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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9. 9. 발용(군) 제공)
작성자 : 김발용-승지공(휘 돈) 19대손. 돈(墩)字 할아버님의 묘소를 찿기위해 집착한 지도 벌써 몇달이 되어갑니다. 족보에 있는 " 墓 廣州郡 龜川面 古多只洞 艮坐 " 기록만 가지고 찿으려하니 어려움이 보통이 아닙니다.
돈(墩)字 할아버님은 군사공 칠양(七陽)할아버님의 둘째 아드님으로 저의 19대조 이십니다.
조선 전기의 문신 ·천문학자. 본관 : 안동, 활동분야 : 행정, 천문학. 1417년(태종 17)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1428년(세종 10) 왕명으로 《서한이하 역대보계도(西漢以下歷代譜系圖)》를 찬진(撰進)하였다. 1434년 집현전직제학(直提學)으로 재임할 때 동활자(銅活字)인 갑인자(甲寅字)의 주조에 참여하였으며, 세종의명을 받아 김조(金對)와 함께 간의대(簡儀臺) ·보루각(報漏閣)을 만들었다. 승지로 7년간 재임하였고,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EnCyber)
광주군 구천면이 지금의 강동구 송파구 일대인것은 확인이 되었으나 고다지동(古多只洞)에 대한 기록이 없어 애를 먹었습니다. 그렇다고 구천면 일대를 다 찿아 헤멜 수도 없는 입장이고... 광주군에 의뢰 했으나 고다지라는 옛지명에 대하여는 모른다는 회신. 서울이야기(옛지명 연구)에 의뢰했으나 구천면에는 고다지동이 없다는 회신.
*서울이야기의 답변 내용입니다. 서울이야기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씀하신 구천면은 1963년 서울시 강동구로 편입되면서 하일동 상일동 명일동 고덕동 암사동 천호동 성내동 풍납동 길동 둔촌동으로 나뉘었습니다... 구천면길은 광진교 남단-명일동-상일동에 걸쳐 있는 길로 폭 12~15m, 길이6,700m의 길입니다. 구천면에 속해있었다는 고다지동을 찾아본 결과 고다지동은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 반조원리(頒詔院里)의 옛지명이었습니다...
고다지(古多只)에 대해 간략하게 말씀드리면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본래 임천군 성백면의 지역으로서 지형이 곶으로 되었다 하여 곶지 또는 古多只라 하였다가 고려 때 古多只所가 있었다 하여 고다지소 또는 古多津이라 불리우다가 조선시대 古多津院이 변하여 반조원이라 하였습니다...
김발용님께서 어떤 기록을 보셨는지는 모르겠지만요... 우리나라 땅이름이 수록된 "한국땅이름큰사전"에도 고다지라는 지명은 충남 부여군 세도면에만 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위의 답변 내용으로 보면 이제는 포기 해야 될 상황입니다. 하남시에 하남문화 연구원이라는 민간단체가 있어 고다지동에 대한 의뢰를 하였더니 간단하게 "고다지동은 고덕동입니다"라는 리플이 달려 있습니다.
정확성은 없지만 고다지동이 고덕동이라는 첫번째 답변입니다(이것만으로도 용기백배 반은 찿은느낌입니다) 9월 6일날 태영(문) 종친께서 게시판에 올려주신 글을 읽고 광주문화원을 방문했습니다. 태영(문)종친께서 올린 내용
"발용 대부님께서 알고 계신 바와 같이 휘 돈 할아버지 묘소는 광주읍지[廣州邑誌:조선 광무 3년(1899년) 필사본]에<구천면에 있다(在龜川面)>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구천면에 묘가 있는 사람으로 조린(趙麟), 이극배(李克培), 이사균(李思均), 유운(柳雲) 등이 기록되어 있더군요. 이 광주읍지는 1899년에 필사되었으므로 그 전후 시기까지는 휘 돈 할아버지 묘소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또한 조린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묘가 구천면에 있으므로 이들을 추적하면 구천면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광주문화원을 방문하여 광주군지 열람을 신청하니 1990년에 발행된 광주군지를 내어옵니다. 그곳에는 태영종친님께서 말씀하신 조린(趙麟), 이극배(李克培), 이사균(李思均), 유운(柳雲) 등의 기록은 있으나 돈(墩) 할아버님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그 이전에 나온 군(읍)지의 열람을 요청하니 광주군에서는 1990년에 발행된 군지가 최초이며 그 후에도 발행된 적이 없다고 합니다.(다시금 막막해집니다.)
그 옆의 책장에 강동구에서 발행한(제작년도는 확인치 않았으나 최근에 발행된 칼라책자) 강동구지가 있어 허락을 받고 꺼내보았습니다.
그 강동구지의 고덕동유래에 고다지동(古多只洞)이 확실이 기록돼 있습니다. 제 눈으로 확인한 첫번째 기록입니다.(가슴이 벅차오릅니다) 하지만 강동구지의 역대 중요 인물난에도 돈(墩)할아버님에 대한 기록은 빠져있습니다. 이극배(李克培), 유운(柳雲)등의 기록은 남아있으나 돈(墩)할아버님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태영종친께서 보았던 1899년 광주읍지에 기록된 돈(墩) 할아버님에 대한 기록이 언제부터 누락되었는지 답답합니다. 그런데 강동구지에서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아냈습니다. 중요인물난에 함부림(咸傅霖)이라는 인물입니다.
