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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김방경의 직(職)·훈(勳)·작(爵)·품계(品階)의 이해(理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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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영 작성일26-01-11 09:51 조회461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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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김방경의 (((품계(品階)의 이해(理解)

  

문무(文武) 최고위 '()’에 올라 국정을 총괄하며 어집럽던 나라를 펑안하게 진정시키니 백성들이 모두 그 노고를 치하하고 국가에서도 그 공로로 ()’()’을 봉해주고 품계(品階)를 내려 준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고려시대 출장입상(出將入相) 김방경(金方慶, 1212~1300)이다. 그의 직위(職位)는 첨의중찬(僉議中贊, 侍中첨의령(僉議令)을 지냈고, 훈위(勳位)상주국(上柱國)’이며 작위(爵位)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의 공작(公爵)으로 품계(品階)는 벽상공신(壁上功臣)이다. 

 

고려사(高麗史)백관지(百官志)에 의하면 직()은 크게 정책을 결정하는 재신(宰臣)과 군사 기밀을 다루는 추밀(樞密)로 나뉜다. ()에는 상주국(上柱國)과 주국(柱國) 두 단계로 나누고 공신호(功臣號)를 내린다. ()에는 크게 왕()으로 봉해주는 왕작(王爵)과 공훈(功勳)이 큰 비왕족에게 봉해준 공····(····)5등작이 있으며 그에 따른 식읍(食邑)과 관품(官品)을 정하는데, 김방경은 이 영역 모두 정점에 올랐다. 

 

1. 직위(職位) : 실질적인 업무와 권한 

 

'()’은 조정에서 어떤 일을 맡았는지를 나타낸다. 김방경은 초기에 감찰어사, 병마판관 등 실무직을 거치며 행정 능력을 보였다. 중기에는 무관의 직급인 상장군(上將軍)’과 비리를 감찰하고 풍속을 교정하던 동지추밀원사 어사대부(同知樞密院事 御史大夫)’에 올라 감찰 기구의 수장까지 겸했다. 

 

1269년 기사 (원종 10) 1213

김방경(金方慶)동지추밀원사 어사대부(同知樞密院事御史大夫)’로 임명하였다.

高麗史세가 권제26 

 

강직한 성품의 김방경은 문관으로 행정·정책·외교 뿐만아니라 무관으로 국방[軍權]과 치안 등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문무(文武) 최고직의 정점인 첨의중찬(僉議中贊,侍中)’의 직위에 올랐다. 

 

고려의 통치 체제는 성종 때, 중국의 26부제를 받아들이면서 고려의 실정에 맞게 조정하였다. 최고 관서로 중서문하성과 상서성을 두었고, 그 장관인 문하시중(門下侍中)이 국정을 총괄하였다. 이후 원 간섭기에 2성이 합쳐져 '첨의부(僉議府)'로 격하되면서 문하시중이 첨의중찬(僉議中贊)’으로 명칭이 바뀌어 사실상 고려 후기 국정을 총괄하는 수상(首相)의 역할을 하였다. 

 

어사대는 정치의 잘잘못을 논하고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는 임무를 맡았다. 어사대의 관원은 대간으로 불렸다. 대간은 비록 직위는 낮았지만, 왕이나 고위 관리의 활동을 지원하거나 제약하여 정치운영에 견제와 균형을 이루었다. 

 

1278년 무인 (충렬왕 4) 1003,

김방경(金方慶)첨의중찬 상장군 판감찰사사(僉議中贊 上將軍 判監察司事)’로 임명하고 은() 10()을 하사하였다.

高麗史世家 권제28 

 

1295년 을미(충렬왕 21) 109,

중찬(中贊)으로 치사(致仕)한 김방경(金方慶)에게  첨의령(僉議令)’을 더하였다.

高麗史世家 권제31 

 

첨의령(僉議令)’은 실제 정무를 주도하기보다는 주로 명예직이나 원로를 대우하기 위한 일시적인 직위였다. 

 

2. 훈위(勳位) : 공적에 따른 명예 칭호 

 

()’은 고려시대 국초인 태조 때부터 국왕과 왕비, 그리고 국가에 공()이 있는 공신(功臣)들에게 내려준 명예직이다. 문종 때 정한, 훈위(勳位)상주국(上柱國)’ 2. ‘주국(柱國)’ 2품의 두 단계(二階)로 사용되고 충렬왕 이후에 폐지하였다.

勳二階 有上柱國柱國文宗定上柱國正二品柱國從二品忠烈王以後廢之

高麗史,7731/百官2/ 

 

 상주국(上柱國국가에 큰 공훈을 세운 사람에게 부여하던 훈위(勳位). 

 

1274(甲戌) 10월 충렬왕이 즉위하여 1차 일본정벌의 공으로 김방경(金方慶)을 판어사대사(判御史臺事)에 승진시키고 상주국(上柱國)으로 올렸다.

