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공파자료(22)명빈-11-왕조실록 세종4-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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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내영환` 작성일05-06-22 12:40 조회1,680회 댓글1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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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016 04/04/04(경인) / 신녕 궁주가 천달방 신궁으로 옮기다
원경 왕후(元敬王后)가 돌아간 뒤, 의빈(懿嬪)과 명빈(明嬪)이 있으나, 신녕 궁주(愼寧宮主)가 항상 궁안 일을 주장하였다. 태상이 장차 천달방(泉達坊) 신궁으로 나가겠다 하므로, 궁주(宮主)가 먼저 연화방(蓮花坊) 신궁에서 <천달방 신궁으로> 옮겨 갔다.
【원전】 2 집 478 면
【분류】 *왕실-비빈(妃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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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016 04/05/13(기사) / 예조에서 상제를 정하여 아뢰다
예조에서 상제(喪制)를 정하여 아뢰기를,
“임금은 참최복(斬衰服)을 입는데, 그 제도는 《문공가례(文公家禮)》를 쓰고, 여러 왕자들도 그와 같게 한다. 졸곡(卒哭) 후에는 권도로 상복(喪服)을 벗고 흰옷에 검정 사모와 검정 각대로 정사를 보고, 삭망(朔望)과 별제(別祭) 기타 상사에 관계되는 일에는 모두 최복을 입는다. 1년을 지나 소상(小祥)에는 연복(練服)을 입고, 2년을 지나 대상(大祥)에는 담복(服)을 입고, 27일에는 담복을 벗고 길복(吉服)을 입는다. 공비전(恭妃殿)도 또한 참최복을 입으며, 성비전(誠妃殿)과 궁주(宮主)·옹주(翁主)는 재최(齊衰)로 3년이요, 의빈(懿嬪)·명빈(明嬪)·궁주·공주·옹주는 모두 참최를 입고, 각전 시녀(侍女)도 이와 같다. 환관(宦官)은 참최 원령(圓領)과 생포건(生布巾)에 생마대(生麻帶)를 띠고, 왕세자는 참최로 3년이요, 문무 여러 관원들도 참최복을 입는데, 큰 소매 원령[大袖圓領]에 베로 싼 사모, 생마대, 흰 신을 신고, 졸곡 뒤에는 상사에 관계된 이외에는 흰옷과 검정 사모, 검정 각대로 3년을 난다. 무관(武官) 가운데 삼군 갑사(三軍甲士)는 사흘 후에 복을 벗고, 빈전(殯殿)·국장(國葬)·산릉(山陵) 세 도감(都監) 내에서 전직으로 여러 품질을 지낸 사람과 행수(行首)·견룡(牽龍)의 상복은 백관과 같고, 내시(內侍)·다방(茶房) 가운데 실제 직무가 있는 전직 여러 품질을 지낸 사람과 여러 부(府)의 지인(知印)·서제(書題)·급사(給事)는 흰옷과 흰 베로 싼 사모, 생마대·흰 신을 신고, 의정부·육조·삼군 녹사(三軍錄事)와 가각고(架閣庫)의 녹사·선차방(宣差房)의 지인(知印)·각사의 아전들은 흰옷에 흰 베로 싼 평정건(平頂巾)·백화(白靴)·백립으로 3년을 마치고, 전직 2품 이상은 흰옷과 흰 베로 싼 사모와 마대·백화를 신고, 졸곡 후부터 백의·백립·흑각대로 3년을 마친다. 