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근현대자료---충렬공 김방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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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회 작성일05-09-01 23:06 조회1,409회 댓글0건본문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서북학회월보 호수 제7호
발행년월일 1908-12-01
필자
기사제목 金方慶傳
기사형태 잡저
본문
金方慶의 字는 本然이니 安東人이오 新羅 敬順王의 遠孫이라. 母ㅣ 有娠야 屢次 夢에 雲霞를 餐니 嘗語人曰 雲氣가 嘗在吾口鼻니 兒必神仙中來矣로다. 及生에 少有嗔恚면 必臥啼街衢 牛馬가 爲之避니 人皆異之러라. 年이 十六에 以蔭補散員야 式目錄事를 兼니 侍中 崔宗峻이 愛其忠謇야 待之以禮고 有大務면 皆委之러라. 屢遷야 至監察御史라가 後에 爲西北面方馬判官이러니 蒙古兵이 來攻諸城거 入保葦島니 島가 平衍可耕이로 患海潮야 不得墾이라. 方慶이 令築堰播種니 民賴而活이라. 高麗 元宗四年에 知御史臺事러니 十年에 林衍이 王을 廢니 世子가 自 元國으로 還至 義州라가 聞難고 復入元니 元 世祖가 脫兒不花等을 遣야 在國群臣을 諭고 及還에 方慶이 偕行入元니 世子가 請兵야 蒙哥篤이 領軍고 將發 元國 中書省에셔 謂 世子曰 今 蒙哥篤이 若 久駐 西京야 以待大軍면 林衍이 旣背命이라. 必不給軍食리니 奈何오. 侍中 李藏用等이 曰 方慶이 再鎭北界야 有遺愛니 非此人不可라 乃命方慶니 方慶이 曰 兵到 西京야 若 過 大同江이면 恐將有變이니 宜 勿令過江이라 皆曰 善타 行至東京야 王이 復位심을 聞고 因留待之러니 時에 崔坦 韓愼이 叛야〈28〉諸城守을 殺얏스되 오직 博川守 姜份과 延州守 權闡을 禮待야 曰 金公의 德을 吾豈敢忘이리오 니 份과 闡이 方慶의 妹婿가 됨으로 以 것이라. 明年에 方慶이 與 蒙哥篤으로 至 西京니 父老가 爭來餉야 泣曰 若 公在면 豈有坦愼之事리오 더라. 是年夏에 三別抄가 叛야 驅掠人民고 航海而南거 王이 參知政事 申思佺을 遣야 爲招討使고 又 命 方慶야 領兵고 與 蒙古 宋萬戶等 一千餘人으로 追討 至海中야 望見賊船이 泊靈興島고 方慶이 欲擊 賊이 逃去니라. 賊이 入據 珍島야 侵掠州郡되 思佺이 不以討賊爲意라가 坐免니 方慶이 代思佺야 與 蒙古 元帥 阿海로 率兵一千討之 賊이 圍 羅州고 分兵攻 全州니 羅州人이 與全州人으로 議降니 全州人이 猶豫지라. 方慶이 爭聞之고 單騎로 倂日南行야 先牒 全州曰 某日에 當率兵一萬야 入州리니 宜 速備軍餉라 全州가 以牒으로 示 羅州니 賊이 遂解圍去니라. 方慶이 與 阿海로 屯三堅院야 對 珍島而陣니 賊의 船艦이 皆盡怪獸야 蔽江照水에 動轉如飛고 每戰에 賊軍이 鼓噪突進니 互有勝負야 曠日相持러니 會에 潘南人 洪贊 洪機가 讚于 阿海曰 方慶 孔愉等이 陰與賊相通이라 니 阿海가 執而囚之고 移牒達魯花赤야 令 方慶還야 與贊等對辨 以參知政事 蔡楨으로 代之고 阿海가 鎖 方慶야 押送于京니 見者皆冤之라. 