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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급제자(25)-김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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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2-01 23:06 조회1,510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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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김 수(金睟) 1547(명종2)∼1615(광해군7).-서운관정공파

 조선 선조때의 명신. 字는 자앙(子昻), 호는 몽촌(夢村), 첨지중추부사 김로(金魯)의 손자이며, 사재감정(司宰監正) 홍도(弘度)의 아들. 어머니는 이계백(李繼伯)의 딸이다. 퇴계 이황(李滉)의 문인. 한성사람으로 생원으로 있다가 1573년(선조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을 거쳐 이듬해 홍문관 정자 · 저작을 역임하고, 다시 예문관 봉교를 거쳐 사헌부 감찰로 승진하였다. 이어 정언 · 수찬 · 교검 · 지평 · 직강 등을 역임하고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가 되었을 때 선조의 명으로「십구사략(十九史略)」을 개수하고 주(注)를 붙였다.  1583년 번호(藩胡)가 침입하여 경원부(慶源府)가 함락되자 이조정랑으로서 도순찰사 정언신(鄭彦信)의 종사관이 되었다. 유학(幼學) 신급(申급)이 올린 상소 속에 조정에서 권력을 마음대로 행사하는 인물의 하나로 지적되기도 하였다. 그 후 직제학(直提學)· 우부승지(右副承旨)를 거쳐 1587년 평안도 관찰사에서 면직되었으나 나라에서 왜(倭)를 매우 걱정하여 변방의 일을 아는 재신(宰臣)을 뽑아 삼도(三道)로 나누어 파견하여 군무(軍務)를 순찰하고 대비하도록 할 때 경상도관찰사가 되었다.


 부제학(副提學)·대사헌, 병조·형조의 판서를 역임, 정철(鄭澈)의 건저문제(建儲問題)에 대해 옥당에서 탄핵하는 차자(箚子)를 올리려고 할 때 부제학으로서 사성 우성전(禹性傳)의 집으로 의논하러 가서 시간이 지연되어 올리지 못하였으므로 대사간 홍여순(洪汝諄)이 우성전을 탄핵하면서 남·북 두파로 갈리게 되자 남인이 되었다. 1591년 다시 경상도 관찰사가 되었고, 홍여순(洪汝淳)이 간계를 꾸며 사류(士流)를 몰아내려고 그를 크게 등용하고자 했으나 이에 응하지 않았다.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 경상우감사(慶尙右監司)로서 진주에 있다가 동래가 함락되자 밀양과 가야를 거쳐 거창으로 도망을 가면서 다만 각 고을에 격문을 돌려 백성들에게 적을 피하라고 통고하니 도내가 텅 비어 왜적을 방어할 수 없었다. 전라감사 이광(李洸)과 충청감사 윤국형(尹國馨)이 근왕병(勤王兵)을 일으켰을 때 겨우 100여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가하였으나, 근왕병이 용인(龍仁)에서 왜군에게 패하자 경상우도로 되돌아가던 중 영남초유사(嶺南招諭使) 김성일(金誠一)로부터 패전에 대한 질책을 받았다.

당시 의령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곽재우(郭再祐)와 불화가 심하여 김성일의 중재로 무마되기도 하였다. 1592년 11월 13일에 한성부 판윤(漢城府判尹)·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우참찬(右參贊)·형조판서를 지내고  호조판서로서 임진왜란 때 치적을 올려 능력을 인정받았으며, 1596년(선조 29) 호조판서로서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명군(明軍)의 군량을 충당하기 위하여 군량징수에 힘썼다. 1605년(선조 38) 4월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다. 1613년(광해군5) 손자 비(示+必)가 적신들의 무고로 옥사(獄死)할 때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고 삭직(削職)당했다가 인조반정 후 다시 관작이 회복되었다.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에 이르렀고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 그의 죽음을 듣고 나라의 충신을 잃었다고 한탄했다고 한다. 시호는 소의(昭懿). 저서로 몽촌집(夢村集)이 있다. 임란 당시의 행적이 비문과 정만록(征蠻錄)에 잘 기술되어 있다.

 묘소는 서울시 대방동에서 1939년 3월, 경기도 부천시 오정구 고강동 산 59-2번지로 천봉하였다가 다시 2003년 충북 음성군 생극으로 재천봉하였다.

묘소 소개  (2002. 9. 26. 항용(제) 촬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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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묘소>(2002. 9. 26. 恒鏞(제) 참배 및 자료 제공)

 

선조6년(1573) 식년시때는 41명의 합격자를 냈다. 

