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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일고(鶴峯逸稿) - 기묘일기(己卯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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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작성일05-03-24 20:21 조회1,954회 댓글6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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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일고(鶴峯逸稿) 제3권
 
기묘일기(己卯日記) 1월
 
25일(신미)

맑음.
○ 정사(政事)가 있었다. 민정명(閔定命)을 청주 목사(淸州牧使)로 삼았다.
민정명은 거칠고 비루한 데다 무식하였다. 김효원(金孝元)이 전조(銓曹)에 있을 때에는 뜻을 얻지 못하다가, 김효원이 세력을 잃자, 김계휘(金繼輝)에게 빌붙어서 오랫동안 언관(言官)으로 있었다. 삼윤(三尹)이 논핵(論劾)을 당하던 처음에 장령(掌令)으로 있었는데, 공론이 허여하지 않는 것을 알고는 내심 스스로 편치 않아서 마침내 병을 칭탁하고 출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때에 와서 외직에 보임되었다.
김찬(金瓚)을 사헌부 지평으로 삼았다.
김찬은 성품이 온후하고 화평하여 사람들이 착하다고 칭하였다. 이전에 삼윤이 뇌물 받은 일이 도하(都下)에 전파되었으나 사람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는데, 유성룡(柳成龍)이 그러한 실상을 알고 김찬에게 말하였다. 김찬이 부친을 뵈러 여주(驪州)에 갔고, 교리(校理)인 나는 남도(南道)에서 소명(召命)을 받고 오다가 배가 여주에 닿았는데, 이 일에 대해 언급하게 되었다.
나는 성품이 엄하고 곧아서 남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하였다. 이에 입대(入對)하여 당시의 폐정(弊政)을 낱낱이 아뢰면서 탐오한 풍습이 크게 일어나서 선물 꾸러미가 공공연하게 행해짐을 말하였다. 그러자 상께서 누가 그런 짓을 하였는지 물었다. 이에 드디어 이수(李銖)와 이신로(李信老)가 조정의 귀신(貴臣)에게 뇌물을 주었다고 대답하였다. 이튿날 대부(臺府)에서 이수 등을 잡아들이기를 청하였다. 상께서 뇌물 받은 자의 성명을 따져 물으니, 대관(臺官)이 곧바로 지적해 말하기가 곤란하여 모른다는 것으로써 아뢰려고 하였다. 김찬이 그때 지평으로 있으면서 홀로 말하기를, “삼윤이 뇌물을 받은 것은 사람들이 모두 아는 바인데, 어찌 숨길 수 있겠는가.” 하니, 좌우 사람들이 서로 돌아보면서 깜짝 놀랐다. 그러자 김찬도 두려움이 없지 않아서 범범히 ‘조사(朝士)’라고만 말하였다.

댓글목록

김좌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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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사생지교(死生之交)
서애 유성룡 학봉 김성일 눌암 김찬
세분에 대한 관계를 당시에 사생지교라는 표현으로 하고 있다.
선조대왕이 부러워 할 많큼 세분은 우의가 돈독하였다
금란지교로 어려서 부터 동문 수학을 같이 하셨다 한다
학봉은 일본에 사신으로 가셨을 때 자기집에는 편지를 안보냈써도
눌암에게 만은 안부 편지를 보내는 등 특별한 정신적 관계였다
흉금을 털어 놓고 정사를 보살핀 김찬 김성일 유성룡의 관계를
사생지교라 기록하고 있다

김좌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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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눌암 김찬은 아무도 하지 못하는 말을 상 앞에서 서슴없이 하였다 좌우사람들이 서로 돌아 보면서 깜짝 놀랐다. 이런 소신있는 발언에 대해 서애 유성룡은 바람앞에 등불이기를 자처하며 위기를 정면돌파하는 눌암을 극찬하는 기록이 있고 오억령은 전후(임진왜란) 재상은 김찬이다 하였다 그러나 1599년 12월 전후 수습 막판 국면에서 57세의 연세로 갑자기 열병으로 돌아 가셨다. 유성룔이 보내온 뇌사는 글짜 마다 눈물로 얼룩져 있다

김좌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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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눌암 김찬은 어머님의 병환으로 이조판서 예조판서직을 4번이나 그만 두시고 어머님을 모시러 평양에서 부터 달려 왔다. 너무 심하다 하여 탄핵으로 까지 술렁이였으나 선조대왕은 김찬의 마음을 혜아려 진정시키곤 하였다. 그 뜻을 기리어 효헌(孝獻)공 이라는 값진 시호를 받았다.
孝曰(효왈)  慈惠愛親  효도사랑  말함이고
獻曰(헌왈)  嚮忠內德  충성덕목  뜻함이다
문장가로    행정가로  외교가로  경세가로
빼어나신    솜씨있어  평생동안  충효했네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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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훌륭하신 선조님의 좋은 사실을 새로이 알았습니다.감사합니다

김 태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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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좌회교수님의 강의까지 뜻하시니 더 이해가 됩니다.
감사합니다.

김태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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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저씨 저 서울 화곡동 사는 태영입니다
아저씨 한테 대학원에서 증권투자론을 배운지도 10년이 넘었군요
그때 같은 익원공파 문정공(질) 후손임을 이야기 하면서 혁명과 구테타에
대한 말씀 잘 들었고 역사의 철학적 비판이라는 관점에서 문정공 할아버지
와 사육신의 이해관계적 충돌이라는 말씀 감명깊게 들었습니다. 사실에
입각한 역사 비판 평론에 새로운 각을 부각시키시는 아저씨가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