金方慶墓誌銘』『高麗史 列傳 권제17 

 

3. 작위(爵位) : 신분적 예우와 영지(식읍) 

 

김방경의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5등작(····)의 최고위 등급인 공작(公爵)으로 상락은 그의 본관인 안동(安東)을 상징하는 영지(領地)이다. 보상은 식읍 3,000, 식실봉 300로 식실봉은 단순히 명예를 넘어 해당 가구에서 나오는 조세를 직접 거둘 수 있는 막대한 경제적 기반을 의미한다. 

 

1295년 을미(충렬왕 21) 827,

김방경(金方慶)에게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의 작위(爵位)를 내렸다. 

 

1295년 을미(충렬왕 21) 1203,

상락공(上洛公) 김방경(金方慶)에게 식읍(食邑) 3,000호와 식실봉(食實封) 300를 내렸는데 세자가 청한 것이었다.

高麗史世家 권제31 

김방경의 식읍 기록은 1천호로 답습되어 왔지만, 고려사기록인 세자(충선왕) 청에 의해 내려진 3천호로 기재했다. 

 

고려시대 작위(爵位) 수여도 역시 국왕과 종실, 그리고 국가에 공()이 있는 공신(功臣)들의 보호를 위해 5등작 [((((()]의 작위를 수여해준 제도이다. 고려시대의 봉작제가 정비된 것은 모두 문종 때였으며, 종실에 대한 봉작은 주로 국공(國公)이 주어졌고, 이성제군(異姓諸君)에 대한 봉작은 상락군개국공(上洛郡開國公)과 같이 군작(郡爵)과 현작(顯爵)의 구별이 있었다. 즉 군후(君侯현후(懸侯)와 군백(郡伯현백(縣伯) 및 군남(郡男현남(縣男)의 구별이 있었던 것이다. (高麗史,7731/百官2/) 

 

4. 품계(品階)와 공신호(功臣號) 

 

1282(충렬왕 9), 2차 일본 원정(辛巳再征)에서 돌아온 김방경(金方慶)이 전()을 올려 물러날 것을 간청하자, 추충 정난정원공신 삼중대광 첨의중찬 판전리사사 세자사(推忠靖難定遠功臣三重大匡僉議中贊判典理司事世子師)’로 삼고, 치사하게 하였다. 

 

충선왕(忠宣王)선충 협모 정난정국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宣忠協謨定難靖國功臣壁上三韓三重大匡)으로 추증하고, 시호를 충렬(忠烈)이라고 하였으며, 신도비(神道碑)를 세울 것을 명하였다. 高麗史열전 권제17 

 

삼별초의 난을 진압하고, 일본 원정에서 나라를 편안하게 한 공신으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사후에 받은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은 고려 초기 태조 왕건을 도운 공신들의 초상이 벽에 걸린 것(벽상공신)에 비견되는 최고의 명예직이다. 

 

1273(甲戌) 7월 원()나라에서 삼별초를 진압한 공으로 김방경(金方慶)수태사 개부의동삼사 문하시중(守大師 開府儀同三司 門下侍中)’에 제수하였다.

 수태사(守大師삼사(태사·태보·태부) 중 하나, 최고 원로에게 주는 정1품 명예직.

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 문관 최고 품계(1)의 산계(散階).

 문하시중(門下侍中: 고려 중앙 정부의 수장으로, 원간섭기 첨의중찬으로 개칭. 

 

5. 김방경의 위대한 유산 

 

김방경은 고려시대 관리의 위상을 결정짓는 세 가지 축인 직위(職位), 훈위(勳位), 작위(爵位)의 체계를 모두 거머쥐었고 그에 따른 품계(品階)도 고려 역사상 매우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이러한 직···품계의 결합은 김방경 개인을 넘어 가문의 운명을 바꾸었다. 

 

김방경은 무신정권의 폭압과 몽골의 침략이라는 최악의 시대를 살았지만, 실력[]으로 승부하여 국가의 정책을 결정했고, 충성[]으로 국정 운영의 최고 책임자가 되었으며, 명예[]로 안동김씨 가문을 고려 최정상급의 명문으로 완성했다. 

 

그는 무신정권의 몰락과 원 간섭기라는 격변기 속에서 모두 최고의 경지에 올라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며 고려의 자존심을 지켰고, 이는 후대 왕들에게도 김방경 가문을 중용하는 명분이 되었다. 

 

"문무겸전(文武兼全) 출장입상(出將入相)" 전장에서는 도원수로서 외적을 막고, 조정에서는 첨의중찬(僉議中贊, 侍中)으로서 내정을 다스린 김방경의 삶은 고려 관료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모델이었다.

 

 

댓글목록

김태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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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