서울과 지방의 전직 각급 품관(品官)은 흰옷에 흰 베로 싼 갓과 흰 띠·흰 신을 신고, 졸곡 뒤부터 백의·백립·흑대로 3년을 마치고, 생원(生員)·생도(生徒)들의 복도 이와 같다. 서울이나 지방의 서인(庶人)의 남녀와 승도들도 백의·백립·백대를 하였다가 사흘 뒤에 복을 벗는데, 졸곡전에는 붉은 옷과 자주 옷을 금하고, 조례(隸)와 소유(所由)·갈도(喝道)·장수(杖首)·나장(螺匠)들도 백포 두건에 백의·백대를 하고, 졸곡 뒤에 흑두건·백의·흑대를 한다. 여러 도의 사신(使臣)과 수령(守令)들은 부고 들은 지 6일째 되는 날에 성복하는데, 이른 새벽에 향안(香案)을 공청(公廳)에 차려 놓고 평상시에 입던 옷을 벗고 참최(斬衰)를 입고 들어와 자리에 나아가 사배하고 슬피 곡하고, 사배하고 물러 선다. 임소를 떠나 대궐에 오지는 못하나, 사람을 보내여 전(箋)을 올려 진위(陳慰)할 것을 허락하되, 올라오는 길에는 곡하지 아니한다. 종묘서(宗廟署) 관원이나 문소전(文昭殿)·계성전(啓聖殿)의 전직(殿直)은 묘전(廟殿) 안에 있을 때에는 평상시의 복장을 하고, 나오면 백의(白衣)를 입고, 원경 왕후(元敬王后)의 수릉관(守陵官)과 수릉 환관(守陵宦官)은 백관의 예에 의한다.”
라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2 집 482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의생활-예복(禮服) / *역사-고사(故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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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019 05/02/10(신유) / 대궐안에서 신부를 차고 다닐 사람의 수효를 정하다
대궐 안에서 신부(信符)를 차고 다닐 사람의 수효는 대전 좌우번(大殿左右番)과 반감(飯監)까지 합하여 6명, 별감(別監) 40명, 소친시(小親侍) 12명, 세수간 별감(洗手間別監) 4명, 수사간 별감(水賜間別監) 4명, 부조포 세답(扶助布洗踏) 2명, 북병 세답(北甁洗踏) 2명, 수공(水工) 2명, 성상(城上) 2명, 파지(巴只) 4명, 등촉(燈燭) 2명, 별사옹(別司饔) 14명, 성상(城上) 2명, 사옹방 수공(司饔房水工) 6명, 수소 성상(修掃城上) 2명, 탕수 탁반(湯水托飯) 4명, 상배색(床排色) 8명, 채증색(菜蒸色)이 6명, 탕수증색(湯水蒸色) 10명, 장자색(藏子色) 6명, 구색(灸色) 6명, 반공(飯工) 10명, 주색(酒色) 6명, 미모(米母) 6명, 병공(餠工) 2명, 포장(泡匠) 4명, 은기 성상(銀器城上) 4명, 부수라 성상(副水剌城上) 6명, 고 성상(庫城上) 2명, 별고 성상(別庫城上) 2명, 외방 성상(外房城上) 2명, 약방 사령(藥房使令) 4명, 소방 성상(小房城上) 4명, 방직(房直) 4명, 내시부 성상(內侍府城上) 4명, 방직 2명, 재추청 성상(宰樞廳城上) 6명, 방직(房直) 4명, 수공(水工) 2명, 상서사 성상(尙瑞司城上) 4명, 승정원 성상(承政院城上) 4명, 방직 2명, 경연 성상(經筵城上) 2명, 방직 2명, 향실 성상(香室城上) 2명, 역삭 사령(役朔使令) 2명, 사금 성상(司禁城上) 2명, 내금·내시위 성상(內禁內侍城上) 4명, 방직 4명, 별시위 성상(別侍城上) 2명, 충의위 성상(忠義城上) 2명, 방직 2명, 승전색 방직(承傳色房直) 2명, 사약 