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인물

p11.png 김 수(金 )1547(명종2)∼1615(광해군7)--(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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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몽촌공 소개

2. 묘소 소개

3. 친필 서찰

4. 시문 소개

5. 시장 소개

6. 신도비문

7. 각종 문헌 내의 기록 내용

 

본문

p11.png 1. 몽촌공 김 수(金 ) 소개

         1547(명종2)∼1615(광해군7)

조선 선조때의 명신. 字는 자앙(子昻), 호는 몽촌(夢村), 서운관정공(휘 수)의 후손으로 첨지중추부사 김로(金魯)의 손자이며, 사재감정(司宰監正) 홍도(弘度)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이계백(李繼伯)의 딸이다.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 한성(서울)사람으로 생원으로 있다가 1573년(선조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을 거쳐 이듬해 홍문관 정자 · 저작을 역임하고, 다시 예문관 봉교를 거쳐 사헌부 감찰로 승진하였다. 이어 정언 · 수찬 · 교검 · 지평 · 직강 등을 역임하고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가 되었을 때 선조의 명으로「십구사략(十九史略)」을 개수하고 주(注)를 붙였다.  1583년 번호(藩胡)가 침입하여 경원부(慶源府)가 함락되자 이조정랑으로서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종사관이 되었다. 유학(幼學) 신급(申급)이 올린 상소 속에 조정에서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인물의 하나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그 후 직제학(直提學)· 우부승지(右副承旨)를 거쳐 1587년 평안도 관찰사에서 면직되었으나 나라에서 왜(倭)를 매우 걱정하여 변방의 일을 아는 재신(宰臣)을 뽑아 삼도(三道)로 나누어 파견하여 군무(軍務)를 순찰하고 대비하도록 할 때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부제학(副提學)·대사헌, 병조·형조의 판서를 역임, 정철(鄭澈)의 건저문제(建儲問題)에 대해 옥당에서 탄핵하는 차자(箚子)를 올리려고 할 때 부제학으로서 사성 우성전(禹性傳)의 집으로 의논하러 가서 시간이 지연되어 올리지 못하였으므로 대사간 홍여순(洪汝諄)이 우성전을 탄핵하면서 남·북 두파로 갈리게 되자 남인이 되었다. 1591년 다시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고, 홍여순(洪汝淳)이 간계를 꾸며 사류(士流)를 몰아내려고 그를 크게 등용하고자 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 경상감사(慶尙監司)로서 진주에 있다가 동래가 함락되자 밀양과 가야를 거쳐 거창으로 가면서 다만 각 고을에 격문을 돌려 백성들에게 적을 피하라고 통고하니 도내가 텅 비어 왜적을 방어할 수 없었다. 전라감사 이광(李洸)과 충청감사 윤국형(尹國馨)이 근왕병(勤王兵)을 일으켰을 때 겨우 1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가하였으나, 근왕병이 용인(龍仁)에서 왜군에게 패하자 경상도 감영으로 되돌아갔다.

당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곽재우(郭再祐)와 불화가 심하여 김성일의 중재로 무마되기도 하였다. 1592년 11월 13일에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우참찬(右參贊)·형조판서를 지내고  호조판서로서 임진왜란 때 치적을 올려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1596년(선조 29) 호조판서로서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조명(朝明) 연합군 10만명 이상의 군량을 충당하기 위해 군량징수에 힘썼다. 1602년 (선조35) 11월에 우찬성, 판중추부사, 도총관을 지내고,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이르렀으며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1605년(선조 38) 4월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1613년(광해군5) 손자 비(示+必)가 적신들의 무고로 옥사(獄死)할 때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고 삭직(削職)당했다가 인조반정 후 다시 관작이 회복되었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그의 죽음을 듣고 나라의 충신을 잃었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시호는 소의(昭懿). 저서로 몽촌집(夢村集)이 있다. 임란 당시의 행적이 국조인물고와 정만록(征蠻錄)에 잘 기술되어 있다.

 

묘소는 서울시 대방동에서 1939년 3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산 59-2번지로 천봉하였다가 다시 2003년 12월, 충북 음성군 생극으로 재천봉하였다.

 

2000년 5월 18일,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도당동 도당근린 공원내에 <부천 향토 역사관>이 개관되었는데 이곳에 공의 필적(奏請使李判書-사진본)이 전시되고 있다.

 

 * 참고자료 : 石陵世蹟(신도비명,시장,방목,집록,신본십구사략발,제퇴계선생문), 朝鮮王朝實錄, 退溪集, 國朝人物考, 朝鮮史料集眞 合編, 大韓民國歷代名賢筆譜, 韓國民族文化百科大事典(정문연간), 槿墨,槿域書彙,淸選考,退溪門人錄,新增類合校正,서울육백년사(2권),征蠻錄(이탁영저),복사골문화특집,懲琵錄,大東野乘,國譯石陵世蹟(1996.안동김씨서운관정공파종중회 간), 譯註征蠻錄(1992.의성문화원간), 안동김씨 서운관정공파보), 國史大事典(知文閣 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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