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Re:청백리 김득신

페이지 정보

김태서 작성일02-04-17 03:15 조회1,678회 댓글0건

본문

청백리(淸白吏)로 유명한 김득신(金得臣)



선생의 어릴 때 이름은 자공(子公)이고 호는 백곡(栢谷) 또는 구석산인(龜石山人)이라고 했고, 본관은 안



동(安東) 충무공(忠武公) 김시민(金時敏) 장군의 손으로 안흥군 치(安興君 緻) 의 아들이다. 1642년 인조



임오년에 사마시(司馬試)에서 진사(進士)가 되고 20년 후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여 여러 가지



벼슬을 역임하는 동안 원래 자질이 뛰어나고 착하시어 숙종(肅宗) 임금님 때에 청백리(淸白吏)로 뽑히셨



으며 안 풍군(安豊君)에 봉하셨으나 늦게 높은 벼슬에 올라 장차 사화(정치인의 싸움)가 있을 것을 짐작



하고 벼슬자리를 버리고 현재 괴산읍 능촌리에 있는 취묵당(醉默當)에 내려와서 그후는 일제히 벼슬에



나가지 않고 백이전(伯夷傳)이란 사기를 1억 1만 3천번을 읽고 그의 서재(書齋) 이름을 억만재(億萬齎)



라 하였으며 뛰어난 문장이 세상에 알려지니 효종 임금님은 공의 용호한강시(龍湖漢江時)를 보시고 감탄



하셨다. 선생은 항상 자손들을 훈계하시되(권력과 귀한 사람을 삼가해서 사귀고 시사(정치에 대한 일)를



함부로 논하지 말라) 하시었다. 선생이 지은 문집 7권과 그 외에 8권의 책이 있으며 묘소(墓所)는 증평



읍 율리에 있다.









▣ 김주회 -

▣ 김항용 -

▣ 김항용 - 상기 글의 출전을 부탁 드립니다. 청백리에 대한 문헌 검증이 필요합니다.

▣ 김영환 -

▣ 김은회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