방직(司房直) 2명, 별감 방직(別監房直) 2명, 의서 방직(醫書房直) 2명, 서방색 방직(書房色房直) 1명, 상소(上所) 2명, 인장(茵匠) 10명, 장자장(障子匠) 10명, 교부(膠父) 2명, 비로장(非老匠) 2명, 조라치[照剌赤] 20명, 수소 성상(修掃城上) 2명, 금루 사령(禁漏使令) 4명, 내시원초(內侍院抄) 72명, 다방 은기직(茶房銀器直) 2명, 공비전 별감(恭妃殿別監)의 좌우번 12명, 소친시(小親侍) 좌우번 8명, 반감 좌우(飯監左右) 8명, 의대 세답비(衣洗踏婢) 2명, 세수간 세답(洗手間洗踏) 2명, 등촉(燈燭) 2명, 별사옹(別司饔) 6명, 성상 2명, 수공(水工) 4명, 탕수 수공(湯水水工) 2명, 증색(蒸色) 4명, 장자색(藏子色) 4명, 구색(灸色) 4명, 채색(菜色) 4명, 채증색(菜蒸色) 4명, 반공(飯工) 4명, 주색(酒色) 4명, 진상 미모(進上米母) 1명, 미모 4명, 병모(餠母) 1명, 포장(泡匠) 좌우 2명, 은기 성상(銀器城上) 좌우 4명, 부수라 성상(副水剌城上) 좌우 4명, 고 성상(庫城上) 좌우 2명, 외방 성상(外房城上) 좌우 4명, 내시부 성상(內侍府城上) 좌우 2명, 방직 좌우 2명, 승전색 방직(承傳色房直) 좌우 2명, 속고치 방직[速古赤房直] 좌우 2명, 사약 방직(司房直) 좌우 2명, 별감 방직(別監房直) 좌우 2명, 수소 성상(修掃城上) 좌우 2명, 사장비(絲匠婢) 1명, 비로장(非老匠) 좌우 2명, 세자전 은기 성상(世子殿銀器城上) 좌우 2명, 수사간 별감(水賜間別監) 좌우 4명, 의빈전 별감(懿嬪殿別監) 좌우 4명, 소친시(小親侍) 좌우 4명, 별사옹(別司饔) 좌우 4명, 성상(城上) 좌우 2명, 탕수증색(湯水蒸色) 좌우 6명, 채증장자색(菜蒸藏子色) 좌우 4명, 구색(灸色) 좌우 2명, 상색(床色) 좌우 2명, 반공(飯工) 좌우 6명, 주방(酒房) 좌우 4명, 진상미모(進上米母) 1명, 병모(餠母) 1명, 포장(泡匠) 좌우 2명, 세수간 수모(洗水間水母) 1명, 파지(巴只) 2명, 미모(米母) 좌우 2명, 은기 성상(銀器城上) 좌우 4명, 부수라 성상(副水剌城上) 좌우 4명, 고 성상(庫城上) 좌우 2명, 탕수공(湯水工) 좌우 2명, 수공(水工) 좌우 4명, 장방직 겸 등촉(長房直兼燈燭) 좌우 2명, 수소 성상(修掃城上) 좌우 2명, 별감 방직(別監房直) 좌우 2명, 조라치(照剌赤) 좌우 8명, 비로장(非老匠) 좌우 2명, 명빈전 직노(明嬪殿直奴)가 4명으로서 총계하면, 대전(大殿)의 3백 88인 중에 남자 종이 3백 76명이고, 여자 종이 12명이며, 공비전(恭妃殿)의 1백 19명 중에 남자 종이 1백 4명이고, 여자 종이 15명이며, 의빈전(懿嬪殿)의 83명 중에 남자 종이 74명이고, 여자 종이 9명이다.
【원전】 2 집 525 면
【분류】 *사법-치안(治安) / *군사-병참(兵站) / *신분(身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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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032 08/04/09(임신) / 거짓으로 명빈궁 시녀 장미를 출궁케 한 수강궁 환자 임장수를 참형에서 1등 감하다
수강궁(壽康宮)의 환자(宦者) 임장수(林長守)가 왕의 교지라고 거짓으로 전하여, 명빈궁(明嬪宮)의 시녀(侍女) 장미(薔薇)를 밖으로 나가게 하였으므로, 그 죄가 참형에 해당되나, 명하여 1등을 감형하게 하였다.
