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락과 음수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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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발용 작성일05-08-03 23:51 조회1,414회 댓글2건본문
일전에 항용종친께서 소개하셨던 시조모임 한가락의 음수재 방문행사 전문을 옮겨 보았습니다.
한가락과 음수재(1)
작성자 : 김항용
지난 2004년 12월 5일(일). 한가락회(회장 斗皐 洪鳳性)는 우리의 중시조님이 모셔져 있는 경북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의 충렬공 묘소 및 음수재를 참배하고 한시 및 시조 창작대회(제 177회)를 가졌다고 한다. 이 한가락회는 우리나라 방방곡곡에 산재해 있는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며 민족정신을 되새김과 동시에 탐방기 기술과 함께 현지에서 느낀 감회를 한시 또는 시조로 창작하여 기념물로 남기는 것을 취미로 삼는 모임이라고 한다. 참으로 놀랍고 존경해 마지않는 모임이었다.
이때 참가하신 한가락회 23명 가운데에는 우리 문중 원로이신 전 문영공 종회장님이셨던 容大(익)님께서 함께하고 계셨다. 이날 현 대종회부회장님이신 명회부회장님께서 동행하셨는데 일행은 서울을 출발, 충렬공의 묘소를 참배하고 음수재에서 충렬공의 정신과 업적을 되새겨 본 후 현지에서 한시와 시조를 짓고 서울로 돌아 왔다고 한다, 이날의 탐방기와 창작시들이 한가락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책자 <열다섯 번째 시조모음 한가락>(한가락 모임 엮음. 다운샘 출판. 2005. 4. 29) 속에 실려 있다.
음수재(飮水齋)에서
온 : 일흔일곱 번째 한가락 모임
때 : 4337(2004)년 12월 5일, 일요일, 맑음
곳 : 음수재(飮水齋) -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
어제까지 추적거리고 내리던 비가 오늘은 개고 바람이 겨울 날씨 답지 않게 상쾌하게 불어온다. 이른 아침 6시에 집을 나서니 사방이 컴컴하다. 오늘은 한가락 역사탐방 제177회, 경북 안동시 녹전면 죽송리에 있는 여말(麗末) 충신 김방경 장군을 모시는 음수재(飮水齋)를 찾아가는 날이다. 김방경 장군은 동천서숙(東天書塾)에서 중관 선생님께 함께 한시를 수학하는 서원의 중시조 이기도 하다. 7시 15분 사당을 출발하니, 오늘 참석 인원은 선생님을 위시하여 안동김씨 대종회 부회장 김명회씨, 매현, 신갑주씨, 이한국씨, 갑고, 예주, 서봉, 세화, 손원장, 삼우당, 노산당, 서원, 임봉훈씨, 오외수씨, 석초, 이흥섭씨, 설전, 이한락씨, 고룡, 문화타임즈 강국장과 김현배씨, 필자 등 23명이다. 차안은 무두들 조용하다. 밖을 보니 해가 아직 뜨지 않아 부옇고, 나무들은 잎을 떨구고 조용히 겨울채비를 끝냈다. 차는 서울 나들목을 빠져나와 신갈 입체 교차로를 거쳐 용인 휴게소에 들렀다. 아침을 미처 들지 못하고 나온 회원들에게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게 하기위해서이다. 아침들을 해결하고 다시 용인을 출발하며 고룡 회장이 오늘 행사에 대한 안내와 이어서 문중의 인사 말씀이 있었다. 이어 고룡의 해설로 회동인물총기 중 신현 선생이 명에 들어가 명의 천자와 문답하는 내용의 강의가 있었다. 고룡 강의에 이어 노산당의 한시 감상시간, 기녀(妓女) 우돌(旴咄)의 한시(漢詩) 해설이 있었다. 한시 공부가 끝나고 밖을 내다보니 잎 떨어진 나무 앙상한 가지 위에 까치집이 오똑이 얹혀있고 한 해 동안 곡식을 길러낸 전답들이 가을걷이를 마치고 한가로이 누워있다. 이어 갑고님이 노산당이 해설한 우돌의 한시를 언제 들어도 청아한 소리로 창해 주셨다. 차는 영동 고속도로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접어들었다. 특히 다리와 터널이 많은 중앙고속도로는 치악 터널을 지나자 상하행선이 서로 멀리 보면서 달리게 되는 구간에 들어서자 봄 ․ 여름 ․ 가을 ․ 겨울 언제 보아도 좋은 경치가 펼쳐진다. 단양호수를 지나자 멀리서 중앙선 선로 위를 열차가 정겹게 지나간다. 영남의 관문 영주를 지나고 열시 조금 지나 서안동 나들목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 나아가니 왼쪽으로 안동 과학대학이 보이고 장, 권, 김 삼태사 묘단소입구사거리를 지나 송현 오거리에 이르렀다. 오거리를 오른쪽으로 돌아 낙동강변 영호루를 건너다보면서 안동역 앞 삼거리에 이르르니 문중 김동수씨가 나와 맞아 준다. 문중 김동수씨 안내로 치암 고택을 지나고 구성 삼거리 상락군충열공신도비(上洛君忠烈公神道碑)라고 새겨진 비석(碑石)을 감싸 안치한 비각 앞에 섰다. 신도비(神道碑)를 돌아보고 마을 앞으로 난 작은 길을 거쳐 산속으로 난 길을 들어가다 보니 아스팔트 길이 나타나고 멀리 조선 기와집군이 보인다. 다가가 보니 오늘의 목적지 음수재(飮水齋)다. 재실 쳪으로 돌계단이 있는데 따라 올라 보니 돌 축대위에 고려식 방분(方墳)이 있는데 거북 대좌(臺座)위에 이수(螭首)를 얹은 비석에 ‘고려 추충 정란 정원 공신 벽상 삼한 삼중 대광 첨의 중찬 세자사 상락군 개국공 시 충열 김방경지묘(高麗推忠靖難定遠功臣壁上三韓三中大匡僉議中贊世子師上洛君開國公諡忠烈金方慶之墓)’라 새겨져 있다. 묘소앞 양편에 문인석이 있고 묘소는 실존하였다가 후에 광산김씨 묘소를 조성할 때 땅속에서 지석(誌石)이 발견되어 보전하였다고 한다. 우리 회원들은 공의 묘소 앞에 정열하여 참배를 하고 내려와 음수재뒤에 있는 사당에 들려 예를 올렸다. 사당 안에는 공의 영정(影禎)이 관복과 장군복의 모습으로 모셔져 있다. 우리는 이어 재실(齋室)로 돌아와 문중 분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고 문중 부회장 김명회씨로부터 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공은 여기에서 서쪽으로 100여리 떨어진 통사읍 회곡동에서 1212년에 출생하여 상낙대에서 무예(武藝) 공부를 하고 음보(蔭補)로 벼슬에 올라 여러 관직을 거쳐 장군이 되었을 때 일본을 2번 정벌하러 갔었고, 사후에 묘소를 실전하였으나 200여년 후에 찾아서 지금과 같이 보전하였다고 한다. 이어서 선생님의 강의가 시작 되었다.
-계속-
댓글목록
김은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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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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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안사연의 등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발용아우님 고맙습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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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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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대부님 불씨관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