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게시판

백범(44) 첫사랑

페이지 정보

김영환 작성일02-04-22 19:20 조회1,552회 댓글0건

본문

백범선생님은 여러번의 약혼이 있었습니다.



어려서 서당다닐 때 부모가 혼처를 정했다가 그만두기도 하고



스승이셨던 고능선 선생의 손녀딸과의 약혼도 우여곡절 끝에



파혼하였습니다.





1902년 백범선생님은 27세가 되시는 해입니다.



이해 정월 초순 백범선생님은 여옥이라는 여인을 만나 비로서 사랑다운 첫 사랑을 하시게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랑도 겨우 일년 동안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일년동안 여옥을 사랑하시면서 한편을 열심히 곰부를 가르치셨습니다.



1903년 년초 여옥은 이러한 선생님의 사랑과 노력에 도 불구하고 저 세상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아버님(김순영, 보명 재하)이 돌아가신 직후여서 상심은 더욱 크셨으리라 짐작 됩니다.



당시의 상황을 백범선생님으로부터 직접 들어보기로 하겠습니다.



백범일지 해당부분



임인년(壬寅年) 정월에 장연 먼 촌 일가댁에 세배를 갔더니 내게 할머니 되는 어른이



그 친정 당질녀로 17세 되는 처녀가 있으니 장가들 마음이 없는가고 물었다.



나는 세 가지 조건에만 맞으면 혼인한다고 하였다. 세 가지라는 것은 돈에 대해 말이 없을 것과



신부 될 사람이 학식이 있을 것과, 당자와 서로 대면하여서 말을 해볼 것이다.



어떤 날 할머니는 나를 끌고 그 처자의 집으로 갔다. 그 처자의 어머니는 딸 4형제를 둔



과댁으로서 위로 3형제는 다 시집을 가고 지금 나와 말이 되는 이는 여옥(如玉)이라는



막내딸이었다.



여옥은 국문을 깨치고 바느질을 잘 가르쳤다고 하였다.



집은 오막살이, 더할 수 없이 작은 집이었다.



나를 방에 들여 앉혀 놓고 세 사람이 부엌에서 한참이나 쑥덕거리더니,



다른 것은 다 하여도 당자 대면만은 어렵다고 하였다.



"나와 대면하기를 꺼리는 여자라면 내 아내가 될 자격이 없소"



하고 내가 강경하게 나간 결과로 처녀를 불러들였다.



나는 처녀를 향하여 인사말을 부쳤으나 그는 잠잠하였다.



나는 다시,



"당신이 나와 혼인할 마음이 있소?"



하고 물었으나 역시 대답이 없었다.



나는 또,



"내가 지금 상중이니 1년 후에 탈상을 하고야 성례를 할 터인데, 그 동안은 나를 선생이라고



부르고 내게 글을 배우겠소?"



하고 물었다.



그래도 처녀의 대답 소리가 내 귀에는 아니 들렸는데 할머니와 처녀의 어머니는



여옥이가 다 그런다고 대답하였다고 하였다. 이리하여서 그와 나와는 약혼이 되었다.



집에 돌아와서 내가 이러이러한 처자와 약혼하였다는 말을 하여도 준영 계부는



믿지 아니하고 어머니더러 가서 보고 오시라고 하시더니, 어머니께서 알아보고 오신



뒤에야 준영 계부가,



"세상에 어수룩한 사람도 있다"



고 빈정거렸다.



나는 여자 독본이라 할 만한 것을 한 권 만들어서 틈만 나면 내 아내 될 사람을 가르쳤다.



어느덧 1년도 지나서 계묘년(癸卯年) 2월에 아버님의 담제( 祭)도 끝나고 어머니께서는



어서 나를 성례시켜야 한다고 분주하실 때에 여옥의 병이 위급하다는 기별이 왔다.



내가 놀라서 달려갔을 때에는 아직도 여옥은 나를 반겨할 정신이 있었으나 워낙 중한



장감(長感)인 데다가 의약도 쓰지 못하여 내가 간 지 사흘만에 그만 죽고 말았다. 나는 손수



그를 염습하여 남산에 안장하고 장모는 김동(金洞) 김윤오(金允五) 집에 인도하여



예수를 믿고 여생을 보내도록 하였다. 내 나이 30에 이 일을 당한 것이었다.















▣ 김주회 -

▣ 김태서 -

▣ 김은회 -

▣ 김재익 -

▣ 김항용 -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