명성(名聲)을 날렸도다



자신(自身)을 위함이 아니라 백성(百姓)을 널리 구제(救濟) 함이로다



정성(精誠)은 사직(社稷)을 안정(安定)함에 있고 공(公)은 개국(開國)에 있도다



영성(盈盛)을 싫어하여 누차 그 직(職)을 사양하니 왕(王)께서 아름답게여겨 잠저(潛邸) 하실 때



서로 마음이 맞았으며 생존(生存)에 순(順)하시고 사후(死後) 안령(安寧)하셨으니



자손(子孫)이 번성(繁盛)하며 오직 양평(楊平)에 높은 지역(地域)이 있어 편석(片石)으로서



가히 말하나니 지나는 자(者)는 의당(宜當) 본(本)받으리로다







공(公)께서 돌아가신뒤 五二六년 갑술(甲戌) 춘 삼월(春 三月) 일



자헌대부행시종원경겸홍문학사 이우면 지음(資憲大夫行侍從院卿兼弘文學士 李愚冕 識음 )







묘소는 양평군 양서면 목왕리 산49번지에 있으며 사당도 그곳에 있다



신도비는 묘소입구에 도로변에 있는데 비문은 이우면이 지었고 김리화가



글씨를 썼고 김성묵이 전을 썼다



비의 규모는 높이 264cm 폭 67cm 두께 35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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