達魯花赤이 言於王曰 贊等所言이 誣妄이니 宜 繫牢獄고 釋 方慶소서 나 王이 卽 令 方慶으로 討賊야 復授上將軍고 慰諭遣之시니〈29〉 方慶이 至 珍島에 賊이 皆 乘船고 旗幟를 盛張며 鉦鼓가 沸海고 又於城上에 鼓澡大呼야 以助聲勢어 阿海가 怯야 下船야 欲退屯 羅州어 方慶이 曰 元帥 若 退면 是示弱也라. 若 賊이 乘勝長驅면 誰敢當鋒이리오 阿海가 不敢退라. 方慶이 獨率師攻之 賊이 以戰艦逆擊니 官軍이 皆 退라. 方慶이 曰 決勝이 在今日이라 고 突人賊中니 賊이 圍之라. 方慶의 士卒이 殊死戰야 矢石이 俱盡고 又 皆 中矢야 不能起라. 有賊將이 露刃고 跳入船中이어 金天祿이 以短矛刺之라. 方慶이 起야 曰 寧葬魚腹이언졍 安可死於賊乎아 고 欲投海니 衛士 許松延 等이 挽止之라. 病創者가 見 方慶危急고 叫呼復起야 疾戰 方慶이 據胡床指揮야 顔色이 自若이라. 將軍 楊東茂가 以蒙衡突擊니 賊乃解去니 遂潰團而出다 阿海가 以畏縮不戰으로 罷고 元將 忻都가 來代니 方慶이 與忻都協謀야 攻 珍島 將中軍야 入自 碧波亭고 永寧公의 子 熙雍과 洪茶丘는 將左軍야 入自獐項고 大將軍 金錫萬 戶高乙麽는 將右軍야 入自東面니 總百餘艘라. 賊이 聚 碧波亭야 欲拒中軍이어 茶丘가 先登야 縱火挾攻니 賊이 驚潰라. 先是에 官軍이 數與賊戰不勝니 賊이 輕之러니 至是야 官軍이 奮擊니 賊이 棄妻子逃라. 方慶이 追之야 男女一萬餘人과 戰艦數十艘를 獲니 餘賊이 走 耽羅라. 方慶이 入 珍島야 米四千石과 財實器仗을 得야 悉輸 王京고 其 陷賊良民은 皆 令復業고 凱還니 王이 遣使郊迎시고 以功으로 守太尉中書侍郞章平事을〈30〉加다.(未完)〈31〉
〈28-31〉
한국근현대잡지자료
잡지명 개벽 호수 제2호
발행년월일 1920-07-25
필자 勿齋 宋淳夔
기사제목 高麗의 大人物 金方慶氏를 論함
기사형태 논설
본문
1. 緖論
古는 往하고 今은 來하매 종으로 往昔을 觀하며 횡으로 現時를 察하여 보건대 유래의 歷年이 久치 아님이 아니며 林葱한 蒼生이 多치 아님이 아니로대 장구한 歷年인 기간과 衆多한 민족 즉 億兆蒼生인 其中에 오즉 위대한 인물이란 원래 그 類가 罕하며 그 수가 少한 것이니 그럼으로 영웅과 호걸은 世不常有라는 고래부터 전래하는 言이 有하니라. 고로 서양으로 말하면 拿破論, 稗斯麥과 如한 자도 世出치 못하얏스며 동양으로는 支那의 管仲, 諸葛과 일본의 北條時宗, 細川賴之와, 我조선에는 姜邯贊, 李舜臣, 가튼 이도 또한 世에 常有치 못하얏도다. 그런즉 今에 謂하는바 위대한 인물이라는 것이 萬一世世로 出하며 個個히 能하다 하면 영웅도 호걸도 그 무엇도 족히 高할 것이 無하며 貴할 것도 無할지니라.
그럼으로 영웅과 호걸이라는 것은 위대한 품격을 구하얏는 고로 위대한 사상이 有하며 위대한 사상이 有한 고로 위대한 사업을 遂하며 위대한 사업을 遂하는 고로 위대한 명성이 당시를 震하며 후세에 鳴하나니 고로 위대한 인물은 협의적으르 言하면 世를 濟하고 民을 安하며 광의적으로 말하면 능히 천지를 斡施하며 건곤을 補綴한다하나니 그런즉 此等의 인물은 此를 輕히 하려도 輕히 하지 못하며 侮하려도 侮하지 못할뿐 아니라 그 당시는 물론 기천년후에 在한 자라도 스스로 愛하고 慕하며 敬하지 아니치 못하나니라.
