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공파 자료(3) 김구덕 졸기(세종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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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5-09 11:44 조회1,504회 댓글0건본문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김구덕(金九德)이 졸(卒)하였다.
--구덕은 본관(本貫)이 안동(安東)이니 상락군(上洛君) 김묘(金昴)의 아들이다. 나이 19세에 진사(進士)·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음직(蔭職)으로 산원(散員)에 보직(補職)되었다. 여러번 사헌 규정(司憲糾正)으로 천전(遷轉)되어 잡단(雜端)과
형조 의랑(刑曹議郞)을 거쳐 나가서 단양(丹陽)·청풍(淸風)·한주(韓州)의 세 군의 군수(郡守)가 되었다. 사헌 중승(司憲中丞)으로
전직되어 지사간(知司諫)으로 옮기고, 또 해주(海州)·광주(廣州)·청주(淸州)의 세 주(州)의 목사(牧使)와 연안 부사(延安府使)와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가 되었다.
--딸이 태종전(太宗殿)으로 뽑혀 들어와 명빈(明嬪)이 되었으므로 동지총제(同知摠制) 한성 부윤(漢城府尹)으로 승진되고,
강원도 관찰사가 되고 들어와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가 되었다. 또 한성윤(漢城尹)으로서 들어와 천추절(千秋節)을
하례하고, 조금 후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졸(卒)하매 조회를 3일 동안 폐하고, 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내리고, 안정(安靖)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화합함을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 것을 안(安)이라 하고, 너그럽고 즐거워하여 고종명(考終命)한 것을 정(靖)이라 한다. 성품이 온량(溫良)하여
사람들을 예(禮)로서 대접하고 평소에 사장(詞章)을 좋아하여 시(詩) 읊기를 폐하지 않았다.
-아들은 김오문(金五文)이었다.
≪출전 : 세종실록 39권 세종10년 3월10(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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