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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얼빈일기 13---백두산 답사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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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6-10 22:06 조회1,449회 댓글8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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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6월 6일 (월)


새벽 5시반 여관 출발. 찐빵과 만두 10개씩을 사가지고 연길버스터미널에 도착. 06:30분 이도백하 가는 버스에 올랐다. 가는 길은 백두산 산맥 언저리를 왼편으로 끼고 돌면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비포장 도로로 덜컹덜컹하기는 했지만 그리 험하지도 않고 굽이굽이 정다운 산길이었다. 오랜만에 산골 풍경을 감상하기에는 아주 제격이었다.


모내기가 막 끝난 들판에는 막바지 모내기 하는 사람들의 무리무리가 몇 번이나 스쳐 지나갔다. 소는 방목하는지 코뚜레도 걸지 않은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데, 5시간 가는 동안 계속 나타났다. 몇 차례나 버스가는 앞을 막는 바람에 버스 운전사가 브레이크를 밟았다 놓았다 조심스러워 했다. 큰 소 한 마리에 한국돈으로 삼사십만원, 송아지 오육만원 정도라고 했다. 가는 길에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전투 유적지가 인근에 있음을 알고 있었으나 확인하지는 못했다. 용정, 팔가자, 송강을 거쳐 5시간 걸려 11:20분 이도백하에 도착했다.


백두산 아래 고장인 이도백하鎭(우리나라 읍면 정도)은 인구 6만으로 조선족은 3%밖에 안 된다고 했다. 열차의 종착역인 백하역은 4km 정도 떨어져 있다고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찦차꾼(삐끼 라고 부름)들이 한 무더기 달려들어 흥정이 시작되었다. 거의 1시간 넘게 지리하게 흥정을 벌이고 나서 찦차 두 대에 나누어 타고 13:40분 백두산으로 향했다. 백두산 오르는 길은 생각과는 달리 평탄하고 아름다운 길이었다. 중간중간 길 옆에는 벌통 무더기가 자주 보이고, 곧게 뻗은 길 끝자락 하늘 위에는 잔설 덮인 백두의 위용이 나타났다 사라지곤 하였다.


백두산 입구 산문에서 입장권(1인 60원)을 끊고 장백폭포 아래까지 올라가서 먼저 숙소를 찾아나섰다. 호텔이나 산장은 너무 비싸서 얼씬도 못하고, 관공서 건물 하나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샤워는 안 되고 잠만 잘 수 있는 방으로 1인당 50원에 예약해 버렸다. (인근에 온천탕 딸린 여관은 1인당 100원). 장백폭포가 바로 앞에 올려다 보이는 전망이 아주 좋은 곳이었다. 백두의 하룻밤과 새벽을 느끼기에는 안성마춤이었다.


장백폭포 매표소 바로 아래에서 찦차 두 대를 돌려 보내고, 입장권을 또 끊고 나서(1인 40원) 장백폭포를 올려다 보면서 오르기 시작했다. 노천 온천에 김이 무럭무럭 오르는데 온천물에 삶은 계란을 팔고 있어 그냥 지나칠수 없었다. 흘러 내릴듯 반숙되어 후루룩 마셔 버렸는데 아주 부드러웠다.(한국 돈도 받고 있음, 1000원에 3개). 


장백폭포는 68m라 하는데, 떨어지는 물소리가 온 산을 흔들어대는 듯 장쾌하였다. 백두산은 300년전에 화산분출이 멈춘 사화산이라 하는데, 주위를 압도하는 봉우리의 돌들이 쓸어내릴 듯 수직에 가까운데, 실제로 장백폭포 옆으로 오르는 천지가는 길은 시멘트로 지하통로 비슷하게 만들어 놓았고, 그 위로 쏟아져 내린 돌 무더기들이 가득 쌓여 있었다.


장백폭포를 넘어서자 드디어 천지가 저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TV나 책자에서 수없이 보아오던 그 시리도록 파란 호수가 아니었다. 멀리서 보아도 얼음위에 눈이 덮여 있는 회색빛이었다. 백두 정상은 이제 눈이 녹기 시작하는지 천지 물가까지 20여분 가까이 가는 동안에 군데군데 질퍽질퍽해서 건너뛰기를 수없이 해야만 했다. 하늘에는 구름도 잔뜩 끼어서 시야가 밝지 못했고, 바람이 어찌나 세게 몰아치는지 우정이 날아갈까봐 자주 살펴보아야 했다. 배낭에 넣어온 겨울파카 옷을 꺼내 아내와 아이둘을 입혔으나 그래도 덜덜 떨고 있었다.