2. 可愛, 可敬, 可慕할 金方慶氏
기자는 玆에 고려의 高元及忠烈의 世에서 명성이 赫赫하며 공적이 巍巍한 金方慶氏를 愛하고 敬하며 慕하노라. 그러나 吾人의 愛하고 敬하며 慕하는 바는 何를 위함인가. 金方敬씨는 신라 列聖朝의 苗裔요 고려 大攻丞*傳의 후손으로 특별히 門地가 高함을 위함인가. ... 아니라 그러면 그 당시의 隆權赫勢와 고관현작으로 出하면 將하고 入하면 相하야 초에는 공전침략에 斧鉞의 任을 帶하고 兵馬都元師가 되엇다가 후에는 大顯大貴로 上洛公開國伯이 되엇슴으로 그 高尙顯耀한 지위를 위함인가? 아니라 만일〈31〉 其人이 명문거족임으로 此를 愛하고 敬하며 慕한다 하면 崔忠獻은 4世公侯로 그 門地의 高함과 부귀의 極함은 고려 4백년간에 제일 指를 屈할만 하지마는 吾人이 此를 愛하고 敬하며 慕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反히 此를 唾하고 罵하나니라. 또 그 顯官要職으로 1인의 下와 만인의 上에 처하야 隆赫한 권세와 고귀한 지위에 在한 관계로 此를 愛하고 敬하며 慕한다 하면 李資謙은 고려 仁宗의 外祖로 朝鮮公이란 榮爵을 帶하고 萬僚의 上에 處하야 勢는 人主를 傾하고 威는 천하를 動할만하나 지위에 在하엿섯지마는 금일에 吾人이 此를 愛하고 敬하며 慕하지 아니할뿐 아니라 反히 此를 誅하며 剌하는 바이 아닌가. 그러면 彼 金方慶씨는 엇더한 관계 엇더한 이유하에서 彼를 愛하고 敬하며 慕하는가? 多言을 要치 아니하야도 그 고상한 품격과 위대한 인물을 愛하고 敬하며 慕하는 바이니라.
3. 博學廣聞, 多知多能, 文章大家의 金方慶氏
金方慶씨는 천재가 穎悟하야 총명이 絶人한 人이니라. 金方慶씨는 好學不厭하야 拳拳히 倦할줄 不知하는 人이니라!! 金方慶씨는 박학다문하며 다지다능한 人이니라. 金方慶씨는 慷慨히 鵬程萬里의 大志를 抱하고 小節에 不拘하는 人이니라!
이러함으로 金方慶씨는 幼時로부터 過目不忘하며 一*輒記하는 才가 有하얏슴으로 筆書를 博覽하야 약관의 세에 불급하야 학문이 大進하얏더라. 古로부터 才가 多하면 德을 勝하기 易하고 才가 德을 勝하면 小人이 되는 것이오. 又才가 高하면 放曠하고 荒悖하기 易하고 浮躁하고 淺露한 자―多하며 又才를 恃하면 其心이 滿하고 其氣가 高하야 巍然自大하며 驕昂自恣하는 자가 10의 6, 7을 점하는 것이지마는 金方慶씨는 才가 高함을 隨하야 學이 富하며 學이 富함을 伴하야 德이 厚하야 英明하고도 沉毅하며 寬厚하고도 重黙하야 俗人 이것만 俗人이 아니며 서생 이것만 서생이 아니얏나니 씨는 儼然히 군자의 태도를 持하얏스며 超然히 영웅의 기풍을 帶하얏나니 此가 他日에 出將入相하는 大器大材를 成한 배태물이며 鳴天動地하는 豐攻偉勳을 遂한 원동력이엇섯나리라.