【원전】 3 집 18 면
【분류】 *사법-탄핵(彈劾) / *왕실-궁관(宮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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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039 10/03/10(임진) / 판돈녕부사 김구덕의 졸기
판돈녕부사(判敦寧府事) 김구덕(金九德)이 졸(卒)하였다. 구덕은 본관(本貫)이 안동(安東)이니 상락군(上洛君) 김묘(金昴)의 아들이다. 나이 19세에 진사(進士)·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음직(蔭職)으로 산원(散員)에 보직(補職)되었다. 여러 번 사헌 규정(司憲糾正)으로 천전(遷轉)되어 잡단(雜端)과 형조 의랑(刑曹議郞)을 거쳐 나가서 단양(丹陽)·청풍(淸風)·한주(韓州)의 세 군의 군수(郡守)가 되었다. 사헌 중승(司憲中丞)으로 전직되어 지사간(知司諫)으로 옮기고, 또 해주(海州)·광주(廣州)·청주(淸州)의 세 주(州)의 목사(牧使)와 연안 부사(延安府使)와 판통례문사(判通禮門事)가 되었다. 딸이 태종전(太宗殿)으로 뽑혀 들어와 명빈(明嬪)이 되었으므로 동지총제(同知摠制) 한성부 윤(漢城府尹)으로 승진되고, 강원도 관찰사가 되고 들어와서 참지의정부사(參知議政府事)가 되었다. 또 한성윤(漢城尹)으로서 들어와 천추절(千秋節)을 하례하고, 조금 후에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가 되었다. 졸(卒)하매 조회를 3일 동안 폐하고, 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내리고, 안정(安靖)이란 시호(諡號)를 내렸으니, 화합함을 좋아하여 다투지 않는 것을 안(安)이라 하고, 너그럽고 즐거워하여 고종명(考終命)한 것을 정(靖)이라 한다. 성품이 온량(溫良)하여 사람들을 예(禮)로서 대접하고 평소에 사장(詞章)을 좋아하여 시(詩) 읊기를 폐하지 않았다. 아들은 김오문(金五文)이었다.
【원전】 3 집 120 면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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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040 10/06/06(정해) / 사당을 헐고 집을 판 조영무의 아들들을 국문하는 것에 대해 의논하다
임금이 근신들에게 말하기를,
“조영무(趙英茂)가 집을 세우고 사당을 지은 것은 그것을 후세에 전하고자 한 것이다. 자손들이 그 뜻을 돌아보지 않고 갑자기 사당을 헐고 집을 팔았으니, 어찌 인정(人情)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일찍이 집을 팔고자 하나 사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까닭에 명빈전(明嬪殿)에 인연하여 드디어 판 것이다. 그 마음이 상인(常人)에게 팔면 반드시 까닭없이 집을 판 죄가 있을 것이나, 명빈에게 판다면 사람들이 이러쿵 저러쿵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니, 그 마음 먹음이 또한 참혹하지 아니한가. 이미 판 뒤에 내가 알았는데, 지금 조질(趙秩)이 명빈전(明嬪殿)에 말하기를, ‘임금께서도 이미 아십니다. 그러니 사십시오.’라고 하였다 하니, 그 왕래하면서 말을 통한 자도 아울러 국문하라.”
하니, 의금부에서 계하기를,
“조질(趙秩)·조이(趙理) 등이 어머 조서(趙)도 또한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청컨대 강씨(康氏)와 서()를 대질(對質)하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우선 강씨는 수금하지 말고 다만 서()만을 수금하여 국문하면 그 정상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원전】 3 집 133 면
【분류】 *윤리(倫理) / *사법-재판(裁判) / *가족(家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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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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