함부림 [咸傅霖 1360~1410]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본관 : 강릉(江陵). 호 : 난계(蘭溪). 별칭 : 자 윤물(潤物), 시호 정평(定平). 활동분야 : 정치 본관 강릉(江陵). 자 윤물(潤物). 호 난계(蘭溪). 시호 정평(定平). 1385년(우왕 11) 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검열(藝文檢閱)이 되고, 좌정언(左正言)을 거쳐 1389년(공양왕 즉위) 우헌납(右獻納)이 되었으나, 탄핵을 받고 춘주지사(春州知事)에 좌천되었다가 뒤에 형조정랑이 되었으며, 중방(重房)의 무신들이 문신을 경멸하는 데 항거하다가 파직되었다. 그 뒤 1392년(공양왕 4) 병조정랑 겸 도평의사사 경력사도사(都評議司使經歷司都事)로 복직하였으며, 이성계(李成桂)를 도와 조선 개국에 공을 세워 개국공신 3등에 책록되고, 예조의랑(禮曹議郞)을 거쳐 좌산기상시 겸 상서소윤(左散騎常侍兼尙瑞少尹)을 지냈으며, 명성군(溟城君)에 봉해졌다. 1403년(태종 3) 의정부참지사(議政府參知事)가 되고, 동원군(東原君)으로 개봉된 뒤, 다음해 대사헌이 되었다. 1405년 앞서 1395년(태조 7)의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과 함께 왕자 방석(芳碩)을 옹립하였다는 혐의로 탄핵을 받았었다. 1408년 형조판서가 되고, 병으로 물러난 뒤 경기 ·충청 ·경상 ·전라 ·황해 등 각 도의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 ·동북면도순문찰리사(東北面都巡問察理使)를 지내고, 1410년 파직되었다. (출처: 두산 세계 대백과 EnCyber)
함부림(咸傅霖)의 묘가 구천면 고다지동에 있었으나 1980년 서울시 도시화 계획에 밀려 경기도 이천군 호법면으로 이장하였다.(원래 묘가 있던 자리는 고덕 중학교 운동장)라는 기록입니다.
함부림(咸傅霖)의 따님은 저의 18대조 계로(季老)할아버님의 정부인이고, 돈(墩)할아버님의 며느님이시니, 함부림(咸傅霖)과 돈(墩)할아버님과는 사돈지간이십니다.
영환대부님께서 말씀하신 임란이전의 혼인풍속(처가살이)이 생각이 납니다.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TV의 모 프로그램에서는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산삼있는 자리를 알려주었다는 내용의 방송을 합니다. 돈(墩)할아버님도 현몽(現夢)하시어 영면하신곳을 알려주셨으면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찿아가다보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겠지요. 어제도 두어시간 고덕동 산속을 헤메었습니다. 다른 문중의 고묘들이 잘 보존 되어있는 것을 보며 부끄러움에 고개를 떨구어야 했습니다. 귀한 조상에 부끄러운 후손입니다.
여러 종친분들의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 김태서 - 좋은 결과 있으시길 기원합니다. ▣ 솔내영환 - 지성이면 감천. 너무나 당연한 말입니다. 꼭 이루어 질 것입니다. 조금이나마 보탬될일이 저에게도 주어졌으면 합니다. ▣ 솔내영환 - 참고; 돈 선조님의 아드님니신 계로 선조님의 묘소는 어데 있나요? ▣ 김항용 - 힘내십시요. 고지가 저기 보입니다.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함께 움직여 봅시다. ▣ 태영/문 - 발용 대부님, 힘내십시오. 힘껏 함께하고 싶습니다. 혼자 가시지 말고 말동무 삼아 불러주시기 바랍니다. ▣ 김발용 - 계로 할아버지는 강진에 모셔져 있습니다. 할머니(강릉함씨)는 고다지동 선영하에 모셨다고 기록되어 있으니 돈자 할아버지도 함께 실전입니다. 돈자 할아버지 묘소를 찿으면 함께 찿게 될듯합니다. ▣ 郡/김태영 - 감동 또 감동입니다. 돈자 할아버지께서 이 정성 알아주시고 반드시 찾게 해주실 것입니다. ▣ 김영윤 - 발용씨의 집념에 찬사를보냅니다 "꿈*은 이루어진다" ▣ 김영윤 - 저의 고모님께서 현재의 고덕동으로 시집가셧는데 당시는 고대기라 불리웟습니다 고다지-고대기-고덕동 으로 .... ▣ 김정중 - 대부님의 숱한 노력에 탄복 할 따름 . 잘 읽었습니다 ▣ 김재원 - 노고에김사드립니다. ▣ 김윤만 - 발용아우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은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어 종사에 길이 전해질 것입니다. 용기를 내십시요. ▣ 김재이 - 발용씨의 정신은 너무나도 감탄스럽습니다 정말 복받은 사람이 될것입니다 반면 저는 너무나도 부끄럽습니다 ▣ 김주회 - 발용 종친님의 의지와 열정에 감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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