그리고 또 문장대가라는 것은 원래 華가 多하고 實이 少하며 文辭는 長하나 사상이 薄하며 형식에는 富하나 氣節이 弱하나니 그럼으로 筆下에는 비록 수천만 言이 有할지라도 國을 經하고 邦을 治하는데와 難에 임하야 敵을 制함에〈32〉 대하야는 半籌의 謀를 展치 못하며 一臂의 力을 運하는 자 - 극히 罕少하야 古來부터 其例가 乏치 아니 하얏나니 고로 宋의 대학자인 程伊川이 가르되 「有高才能文章, 人之不幸」이라 하며 又曰하되 「彼以文辭而已者는 陋矣」라 하엿나니라. 가령 신라의 强首와 고려의 李奎報로 말하면 그 문장이 능히 人을 驚하며 世를 鳴하엿지마는 彼는 오즉 文辭에만 長할 뿐이오 經國治邦의 器가 乏하며 靖端難扶危의 才가 無하야 오즉 일개 文士에 불과하얏도다. 그러나 金方慶씨는 그 才學이 彼보다 劣치 아니하며 그 문장이 彼에 讓치 아니하야 筆이 落하면 風雨가 驚하며 詩가 成하면 귀신이 泣하는 大文士이며 大方家됨에 無愧하지마는 이것 뿐 만으로써 씨를 위대한 인물이라 指함은 아니라 곳 말하자면 國이 治함에는 賢相良佐로 廟堂에 處하야 百官을 治하고 만민을 撫하는 大材가 되며 國이 亂함에는 명장용사로 矢石의 장에 立하야 戰必勝功必取하는 大材가 有한 자는 오즉 金方慶씨이니 此가 이른바 世에 超하며 人에 過한 위대한 인물이라 稱하는 所以이라. 世에 武將은 文이 少하며 文士는 武가 少하다함에 불구하고 씨는 실로 문무를 兼全한 불세출의 영웅이엇섯나니라.
4. 前知의 能, 先見의 明, 大智大慮의 金方慶氏
金方慶氏는 협소한 식견이 아니라 원대의 식견이 有한 人이니라. 金方慶씨는 보통의 智를 有한 자이 아니라 특별의 智를 具한 人이니라. 金方慶씨는 前知의 能과 선견의 明이 有한 人이니라. 今에 그 一事를 소개하건대 고종 35년에 씨는 兵馬判官이란 微職에 靡하얏섯는대 其時에는 몽고가 강성하야 年年이 大兵을 提하고 邊境을 입관하야 所至에 침략하야 백성을 殘害하며 兇을 肆하고 惡을 播함으로 民이 그堵를 安하야 그 業을 樂치 못하얏더라. 是歲에도 蒙兵이 평안남북계에 침입하야 獺을 捕한다. 言을 託하고 所過에 縱掠을 肆함으로 변경의 民이 茶毒에 苦하야 경작의 事를 영위키 難하야 그 窮途慘狀은 실로 滿目悽然한지라 於是에 北界兵馬判官의 職을 帶한 金方慶씨는 居民을 移하야 모다 해도에 入하야 居하게 하얏는대 安北府에 草島가 有하야 海潮의 출입으로 耕種함을 不得하야 民情 大히 嗷嗷한지라 金方慶씨는 此실황을 目擊하고 大히 優하고 慮하야 침식을 忘하고 此善後의 策을 강구하얏도다. 당시의 정황으로 말하면 進하려도 進할 수 업고 退하려도〈33〉 退할 수 업서서 可謂進退難谷이오. 