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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대첩의 주인공 휘 흔자 할아버지의 고명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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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작성일05-12-07 11:31 조회1,448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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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대첩의 주인공 휘 흔 할아버지의 고명에 대한 자료입니다.

원사 고려전의 내용과 동일합니다.

 

출전 : <고려고도징>

 koryukodozing_01.jpg

koryukodozing_02.jpg

댓글목록

김태서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태서
작성일

  이제는 겨울의 문턱에 성큼 들어섰습니다.
아쉬운 가을의 추억은 뒤로하고 이젠 겨울맞이를 하셔야죠? ^^
따뜻한 커피한잔 드시며 오늘도 편안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김항용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항용
작성일

  충렬공 일본 원정시 아드님들과 사위와 함께 다녀오던 위용이 아름답습니다.

김주회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주회
작성일

  1278년 부원배 홍다구 일당에 의한 충렬공 무고사건시 기록인 듯 합니다. 그런데 ---시중 김방경이 그 아들 수, 선, 순, 사위 조변 등과 ---라는 내용이 보입니다.  충렬공의 아들은 1선, 2수, 3순이고, 특히 2수는 이미 1274년경 흔 으로 개명한 뒤인데, 위 기록은 약간의 문제가 있는 듯 합니다.

김윤식님의 댓글

profile_image 김윤식
작성일

  맞습니다. 충렬공 무고사건 기록입니다.
원사 고려전의 기록에서 눈여겨볼 것은 휘 흔 할아버지의 고휘(고명)가 심방변이라는 점입니다. 고려사나 그 외의 기록에서는 심방변으로 기록돼 있지 않지요.
세 분의 순서가 뒤바뀌어 나타난 것은 형제간의 순서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어쩌면 그 당시 원나라 조정은 고려에서 휘 흔 할아버지의 정치적 영향력을 더 크게 느낀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려사 곳곳에서 휘 흔 할아버지의 정치적 영향력을 충분히 감지할 수 있기도 하고요.
충렬공의 아드님은 다섯 분 모두 심방변입니다. 따라서 휘 흔 할아버지의 고휘도 심방변을 쓰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하겠습니다. 그런 가능성 때문에 관련 자료를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는 앞에서 "원사 고려전에....."라고 그 출전을 밝히고 있습니다. 따라서 원자료는 &lt;원사&gt;가 될 것이고, 먼저 올린 원사 고려전 자료와 똑같을 수밖에 없고, 현재로서는 발굴 자료가 1개에 지나지 않는 셈입니다.
다만, 원사는 그 단점에도 불구하고(이 문제는 잘 아시리라 생각돼 줄입니다), 시기적으로도 고려사보다 먼저 편찬되었습니다. 또한 관찬 사서인만큼 가능성 자체를 완전 배제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
원나라나 명나라는 고려와 지리적, 정치적, 사회적 거리가 있습니다. '흔'으로 개명하신 뒤이지만 이러한 연유로 중국인들은 먼저 알려진 '수'를 사용했을 가능성은 없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