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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소설-이 생에서는 늘 이별이었네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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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항용 작성일06-07-05 13:50 조회1,472회 댓글1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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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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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Ⅲ章


          1.이열(李悅).

   나보다 훨씬 훌륭한 시인, 이라고 둘째 오라버니에게 초희가 들어 기대한 것과는 달리, 그녀는 손곡(蓀谷) 선생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한 이래로 일 년이 넘도록 시(詩)에 관하여 일언반구(一言半句)도 듣지 못하였다. 다만 사제(師弟)가 된 첫날 선생은 초희에게 현재 읽는 책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초희가 맹자(孟子)이라고 답하자 선생은 맹자는 한문 문리를 트는데 더 없이 좋은 책이라고 말하고는 어두운 시선으로 초희를 한 번 훑어보고는 덧붙였다. 좋은 시를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야 한다, 특히 세상 경험을 할 기회가 제한된 여류(女流)는 더욱 그러하다. 이것이 초희가 시에 관하여 손곡 선생에게서 들은 전부였다.
 초희와 아우를 가르치는 선생의 지도 방법은 다소 독특한 데가 있었다. 선생이 먼저 강독(講讀)하고 오누이가 따라 읽고 다음에 선생이 뜻풀이를 하는 순서에는 그 전에 큰 오라버니 작은 오라버니에게 배우던 때와 다름이 없었으나 선생이 강독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선생은 교재(敎材)를 강독할 때 반드시 사성(四聲)을 넣어 읽는다는 점이었다. 물론 우리말 발음으로 한문에 성조(聲調)를 넣는 데는 여러 애로점(隘路點)이 있었으나 선생은 그 문제는 설명으로 해소했다. 그리고 새로운 글자가 나올 때마다 오누이에게 항상 사성을 옥편(玉篇)에서 찾아 익히게 했다.
 이렇게 되니 두 오라버니에게 배울 때보다 학습진도는 자연히 느려졌고 공부하는 재미는 감쇄(減殺)되었다. 게다가 닷새마다 배운 것을 암기해야만 했는데 그 시험이 만만치 않았다. 시험에 성조(聲調)암기가 필수였기 때문이었다. 암기시에 내용은 물론 성조가 하나라도 틀리면 선생은 복습할 시간을 주고는 유시(酉時)에 재시험을 보았는데 그 때에도 과락(科落)하면 시험은 다음날로 이월(移越)되었다.
 제자들이 과락하여 복습할시에 선생은 서안 앞에 앉아 무언가 글을 쓰거나 제자들이 공부하는 것을 비스듬히 누워서 졸음 겨운 눈으로 지켜보며 시간을 보냈으나 대개는 유시를 기다리지 않고 슬그머니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 제자들이 과락한 것을 빌미로 그 시간에 좋아하는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선생은 거진 매일이다시피 술을 마셨다. 나이와 학습 수준에 차이가 있어 아우는 오전에 선생에게 배우고 초희는 오후에 배웠는데, 초희는 이전에 배운 교과들에서 성조를 간과한 것들이 많아 오전에도 아우 뒤에 앉아 선생의 강독을 듣곤 했다. 때로 전날 마신 술이 덜 깬 상태로 강독하는 선생 의 입에서 풍기는 술 냄새가 아우 뒤에 멀찍이 떨어져 앉은 초희에게 까지 밀려와 그녀는 얼굴을 돌리고 몰래 코를 막곤 했다.
 성조암기는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아우는 물론 초희도 두 번에 한 번쯤은 암기시험에 과락을 하게 되었는데, 이제껏 칭찬만 들어온 그녀로서는 재시험을 보게 될 때마다 견디기 어려운 수치감으로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과락할 경우에도 초희는 대개의 경우 유시에 보는 재시험에는 입격하고 했었고, 이런 시험도 몇 달이 흐르자 조금씩 익숙해져서 맹자를 떼고 중용에 들어갈 무렵부터는 성조 때문에 과락하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늘 대학장구 시험은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어제 오래간만에 근친(覲親) 온 언니를 둘러싸고 올케들과 함께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아침 늦게 일어나게 되어서 제대로 시험준비를 할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전 강독 시간에 참석 않고 성조 암기를 하기는 했지만 시간이 부족해서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다. 성조를 하나라도 틀리게 되면 선생은 가차없이 재시험을 보게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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