 

이름 생년 자 호 본관 합격등급

강선경(姜先慶) 1540 경자 맹업(孟業)  진주(晉州) 丙科17

강의호(姜義虎) 1541 신축 문숙(文叔)  진주(晉州) 丙科12

권가행(權可行)  시중(時仲)  안동(安東) 丙科19

권식(權寔) 1535 을미 진경(眞卿) 풍암(楓岩) 안동(安東) 乙科4

권춘란(權春蘭) 1539 기해 언회(彦晦) 회곡(晦谷) 안동(安東) 乙科6

김경생(金景生) 1549 기유 자길(子吉)  언양(彦陽) 丙科5

김복경(金復慶) 1544 갑진 기선(基善)  경주(慶州) 丙科11

김수(金睟) 1547 정미 자앙(子盎) 몽촌(夢村) 안동(安東) 丙科1

김수(金粹)  정부(正夫)  미상(未詳) 乙科1

김제민(金齊閔) 1527 정해 사효(士孝) 오봉(鰲峰) 의성(義城) 乙科7

김한(金僩) 1537 정유 계옹(季雍)  광주(光州) 丙科20

나윤침(羅允忱) 1527 정해 언부(彦孚)  안정(安定) 丙科5

문승수(文承洙) 1525 을유 덕원(德源)  개령(開寧) 丙科15

변이중(邊以中) 1546 병오 언시(彦時) 망암(望菴) 황주(黃州) 丙科23

성영(成泳) 1547 정미 사함(士涵)  창녕(昌寧) 乙科3

송숙(宋璹) 1543 계묘 수옥(壽玉)  여산(礪山) 丙科9

신경룡(申景龍) 1538 무술 응견(應見)  평산(平山) 丙科22

유덕개(劉德蓋) 1537 정유 택부(澤夫)  거창(居昌) 丙科14

윤승훈(尹承勳) 1549 기유 자술(子述) 청봉(晴峰) 해평(海平) 丙科2

윤정(尹渟) 1539 기해 지숙(止叔)  파주(坡州) 丙科10

이경율(李景㟳) 1537 정유 숙첨(叔瞻)  전주(全州) 丙科3

이공(李珙) 1533 계사 공보(恭甫) 율원(栗園) 예안(禮安) 丙科7

이기(李璣)  계윤(季潤)  완산(完山) 丙科13

이덕수(李德秀)  희원(希元)  단양(丹陽) 丙科24

이등림(李鄧林) 1535 을미 대재(大材)  벽진(碧珍) 丙科16

이무일(李無逸) 1544 갑진 경부(敬夫)  홍주(洪州) 丙科18

이발(李潑) 1544 갑진 경함(景涵) 북산(北山) 광주(光州) 甲科1

이주(李澍) 1534 갑오 언림(彦霖) 분봉(盆峯) 연안(延安) 丙科2

이홍인(李弘仁) 1538 무술 확이(擴而)  전주(全州) 甲科2

전경창(全慶昌) 1532 임진 계하(季賀)  경산(慶山) 丙科3

전방경(全方慶)  중선(仲善)  미상(未詳) 丙科8

조여강(趙汝剛)  자유(子柔)  평양(平壤) 丙科21

조정추(趙廷樞) 1530 경인 두응(斗應)  풍양(豊壤) 丙科6

주덕원(朱德元) 1537 정유 돈윤(惇允)  웅천(熊川) 甲科1

최명순(崔命順) 1517 정축 중수(仲受) 동계(東溪) 강화(江華) 乙科2

최전(崔錪) 1549 기유 경관(景寬)  충주(忠州) 乙科1

한극해(韓克諧) 1546 병오 숙화(叔和)  청주(淸州) 丙科1

한인(韓戭) 1547 정미 개숙(凱叔)  청주(淸州) 乙科5

홍세공(洪世恭) 1541 신축 중안(仲安)  남양(南陽) 丙科4

홍인걸(洪仁傑) 1541 신축 응시(應時)  남양(南陽) 甲科3

홍인서(洪仁恕) 1535 을미 응추(應推)  남양(南陽) 丙科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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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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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마음만은 벌써 봄을 기다리고 있나봐요.
다가오는주말 2월4일은 24절기중 봄을 상징하는 입춘이네요.
오늘은 기온은 떨어져 쌀쌀한 날씨입니다.
감기 조심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