計不入量인 위험천만의 窮境에 陷하야젓는대 此時를 당하야 평일에 소위 智謀의 士라고 稱하는 者등도 뇌관이 通치 못하며 心*가 闢치 못하야 능히 그 萬全의 計로써 일시구급의 方도 案出치 못하야 그 倒*의 危를 解치 못하는 난관에 처하얏슬 터이지마는 오즉 彼 金方慶씨는 俗子의 針孔만한 智을 有함이 아니라 호구와 如한 智를 有하얏스며 보통인의 임시 미봉의 책을 運하야 一時姑息의 計를 取하는 자이 아니라 완전무결하게 영구한 행복을 享受할 백년의 대계를 용핊�얏더라. 그리하야 씨는 民으로 하야곰 四圍에 제방을 築하야 海潮의 침입을 防케 하고 其中에서 開墾하야 稗를 種케 하는 案을 제정하야 此를 공포실시케 하얏는대 본안을 공포하던 당시에는 人人마다 그 迂濶無智함을 譏하며 徒勞無功할 것을 제창하야 그 불가함을 說하는 자가 滔滔皆是인 상태에 在하얏섯는대 金防慶씨는 호을로 그 분분한 衆議를 排하고 자기의 案出한 계획이 반듯이 그 正鵠을 中할 것을 주장하고 강제적으로 此를 실행케 하얏는대 민간에는 도처에 원성이 漲溢하더니 밋 그 秋期에 至하야는 種穀이 豐登하야 無前의 大稔을 致하얏슴으로 於是乎民間에는 家家에 石廩이 高하야 千斯萬斯의 倉이 충실하게 되엇더라. 그런대 蒙丘은 歲를 運하야 退치 아니하고 島中의 이민은 年年히 歲가 登함으로 小毫의 饑窮을 感치 아니하야 頗히 그 업을 樂하며 島中에 또 井泉이 無하야 飮用의 水가 부적함으로 金防慶씨는 이에 堤를 築하고 水를 貯하야 大澤을 위하고 夏에는 灌漑에 便케 하고 冬에는 冰을 鑿하야 人民의 利用厚生의 道를 開케 하엿더라.
冬에는 氷을 鑿하야 人民의 利用厚生의 道를 開케 하얏더라. 此에 至하매 인민은 비롯오 그 大智를 眼하고 此後로는 그 德을 頌하며 그 恩을 懷하야 一境이 賴安함을 得하얏도다.
그런즉 此一事를 觀할지라도 此가 金方慶씨의 사업상으로는 특별한 大事와 大功이 아니며 僅이 小事와 小功됨에 불과하다 하겟지마는 하여간 此가 世俗智謀의 士의 능히 及할 바-아니니 곳 말하자면 金方慶씨는 百人이 思치 못한 바를 思하얏스며 千人이 謀치 못한 바를 謀한 자로 백인천인의 頭上에 逈出한 특별적 지능을 具한 자라고 謂치 아니치 못할지로다.
五. 赳赳한 武夫, 矯矯한 虎臣, 雄謀大畧을 抱한 金方慶氏
金方慶씨는 勇毅果敢한 人이니라! 金方慶씨는 憂國如家하는 人이니라! 金方慶씨는 雄謀大畧이 有한 人이니라. 〈34〉 金方慶씨는 赳赳한 武夫-며 矯矯한 虎臣이엇섯나니라. 元宗의 世에 삼별초가 黨을 擧하야 叛하매 그 兇獰의 勢는 도처에 猖獗을 極하야 可謂 豺虎가 六橫하며 蛇豕가 荐食하는 대란을 致하얏는대 彼는 州郡을 침략하야 인민을 殺戮하며 가옥을 燒蕩하야 烟焰이 天에 漲하고 혈육이 地에 塗하는 대참상은 가히 형언키 難한 此時이엇더라. 이에 元宗께서는 宸憂가 耿耿하사 金方慶으로 逆賊追討使를 拜하야써 그 정벌을 專케 하셧는대 씨는 이에 闡外의 大任을 帶하고 황금의 斧鉞을 携하고 그 旅를 整하며 그 威를 揚하야 屹然히 矢石의 場에 立하얏도다.
