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할아버지 와 김찬할아버지가 한 자리에
페이지 정보
김태서 작성일05-03-24 20:25 조회1,448회 댓글2건본문
성소부부고 제22권
설부 1 說部一
성옹지소록 상 惺翁識小錄上
옥당(玉堂 홍문관의 별칭)에 번(番)드는 일은 누구나 괴롭게 여겨 피하려 들지만, 선왕(先王 선조를 가리킴) 때의 승지 성낙(成洛)은 특히 더 번들기를 거절하였고 번을 들더라도 곧 나가버렸다.
당시에 나의 중형(仲兄)과 판원사(判院事) 김수(金?)ㆍ이조 판서 김찬(金瓚)ㆍ호조 판서 이성중(李誠中)ㆍ완평부원군(完平府院君) 이원익(李元翼)ㆍ좌의정 김응남(金應男)이 함께 옥당에 있었다. 서로 약속하기를,
"성(成)이 번에 들거든 정해진 일수대로 하도록 교대해 주지 말자."
하였다. 이런 약속이 있은 뒤에 성공(成公)이 입직(入直)한 지 겨우 하루 만에 또 나오고자 하여 홍문관의 아전을 매질하는 등 매우 심하게 굴었다. 이에 아전이 여러 집을 다니며 교대할 사람을 알아보았지만 모두들 거절하였다. 남은 사람은 완평(完平)뿐이었으나 번을 막 마치고 나온 터이므로 감히 청하지 못하였다. 일이 급해지자 시험삼아 가서 부탁하니 완평도 처음에는 응하려 들지 않다가 아전이 슬프게 울면서,
"팔순 노모가 추운 옥중에 갇혀 있는데 운명하지나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하였다. 그때 완평도 노모를 모시고 있는 터였으므로 측은하게 생각되어 교대를 허락하였다. 아전은 뛸듯이 밖으로 나와서는 손뼉을 치면서,
"이 교리(李校理)는 참으로 성인(聖人)이다."
하였다. 듣는 이들이 모두 웃었다.
댓글목록
솔내님의 댓글
![]() |
솔내 |
---|---|
작성일 |
아하 그러셨군요...
김항용님의 댓글
![]() |
김항용 |
---|---|
작성일 |
잘 읽었습니다. 몽촌공과 눌암공이 한 자리에 있었군요.
오늘 우리들의 만남과 활동들도 먼 훗날 후손들에 의해 다시 논의되리라 봅니다.
홈의 두 분 난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