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일기 23---요동땅 답사기 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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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7-25 11:30 조회1,809회 댓글2건본문
2005년 7월 20일 (수)
1) 대련에서
오늘은 하얼빈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3일동안 너무 강행군을 해서 일행이 모두 녹초가 되어 있어 오늘은 쉬다가 돌아가기로 했다. 호텔에서 10시 다 되어 짐을 챙겨 나왔다. 대학 교정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으나 대학다운 대학이 없어서 대신 인민광장에 가서 쉬면서 대련시청사를 구경하기로 했다. 택시를 타고 인민광장에 도착했다.
인민광장 주위에는 대련시청사, 법원청사, 공안국청사가 둘러 있어 볼만했으나 나무그늘이 없어 쉴 곳이 없었다. 사진을 찍고 두리번 거리는데 2층버스가 지나다니고 있었다. 아이 둘이 어제부터 2층버스 타령을 했었는데 마침 잘 되었다. 올라타 버스 2층으로 올라갔다.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 보는 거리의 풍경이 조금은 색달랐다. 아이 둘이 좋아하는 것을 보니 나도 좋아졌다.
어제 저녁 들렸던 성해광장이 종점이었다. 할수없이 내려서는데 코끼리 청룡열차가 다니고 있었다. 올라탔다. 드넓은 성해광장을 반바퀴 돌아 해안가에 내렸다. 아침을 거른 상태였으므로 포장마차 비슷한 곳에 들어가 양고기꼬치구이와 오징어구이를 번갈아 시켰다. 매콤한 맛이 우리 입맛에도 딱이었다. 서너번 연거푸 먹다보니 1시간 이상 죽치고 앉아 있었다.
이제 시간은 다 되고 택시를 잡아 타고 대련역에 배달을 부탁했다. 고향가는 기분이 새록새록 나기 시작했다. 대련역 인근 한국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1시 45분 하얼빈가는 기차에 올랐다. 15시간을 지나 내일 새벽 5시에는 하얼빈역에 도착하게 되는 것이다.
2) 요동벌판을 남에서 북으로 지나며
날씨는 매우 무더웠고, 기차 안은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열어 놓고, 남자들은 대부분 웃통을 다 벗어 버리고 있었고, 여자들도 부채를 부쳐대고 있었다. 우리도 3층에 짐을 올려 놓고 자리 잡느라 한참을 부산거렸다.
침대칸마다 먹을 것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하긴 15시간을 가야 하니 한두끼 식사는 기차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피곤해서 인지 금새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3시간이 지나 있었다. 서둘러 일어났다. 요동벌판을 보아야 했기 때문이다. 요양 지났느냐고 물어보니 아직 안 왔다고 했다. 다행이었다. 기찻간에서나마 요양을 보고자 했기 때문이다.
대련에서 출발할 때는 산이 있었으나 이제는 완전히 벌판이다. 요동벌판의 한복판에 들어온 것이다. 조선시대 사행길에는 동에서 서로 요동벌판을 횡단했으나 내가 탄 대련발 하얼빈행 열차는 남에서 북으로 요동벌판을 횡단하고 있는 것이다.
복도 옆 창문가에 자리를 잡고 시선을 요동벌판에 박아 놓고 2시간을 달렸다. 끝이 보이지 않은 벌판에 온통 옥수수밭이었다. 요동벌판을 지나는 두세시간 동안 계속 옥수수밭이었다. 그 많은 옥수수를 누가 다 먹는지? 요양에 가까워오자 잠시 논이 나타나고 벼가 푸릇푸릇 자라고 있었다. 요양을 지나자 다시 옥수수 천지. 요양 심양까지 논농사가 이루어진 것은 혹시 고려,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의 이곳 진출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혼자 생각해 보았다.
드디어 요양역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요양동역까지도 벌판이 계속되고 있었다. 인가도 드문드문 나타났으나 요양시 동쪽 외곽을 지나는 길 같았다. 어둠이 내리면서 마치 뽀오얀 연두색 탁구공 같은 지는 해가 저만치 상공에서 계속 따라오고 있었다. 시선을 창밖에 두고 갖가지 생각에 빠져 들었다. 이곳 요양은 당나라 고구려시대 때부터 교통의 요충지, 군대 주둔지 였고, 원나라 시대에도 요양행성이 설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고려의 왕족들이 심양왕이 되어 이 일대를 통치하던 중심지였다. 충렬공 김방경 할아버지께서 한때 머무르셨던 곳은 어디쯤인지? 김흔 장군이 주둔했던 요양행성은? 고려시대 심양왕이 살던 곳은? 이때 김영돈 김영후 할아버지는 어디에서? 현재의 요양은 바로 위 심양에 밀려 낙후되었지만 그래도 중국 동북방에서 5대도시 안에 드는 곳이다. (하얼빈, 장춘, 심양, 요양, )
우정이는 그새 같은 또래의 조선족 친구들을 사귀어서 잠도 안 자고 기찻간을 누비고 다녔다. 밤이 깊어가면서 침대칸 3층으로 기어 올라갔다. 어릴때 꿈 한가지가 떠올랐다. 시골 단층초가집 한방에 온 가족이 섞여 살 때 어린 마음에 2층집 2층에 단 한평이라도 나만의 공간이 있었으면 하던 그당시는 간절했던 꿈이 있었다. 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이지만, 지금 이렇게 그것도 1층을 서비스해서 3층에 나만의 보금자리가 생긴 것이다. 비록 침대칸이고 15시간짜리이지만. 잠시나마 행복감에 젖어 들었다가 잠결에...
2005년 7월 21일 (목)
1)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
누군가 깨우는 소리에 눈을 떠보니 하얼빈역에 다 와 간다고 기차표를 검사하는 검표원이었다. 어제 오후 1시 45분 대련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15시간만에 새벽 5시 하얼빈역에 도착한 것이다.
역에 내려 빠져 나오니 새벽비가 제법 내리고 있었다. 서늘하도록 시원한 하얼빈의 새벽이었다. 택시를 잡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들을 해대고 아침밥을 짓고 밀린 빨래를 빨아대고 한시간 사이에 대청소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짐을 정리해 제자리에 갖다 놓고 난 다음 답사기를 쓰려고 생각하다가 침대에 앉는가 했는데 이내 잠이 쏟아졌다.
저녁에 한국에서 유학생 둘이(금오공대1, 서울대1) 새로 왔다고 우리 집을 방문했다. 남아 있는 한국 유학생들과 함께 시내 하얼빈공대 앞까지 택시를 타고 가서 양고기꼬치구이, 소고기꼬치구이, 돼지갈비구이, 닭날개구이, 샌드위치 구운 것, 중국 수제비에 하얼빈 맥주 한두잔을 곁들여 간단한 환영연을 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쓸어지듯 잠이 들었다.
댓글목록
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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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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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항상 몸건강하시고 뜻 하신을 이루십시요.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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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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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련, 요양의 유적지 탐방기 잘 읽었습니다. 몸 관리 잘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