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4일 안사연 답사 미리보기-12. 숙안옹주(淑安翁主)⦁황유(黃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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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작성일17-01-26 11:11 조회765회 댓글0건본문
12. 숙안옹주(淑安翁主)⦁황유(黃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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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촌면 도수리 산75 에는 조선 세종대의 인물로 회천위(懷川尉) 황유(黃裕)의 묘와 그의 부인 숙안옹주(淑安翁主)의 묘가 있는데, 황유는 태종太宗의 사위이고, 숙안옹주는 세종대왕의 누이이다. 태종과 명빈 김씨(明嬪金氏) 사이에 1녀를 생산했는데 바로 숙안 옹주(淑安翁主 ?~1464)이다. 옹주는 회덕황씨(懷德黃氏) 판사(判事) 황자후(黃子厚)의 아들 황유(黃裕 1421~1450)에게 하가(下嫁)했는데 황유는 12살에 회천위(懷川尉)가 되고 나이 30세에 사망했다. 옹주의 어머니 명빈 김씨는 본관이 안동이며 상락 충렬공 방경(方慶)의 후손으로 고조는 전법판서 선(愃)이고, 증조는 평장사 양간공 승택(承澤), 조부는 상락군 묘(昴)이다. 아버지 판돈녕부사 안정공(安靖公) 구덕(九德)과 어머니 장경택주(莊敬宅主) 영월신씨(寧越辛氏) 사이에 1남 1녀중 장녀이다. 남동생은 동지총제 김오문(金五文)이다.
황유(黃裕)는 조선초기 문신으로 본관은 회덕이다. 회덕 황씨(懷德黃氏)는 고려말 조선 초에 이 지역에서 유수한 세력으로 행세한 씨족이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성씨조(姓氏條)에 의하면 당시 회덕지방의 성씨는 4개의 토성(土姓)이 있었는데, 황(黃), 임(任), 방(房)의 사성(四姓)이 그것이다. 회덕 황씨의 중시조(中始祖)는 황윤보(黃允寶)이다. 그는 고려말 형부전서(刑部典書)를 역임한 인물인데, 이 때부터 이들 회덕 황씨가 지금의 대전지역에서 유력한 씨족으로 행세하게 되었다. 황유는 곧 중시조 황윤보의 현손(玄孫)이며, 고려때 중추원사(中樞院使)를 지낸 자후(自厚)의 아들이다. 황자후는 조선 태종 때에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1412년(태종13년)에는 형조좌참의(刑曹坐參議)에 올랐고(이 때 그는 호패법의 시행을 건의하여 이를 관철하였다), 다시 호조참의(戶曹參議)를 거쳤으며, 세종조에는 충청도 도관찰사(忠淸道 都觀察使), 한성부윤(漢城府尹), 중추원사(中樞院使)등의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하였다. 황유는 이러한 빛나는 가문의 후광을 받아 왕실과 혼인하였으니, 곧 태종의 11녀 숙안옹주(淑安翁主)의 부군으로 태종의 부마(附馬)가 된 것이다. 황유는 이로써 처음에 회천위(懷川尉 : 회천은 회덕의 옛 이름이다)에 봉해졌으며, 만년에는 봉군(封君)되었다. 황유는 숙안옹주와의 사이에 세 아들을 두었다. 그는 죽은 후에 광주(廣州) 퇴촌(退村)의 어머니(郡夫入 韓氏)묘 아래에 장사되었고, 숙안옹주는 양주(楊州)에 장사되었는데, 황유의 묘는 실전(失傳)되었다가 후일 후손 생원(生員) 황규현(黃圭顯)에 의해 찾아졌고, 훗날 옹주묘가 개발로 인해 황유의 묘 아래로 이장되었다. 황유의 묘는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도수리에 위치하고 있다. 《자료 : 世宗實錄地理志 권149, 東國與地勝覽, 懷德邑誌, 懷德黃氏大問譜, 文獻備考권50 帝系考, 燃藜室記述, 太宗朝故事本末, 續大德郡誌》 《韓基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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