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자랑스럽고도 가슴아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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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2-02-16 20:17 조회1,944회 댓글0건본문
윤만 종친님! 고맙습니다.
한 2-3년 전에 음성군 향토자료에서 김재옥 교사 내용을 보고
혹시 재자항렬 우리 선안동김씨가 아닐까 하고 궁금하게 생각하다가 내용을 복사를 뜰까말까 하다가 그만둔 적이 있었는데, 이제 확실하게 알았습니다.
고재봉 사건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이 있으시면 아울러 소개 바랍니다.
참고로 진천 출신이시고 안렴사공파이신 김영국 대위에 대한 내용을 소개합니다.
734고지(김일성고지) 탈환한 김영국 대위
▣ 진천군지 1994
○ 金榮國 (? - 1951)
군인, 본관은 안동, 金圭源의 장남으로 진천읍 사석리에서 태어났다. 1950년 6.25에 참전하고 1951년 중대장(중위)으로 금화지구 734고지를 사수하다 전사, 대위로 추서되고 미국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문헌 진천군지
▣ 진천군 내고장전통가꾸기, 1982
○ 군신 金榮國 대위
진천읍 사석리 여사부락 뒷산
<전 략>
6.25때 금화지구 734고지 탈환의 신화를 남긴 군신 김영국 대위의 자랄 때의 모습이다.
김영국 대위는 진천읍 사석리 723번지에서 안동김씨 김규원의 6남매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1년 6월 6일 김영국 중위의 탁월한 작전능력과 용맹이 인정되어 금화고지 전투에 나가게 되었다. 금화지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734고지는 일명 김일성 고지라고도 하는데 탈환하는 편에서 작전상 매우 유리하기 때문에 우리 국군이나 북괴군이 서로 목숨을 걸고 빼앗으려고 하는 곳이다.
이곳에 70명의 소규모 병력을 투입하여 700여명의 북괴군을 섬멸하였던 것은 김영국 중위의 용감하고 지혜로운 작전 때문이었다. 이 전투에서 우리 국군은 3개사단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군수물자와 무기를 노획하였던 것이다.
그후 김대위는 한국군 창설이래 최고의 무훈을 세우고, 미국 대통령이 보내온 영예의 은성훈장을, 맥아더원수가 김대위의 부친께 전달하였으며, 정부에서는 화랑무공훈장과 6.25사변 종군기장을 수여하였고 유우엔에서는 국제연합을 옹호한 공으로 훈장을 보내왔다.
고 김영국 대위의 묘는 진천읍 금암리 앞산에 있다.
소속 제2사단은 김영국 대위의 출신 사단이다. 제2사단에서는 지금도 김영국 대위를 군신으로 추대하여 그의 얼을 군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자료 : 진천군지
▣ 진천군청 홈페이지
15. 지암리(芝 岩 里)
새말-신리(新里)라고도 하는데 전답이 비옥하여 농사에 적합하기 근방 주민들이 모여서 새로 마을을 형성하였기 새마을이라 한 것이 지금까지 전한다. 또한 이 동네에 성암 간이(簡易) 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이 마을 뒷산에는 한국군창설이래 최고의 무훈(武勳)을 세우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보내온 영예의 훈장을 받은바 있는 군신(軍神) 고(故) 김 영국(金榮國) 대위(大尉)의 묘소가 있는 곳이다. 제2사단에서는 지금도 김영국 대위를 군신으로 추대하여 그의 얼을 군의 귀감으로 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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