元宗 12년에 金方慶씨는 桓桓의 勢와 堂堂의 威로써 賊을 追討하야 전후에 勝捷이 多하얏고 是歲 3월에 元將 洪茶丘 及 忻都로 더불어 珍島에서 賊을 대파하야 殺獲이 甚衆한지라. 遂히 追奔逐北하야 적을 逼하니 그 여당이 耽羅에 竄入하야 更히 군중을 嘯聚하매 그 勢가 更히 大振하고 적은 內外城을 築하야 그 險固를 恃하고 更히 虺蛇의 독을 肆하야 州郡을 寇掠하매 殆히 虛日이 無하얏더라. 조정에서는 이에 씨를 中軍兵馬大元師를 拜하야 國家千城의 任을 그 雙肩上에 負荷하얏섯도다. 씨는 이에 만여인의 군졸을 提하고 *揚飛翰하며 電馳奮迅하야 戰艦으로써 耽羅에 到하야 咸德浦에 入하매 적의 복병이 突起하야 관군을 圍코저 하거늘 씨는 大呼一聲에 적세가 遂히 風靡하야 子城으로 奔入하는지라. 이에 관군은 승승장구하야 外城을 踰하야 此를 掃蕩하고 적장을 斬하얏는대 이에 천하는 難이 靖하고 兵燹이 熄함을 득하얏도다.
古人의 言에 夏蟲에는 가히 氷을 語치 못하며 소인에게는 可히 大事를 問치 못한다 하얏스니 此時를 當하야 적의 勢는 如彼히 창궐하얏스며 蒼生의 塗炭은 如彼히 참혹하얏스며 국가의 力은 如彼히 미약하얏스니 설령 약간의 謀士와 勇將이 有할지라도 彼를 대항함에 강약이 不同하며 衆寡가 不敵하야 능히 그 謀를 逞치 못하며 그 勇을 施치 못하엿슬 것이로다. 그러나 金方慶씨는 일시를 미봉하는 책략을 有한 자가 아니며 1인을 대적하는 勇武를 有한 자이 아니라 초연히 그 類에 出하며 그 萃에 拔하얏슴으로 비록 元의 一臂의 力을 得하얏슬지라도 전혀 國을 安케하며 民을 保케한 偉功奇勳은 오즉 此 金方慶씨에게로 歸치 아니치 못할것이로다.
六. 結論
가령 동일한 木이지마는 樗櫟을 此를 천히 여기고 桐梓는〈35〉 此를 貴히 여기는 것이오. 동일한 鳥이지마는 䲭鴞는 輕하되 봉황은 重하며 동일한 獸이지마는 豚犬은 천하되 龜麟은 귀한 것이니 此가 何故인고. 오즉 그 덕성과 품격의 고상함을 指함에 不外한 것이니라. 此와 同理로 동일한 人이지마는 大人은 高하고 貴하며 凡人은 卑하고 천함이니 此가 何故인가. 이것도 또한 그 材器와 품격과 가치를 謂함이니라. 그럼으로 人이 진실로 英邁雄豪할진대 당시뿐만 아니라 기천년 후에 在한 人도 此를 추앙하고 景慕하는 것이오. 此에 反하야 傭俗하야 材가 못되며 鄙劣하야 德이 無하면 당시는 물론 百世下에 在한 자도 此를 凌侮하며 輕忽히 하는 것이니 고로 古語에 하얏스되 「得其人에 重之如山하고 不得其人에 忽之如草」라 하얏도다. 그런즉 吾人이 幾百世下에 在하야 彼 金方慶씨를 愛하고 敬하며 慕하는 것이 엇지 他에 在하리오. 上에 진술함에 不外한 것이르다. 그러나 吾人이 徒然히 此를 愛하고 敬하며 慕하기만할 뿐으로는 甚히 부당하며 불가하다 하노니 吾人은 此를 效하며 此를 學할 것이라 하노라. 人이 學하야 及치 못하는 事가 無하며 學하야 達치 못하는 事가 無하나니 吾人이 彼의 德을 學하며 彼의 智를 學하며 彼의 勇을 學하야 得할진대 기백만의 金方慶이가 我半島天地에 簇出할지 未知이니 그런즉 吾人은 「願學 金方慶」이란 5자를 망각치 말지어다.〈36〉
〈31-36〉
한국근현대 신문자료
신문명 동아일보
기사제목 어린이 歷史 (五九) 金方慶
발행년월일 1940-02-25
면수 04
단수 02
표제어 이병기(李秉岐, 가람)
필자
색인어
주제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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