드디어 천지에 도착했다. 호수는 아직도 얼음과 잔설이 완전히 덮고 있다. 7월 중순은 되어야 그 파아란 천지를 볼수 있다고 한다. 캠코더와 디카를 수없이 찍어 대고 나서도 돌아설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모두들 덜덜 떨면서도 발길을 되돌리기 쉽지 않다. 어떻게 여기까지 온 길인데.....


백두산은 중국에서는 장백산이라 부르는데, 1597년, 1668년, 1702년 화산 분출이 있었고 현재는 사화산이라 한다. 천지 호수의 1/3은 중국 영토라고 하고, 남북 5km, 동서 3.5km, 둘레 13km, 평균수심 200m, 가장 깊은 곳은 373m. 송화강(하얼빈 시내를 흐르는 강)의 발원지라고 한다. 천지 둘레로 16봉우리가 서 있는데, 최고봉은 백암봉(북한 장군봉)으로 2,749m(한국 교과서에는 2,744m)라고 하고, 중국쪽에서는 찦차 타고 1시간 가량 올라가(걸어서는 한 나절 걸림, 요즘에는 도보 불허) 천문봉(2,679m)에서 천지를 저 아래로 내려다 볼수 있다고 한다.


천지 물가에 일단의 사람들이 군용 천막 2개를 쳐 놓고 컵라면 등을 팔고 있었다. 추위에 덜덜 떠는 아이 둘을 아내와 함께 컵라면 2개를 사서 천막에 들여 보내 언 몸을 녹이도록 했다. 그 사이에 천지 상공의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단체사진을 여러번 찍어댔다. 시간은 흐르고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 하고 우리 일행은 하산하기 시작했다.


장백폭포를 내려서자 이미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오늘은 시간에 쫓기느라 아침 점심을 다 거른 상태였다. 조선족(심양 거주, 선대고향 대구)이 운영한다는 식당에 들어가 밑반찬 8가지를 곁들인 된장찌개로 포식을 했다. TV에서는 위성으로 받아 보는 한국TV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오늘은 현충일이자 월요일로 이틀연휴 귀경차량으로 상행선 교통정체 장면이 계속 비치고 있었다.


숙소로 이동했다. 내일은 10시반 출발예정이어서 내일아침까지 자유시간을 갖도록 하고 오늘 일정을 마무리했다. 일부는 잠자리에 일찍 들고, 한팀은 고스돕에 빠져들고, 몇몇은 1층 로비에서 위성으로 받아보는 한국TV를 보았다. 현충일이라 그런지 가요무대에서는 흘러간 군대 노래가 계속 흘러 나왔다. 이곳 백두산은 중국쪽 자락도 완전히 한국풍이다. 관광객 대부분이 한국인이고, 한국 돈도 통용되고 있다. 한국TV도 실시간으로 볼수 있는 곳이다. 물론 PC방도 있다.


이곳 백두산에는 다른 어느 곳보다도 선인들의 발자취가 가득할테고, 우리 가문 선조님들의 흔적도 많았을텐데 미리 자료준비를 하지 못해서 이곳에 서린 영광과 애환을 느끼지 못하고 그저 경치만 훓어보는 답사가 되고 말았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에 있을때 ‘조선시대 선비들의 백두산 답사기’ 등 선인들의 답사기록이나 최남선의 ‘백두 예찬’ 등 근세 명인들의 답사 기록을 보아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워하면서, 백두에서의 하룻밤을 날밤으로 새우려고 생각하다가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댓글목록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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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백두산 등정기 잘 읽어습니다. 아직도 눈과 얼음이 있고 그렇게 춥다니---
백두산을 갈 때는 최남선의 <백두산 근참기>는 꼭 챙겨 가겠습니다.
다음 일정이 궁금합니다.

김발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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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잘 보았습니다. 전에 적어 주셨던 전화번호가 통화가 되지 않습니다.
혹 게시가 불편하시면 <a href=mailto:altro@naver.com>altro@naver.com</a> 으로 알려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몇 차례 통화 시도 했으나 실패 하였습니다.

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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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백두산 답사기 잘 읽었습니다.다음 일정이 궁금합니다.

김좌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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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주회님, 잘 보고 있습니다.
줄거운 경험입니다
옛날에 알려 준 메일로 편지를 보냈더니 반송이 오는 군요

김정중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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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대부님~! 저는 천지도 모르는 사람이
천지에 가서
너무도 청명한 천지를 보고 왔습니다. 쉬엄쉬엄 올려주세요 ㅎㅎㅎ

솔내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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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백두산 등정기 잘보았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하시는 여행 보면 부럽기만 합니다.
부디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은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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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아우님  반갑습니다.
몸 건강 하시길 기원합니다.

김용주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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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백두산 등정기 잘보았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